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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냉동실을 비우고 싶다는 조급증 때문이었다. 이 염천 더위에,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여름 손님을 자청해서 초대해 펄펄 끓는 붕어탕을 대접하겠다니. 바깥에서 혀 쭉 빼물고 헥헥거리는 몽이 신세나 방안에서 선풍기 앞에 코 박고 헥헥거리는 내 신세나 피장파장인 판에 붕어탕이라니. 초대 날짜가 가까워 오자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붕어탕

 깨끗이 손질한 붕어를 곰솥에 풍덩
깨끗이 손질한 붕어를 곰솥에 풍덩 ⓒ 조명자

두어 달 전에 선물로 받은 붕어 봉다리. 깨끗하기로 소문난 고흥 저수지에서 낚시로 잡아 겁나게 귀한 것이라는 검정 붕어 봉다리가 아무리 눈에 거슬려도 참았어야 했는데. 냉동실 칸을 대충 점령하고 있어도 못 본 척 눈 감았어야 했는데. 그 놈의 성질머리가 문제였다.

식구들이 한여름 기운 빠질까봐 삼계탕이다 장어탕이다 그것도 초복, 중복, 말복 빠지지 않고 해 바치는 사람도 많더라만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 빼고 식구라고는 곁에 있는 남편뿐인데 딱 한번 해주는 붕어탕을 갖고 덥니 마니 군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 적이 민망하다만 어쨌든 머리는 복잡했다.

에이, 기왕 마음먹은 김에 해치우자. 그리고 엎어진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참에 이웃들도 초청해 귀한 여름 보양식 나누어 먹으면 더욱 좋겠다. 땀 뻘뻘 흘리며 대충 1박 2일이 소요되는 귀한 음식을 달랑 둘이 코 맞대고 먹는다면 제 맛이 나겠는가.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 수다도 떨고 칭찬도 받으며 성찬을 즐기면 주방장의 보람이 배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눈 딱 감고 시작했다. 붕어탕 조리법? 완전히 내멋대로다. 생선조림과 매운탕은 해봤지만 추어탕이고 붕어탕이고 해 본 적이 없고 하는 것을 옆에서 본 적도 없다. 그리고 붕어조림이나 매운탕은 먹어봤지만 붕어탕이 있다는 것은 들어 보지도 못했으니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기다.

 말린 햇고추와 마늘을 섞어 믹서기에 간 양념
말린 햇고추와 마늘을 섞어 믹서기에 간 양념 ⓒ 조명자

그런데 아무 거나 끓이면 탕 아닌가? 추어탕처럼 푹 고아 가시를 뺀 국물에 된장과 마늘, '고추다데기'로 양념을 하고 시래기 듬뿍 넣어 끓이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참에 새로운 메뉴 하나 개발하자 은근히 의욕도 솟았다.

시커먼 비닐봉투에 둘둘 붕어를 꺼내 해동시켰더니 세상에, 얼마나 큰지 붕어가 아니라 잉어였다. 월척에 버금가는 붕어가 무려 일곱 마리. 약간 작은 것까지 합하면 십여 마리가 넘어 비닐 벗기고 지느러미 잘라내는 데도 솔찮이 시간을 걸렸음은 물론 양손이 군데군데 베이는 영광의 상처까지 입었다.

아무 거나 끓이면 탕 아니던가?

 푹 삶은 붕어를 꺼내 살과 뼈를 분리했다.
푹 삶은 붕어를 꺼내 살과 뼈를 분리했다. ⓒ 조명자

손질한 붕어를 깨끗이 씻어 말린 생강 다섯 쪽을 넣고 곰 솥에 안쳤다. 사골 골 때처럼 처음엔 강 불로 펄펄 끓인 뒤 중불로 낮춰 3시간 가까이 푹 고았더니 국물이 뽀얗게 우러났다. 작은 붕어는 흔적도 없이 뭉개져 버렸고 간신히 형체를 유지한 큰 붕어만 골라 포크로 살살 살을 발라내고 뼈를 추렸다.

이젠 양념을 준비해야지. 말린 고추를 물에 씻어 마늘을 듬뿍 넣고 믹서기에 돌렸다. 보통 탕에는 잰피나 방앗잎을 많이 넣던데 나는 진한 향 때문에 젠피나 방앗잎을 싫어한다. 대신 생선의 비린내는 후추로 다스리고 구수한 탕 맛을 내기 위해선 우리 어머니가 생전에 즐겨 쓰시던 들깨가루를 준비해 놓았다.

 시래기와 죽순나물을 된장에 무쳐 붕어탕을 끓인다.
시래기와 죽순나물을 된장에 무쳐 붕어탕을 끓인다. ⓒ 조명자

적당히 자른 시래기와 죽순을 된장으로 조물조물 주물러 붕어 곤 물에 넣었다. 붕어즙과 시래기 맛이 골고루 배이게 한 서너 시간 뭉근히 끓인 뒤 간은 국 간장으로 맞추었다. 손님 올 시간에 맞춰 맨 마지막에 마늘 듬뿍 넣은 고추다데기를 섞고 대파, 청양고추, 깻잎을 살짝 빠뜨려 붕어탕을 완성했다.

딸이 지어 준 내 별명이 '못 말리는 한정식'이다. 손님을 초대할 때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개수 아니면 성이 차질 않는다. 때문에 있는 것 없는 것 죽 상에 늘어놓는데 이번엔 막걸리 안주로 특식 두 개를 더 준비했다.

 완성된 붕어탕
완성된 붕어탕 ⓒ 조명자

붕어탕에 오징어, 새우 해물전 그리고 바지락 호박초무침과 함께 들깻잎나물, 고사리나물, 오이나물 등 나물 세 가지를 올려놓았더니 오신 손님들 입이 벌어졌다. 진하고 구수한 국물이 붕어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며 모두들 맛있게 먹고 나서 "행복한 저녁을 선사해 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받았다.

손님을 배웅하고 돌아서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책 있잖나.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내 말이 그 말이다.

"혼자만 잘 먹으면 무슨 재민겨?" 

덧붙이는 글 | '나만의 여름보양식' 응모글



#붕어탕#여름보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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