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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 돈 때문에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바로 무상의료다. 영국은 국가가 재정을 조달하고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대표적인 무상의료의 나라다. 의료 서비스의 질과 재정 문제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60년 넘게 무상의료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 불평등과 의료시장 민영화 등 한국사회 의료 문제의 해법을 영국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미국인 유학생 오라이언 웰링(Orian Welling)씨와 한국인 유학생 강기훈씨 등이 8일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을 만나, 영국과 자국의 의료 시스템을 비교하며 체험기를 얘기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미국인 유학생 오라이언 웰링(Orian Welling)씨와 한국인 유학생 강기훈씨 등이 8일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을 만나, 영국과 자국의 의료 시스템을 비교하며 체험기를 얘기하고 있다. ⓒ 남소연

글 : 박순옥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을 만나기로 한 지난 8일(현지시각)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미국인 유학생 오라이언 웰링(Orian Welling)씨는 다리를 다쳤다. 심각한 사고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약속 장소에 목발을 짚고 나왔다. 여자친구 캐롤라인 로버트슨(Caroline Robertson)씨의 손을 잡고. 웰링씨는 한국인 유학생 강기훈, 박준형씨와 함께 영국과 자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다리는 건 괜찮지만... 불친절한 의사는 못 참아

"응급실에서 3시간 정도 기다려 치료 받았다. 길긴 했지만 그 정도 기다린 건 괜찮았다. 진료 전에 간호사가 와서 초기 진단을 해 줬다. 내가 고통스러워 하니 진통제도 주었고, 휠체어도 갖다 주었다."

웰링씨는 3시간 동안 기다린 데는 별 불만 없어 보였다. 영국 응급실에서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먼저 치료해야 한다. 때문에 웰링씨처럼 경미(?)한 경우에는 진료가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영국 응급실을 찾은 대다수 한국인들이 당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는 고통스러워서 응급실을 찾았는데 거기에서도 순서가 매겨진다는 것. 효율성을 강조하는 영국 의료 시스템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아픈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박준형씨는 친구 사례를 들었다.

"친구가 축구를 하다 다리가 부러져 응급차에 실려갔다. 하지만 주말이라 정형외과 전문의가 없었다. 결국 친구는 월요일까지 부러진 다리를 하고 의사를 기다려야 했다. 주위에서 영국 의료 서비스에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웰링씨는 영국 의료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로 '불친절한 의사'를 들었다.

"응급실에서 3시간 기다린 건 괜찮았지만 의사 진료는 조금 불만스러웠다. 의사가 친절하게 이건 왜 아픈 거고 어떻게 하면 된다는 식의 얘기를 해주면 좋을 텐데 얘기를 잘 안 해주더라. 그냥 뼈는 안 부러졌으니까 집에 가라고 하더라. 통증이 왜 있는지, 근육은 괜찮은 건지 등등을 세심하게 얘기해 주면 좋을 걸…. 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자 여자친구 로버트슨씨도 거들었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팔을 움직일 수 없어서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가 팔을 돌려 보라는 둥 어깨 뒤로 넘겨 보라는 둥 이것저것 해보라고 하더라. 난 이미 팔을 움직일 수 없는데 말이다. 그럴 때는 의사가 팔을 만져 보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얼음 찜질은 기대할 수도 없고 의사가 친절히 돌봐준다든지 하는 게 없었다. 꼭 영국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웰링씨는 물리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치료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중요한데 영국은 그게 약하다는 것.

"미국에서 (민간보험으로 커버되는) 병원에 가면, 고객 대하듯 서비스해 준다. 영국에는 그런 세심한 서비스가 부족해 보인다. 기다림에 대한 불만도 큰 것 같고."

인대 부상도 자연치유... 놀라운(?) 영국 의료 서비스

강기훈씨는 느릿느릿한 영국 의료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5년 전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급히 GP(General Practitioner/전문의가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의)에 연락했는데 별 거 아니라며 왕진을 오지 않더라. 나는 힘들어서 죽겠는데 말이다. 세번째 연락했을 때야 비로소 와서 치료를 해줬다." (강기훈)

"축구를 하다 인대를 다친 적이 있다. GP에게 가서 보여주고 엑스레이를 찍는 것도 힘들었지만 1주일이나 기다려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GP에게 갔더니 외과 전문의를 만나보라고 하더라. 그런데 한 달을 기다리란다. 결국 기다리는 동안 저절로 나아서 병원엔 가지도 않았다." (박준형)

영국 의료 서비스의 핵심은 GP다. 이들은 치료나 수술을 하지 않고 환자 상태의 경중을 진단해 상급 의료기관에 보내거나 약을 처방해 준다. 감기 같은 경우 되도록 자연치유를 유도하기 때문에 감기로 병원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 출신 사람들이 영국, 뉴질랜드 같은 GP제도를 운영하는 나라에 가면 가장 크게 느끼는 불만이 바로 이것이다. GP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한 번 거르기 때문에 한단계를 더 밟아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돈을 더 내서라도 빨리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국도 미국도 싫다... 둘을 적절히 섞을 순 없을까

의료 서비스에 있어서 영국과 미국은 양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은 국가가 정한 예산을 정하고 각종 의료 서비스를 운영하는 반면 미국은 철저히 민간의료보험에 의존, 시장의 지배를 받는다.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식코>에서 영국을 '천국'처럼 묘사했다. 웰링씨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처럼 좋은 시스템은 없는 것 같다, 단 보험 혜택만 받을 수 있다면. 물론 공중보건면에서는 영국식이 훌륭하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까. 미국은 돈이 있어야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웰링씨는 다행히도 의료보험 수혜를 이제껏 누려왔다. 어머니가 교사라 주에서 의료보험을 들어주어 자신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여자친구인 로버트슨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했다. 웰링씨는 "돈을 더 내서라도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게 환자 마음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신속함과 선택권 측면에서 한국의 의료 서비스에 큰 점수를 줬다. 박준형씨는 "느려터진 NHS 같이 바꾼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며 "한국이 영국보다 편하고 좋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강기훈씨는 선택권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줬다.

"물론 한국도 병원 간 편차가 크고 유명한 병원은 대기시간이 무척 길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식이 좋다. 선택권 면에서 봤을 때 영국은 한국과 비할 바가 못 된다."

두 사람 모두 영국과 미국 같은 극단은 거부했다. 시장과 국가 어느 한쪽이 의료 서비스를 책임지는 건 옳지 않다는 것. 박씨는 "영국은 너무 하향 평준화되어 있다"며 "너무 극단적인 사례 같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영국식이 문제가 많긴 하지만 정부의 지원 없이 의료 서비스를 개인이 혼자 충당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개인에서 정부로... 웰링은 왜 생각을 바꿨을까

하지만 미국인 웰링씨의 생각은 좀 달랐다.

"개인의 건강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 재력 정도는 개인이 마련해 두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러자 그 얘기를 듣은 여자친구 로버트슨씨가 입을 열었다.

"개인이 책임지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짧은 투병이라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몇 달 몇 년 동안 병에 시달릴 경우 그것을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는 너무 힘들다. 정부가 어느 정도 함께 책임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찬찬히 얘기를 듣던 웰링씨,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국가가 기본적인 책임을 분담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미국에 국가의료보험을 도입하려던 오바마 대통령은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건강보험이라는 훌륭한 자산을 지닌 한국은 영리병원 도입 등 의료 민영화의 기로에 서있다. 영국 또한 재정 적자로 인한 NHS 예산 감축으로 위기에 처했다.

의료 서비스는 개인의 몫과 국가의 몫을 무 자르듯이 확실히 나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각기 다른 제도를 경험한 케임브리지대 학생들이 인정한 것처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  남소연·박순옥 기자, 송주민 시민기자


#NHS#유러피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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