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 돈 때문에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바로 무상의료다. 영국은 국가가 재정을 조달하고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대표적인 무상의료의 나라다. 의료 서비스의 질과 재정 문제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60년 넘게 무상의료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 불평등과 의료시장 민영화 등 한국사회 의료 문제의 해법을 영국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
글 : 송주민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낯선 풍경1] 의료광고 전무한 영국 거리영국에 와서 런던과 인근 도시를 누비며 며칠 지내다 보니, 생소하게 느껴지는 점 하나.
'여긴 의료광고가 아예 보이질 않잖아?' 문득 우리나라가 생각난다. 길거리, 건물 간판, 지하철역, 버스, 웹사이트 등 생활하는 공간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의료광고. 특히 인터넷신문과 포털사이트 등에서 볼 수 있는 성형, 비뇨기과, 피부과 등의 선전을 아무렇지 않게 접하던 우리들이었다.
그런데 영국에 온 후부터는 의료와 관련한 광고를 본 기억이 전무했다. NHS 병원은 물론이고,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의료 목적이라기보다 미용의 차원으로 여겨지는 '고수익성' 병의원의 광고도 찾기 어려웠다.
혹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걸까? 영국 생활 5년차인 김의식씨는 "한국과 같은 의료광고를 여기서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고 전했다. 1983년부터 영국에 살아온 한현수씨도 "간혹 무가지 신문이나 잡지에서 비슷한 광고를 볼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NHS 바깥의 극히 일부 민간기관에서만 성형외과 등이 영업하고 있다.
[낯선 풍경2] "공짜라도 성형 절대 안 받겠다"는 영국 여성들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에는 성형외과 광고가 넘쳐나는데, 영국에는 왜 없는 것일까? 혹시 여기 사람들은 우리나라보다 '외모'에 관심이 적은 걸까?
그래서 런던의 길거리에서 20~30대 여성들에게 물어 봤다. 평소에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고.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한 명도 "그렇다(Yes)"고 답변한 사람은 없었다. 예외 없이 답변은 "아니오(No)"였다. 그것도 "결코"라는 말을 또박또박 덧붙이면서. 그들은 별 이상한 질문을 다한다는 눈초리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외모에 만족하며 사는데?(샬롯, Charlotte)"영국에선 일부 연예인 말고는 그런 생각 안하는 것 같아."(페니 제라드, Penny Gerrard)"하느님이 이렇게 낳아주신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대로 살아야지!(리안, Rianne)"나중에 죽으면 다 똑같은데, 그렇게까지 외모를 바꾸려 할 필요 있나?(샨틀리, Chantelle) "성형이 왜 필요할까? 다친 것 복원하는 거라면 모르나, '미용 성형'은 반대!"(네트, Nette)일관된 대답에 다시 물었다. 공짜로 성형수술을 시켜 준다면 그때는 고려해보겠냐고. 조금 다른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결과는 같았다. 다들 공짜라도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단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걸 보니, 단순한 '싫음' 이상의 강한 거부감이 짙게 묻어나왔다. '부작용'도 많이 우려하는 눈치였다.
만약 한국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반응은 어땠을까?
[낯선 풍경3] 돈벌이 아닌 적성으로 진로 결정하는 의사들 '공급자'인 의사들의 현실도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이 수입이 짭짤하다는 이유로 의대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반면, 외과 등은 기피 현상으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영국은 어떨까? 영국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과정에 있는 파웰(Pywell)씨의 말이다.
"영국은 대부분이 NHS 하에서 의료 서비스가 운영되고, 의료진들 월급 수준이 많이 평준화돼있는 편이다. 따라서 돈보다는 적성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 때의 경험, 인턴으로 일하면서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해 진로를 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따르면, 영국은 내과, 외과 할 것 없이 어느 과든 경쟁이 치열하다. 성형외과의 경우에도 '재건' 등 치료 분야에서 일하려는 학생들이 많고, 미용 목적의 경우는 보기 힘들다고 했다. 파웰씨는 또 "돈을 많이 벌려는 목적으로 의사를 하는 경우는 영국에선 거의 없다"며 "의사가 되고자 하는 열정이나 목적의식이 없이 돈을 많이 벌려는 학생들의 경우, 1~2년 다니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지 6년을 꼬박 의대를 다니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과 영국 모두에서 의사 생활을 경험해 본 우이혁 NHS 정신과 전문의는 "영국에선 의사들이 '사회봉사직'이란 느낌이 강해 돈벌이에 열 올리는 모습을 터부시한다"고 전했다.
[차이는 왜?] 문제는 시스템영국과 한국, 왜 이렇게 다를까? 한국 의사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탐욕스럽고, 영국 의사들은 봉사정신에 소박한 마음 씀씀이를 지녀서? 한국인들은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성형열풍'을 일으키고, 영국인들은 외모에 별 신경 쓰지 않아서? 우이혁 NHS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이다.
"사람들은 환경과 제도에 영향을 받으며 산다. 한국을 보자. TV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주위 친지들 사이에서도 '성형을 해야 취직 잘된다, 점은 왜 안 빼느냐'는 등등의 분위기가 횡행하다. 조그마한 성형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누가 부추기는가? 결국 의료 시스템이 사적일 경우 나타나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리 추구가 목적인 시스템 하에서는 자연히 성형외과 등 수익이 많은 곳에 의사들이 몰리게 돼있다. 의사들끼리의 치열한 '공급경쟁'으로 인해, 지나치게 외모욕을 자극하는 불필요한 수요까지 창출된다. 그 결과가 '성형열풍사회'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었다.
또한 우 전문의는 "영국은 공공의료 중심에 무상의료를 실시하고 있다 보니 국민들이 돈 내고 의료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하지 않다"며 "사적 의료기관 이용을 사치로 여기니, 한국의 성형외과와 같은 곳이 '열풍'을 일으킬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영국 노팅엄에 거주 중인 김용수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노팅엄대학 보건정책전공 박사과정)도 "한국과 영국의 차이는 공공 중심 의료와 민간 중심 의료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의료를 팔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은 '시스템의 차이'로 인해 비롯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 남소연·박순옥 기자, 송주민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