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편집자말] |
이제 동장군도 슬슬 물러가는지 해가 길어졌다. 나름 훈훈한 봄바람도 두 뺨을 스치는 계절이 되돌아온 것. 이럴 즈음에는 동네 골목 어귀에서 호탕하게 웃는 옆집 아저씨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시장통에서 껄껄거리며 웃다가 아내에게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느냐"며 혼나기도 하고, 전기 구이 통닭 아줌마 편을 들다가 손님과 한바탕 말싸움이 붙기도 한다.
<오마이뉴스>에도 그런 아저씨가 있다. 멋들어진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누비며, 바지 뒷주머니에는 시집을 꽂아 넣고 다니는 아저씨. 설날에는 집안 아이들에게 세뱃돈 대신 시집을 건넸다가 '굴욕'당하면서도, 자신의 자작시를 암송해 오라는 아저씨. 편집부는 2월 마지막 '찜! e시민기자'로 조상연 시민기자를 '찜'했다.
방송작가가 제안한 사는이야기 글쓰기사실 그는 일전에 '찜! e시민기자'를 예약하는 대담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첫 '찜!e 시민기자' 홍진표 시민기자의
기사에 "다음 주 찜은 바로 나"라고 댓글을 단 것. 비록 곧바로 다음 주에 '찜! e시민기자'에 선정되진 않았지만, 어찌 됐건 예언을 한 셈이다.
"그냥 제 글을 한번 평가 받고 싶어서 기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기분 참 좋네요. 하하. 뭐, <오마이뉴스>가 (찜e시민기자로) 선정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그렇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현재 그는 <오마이뉴스>에서 맛깔나는 사는이야기 기사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블로그 운영할 때였어요. 지인 중에 방송국 작가가 한 분 있는데, 그분이 '혼자 보기는 아깝다'면서 언론 매체에 기고해 보라고 합디다. 근데, 그분이 하는 말이 글쎄…. '다른 매체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기사로 채택하지 않을 테니 <오마이뉴스>에 보내 보라'는 거예요. <오마이뉴스>는 사람들이 사는 소소한 이야기도 기사가 될 수 있다면서요."그는 첫 기사를 쏘아 올린 2010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사는이야기만 썼다. 그는 왜 사는이야기만 쓰는 걸까.
"우리 삶의 순간순간에는 철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사회 현상들이 다 녹아 있죠. 그래서 저는 사는이야기를 쓰면서 그 현상에 담겨 있는 철학을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해요.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을 숨겨 놓은 채로요. 과격한 주장보다는 이런 기사가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그렇다면 조상연 시민기자만의 '사는이야기 쓰는 비법'이 따로 있을까. 사는이야기 기사를 쓰는 다른 시민기자들을 대신해 한번 물어봤다.
"메시지. 메시지를 담아야 해요. 그냥 '어디 어디 좋더라' '어디 어디 음식이 맛있더라'라며 글만 끼적여 놓고 사진만 올려놓으면 뭐해요. 어떤 장소, 어떤 음식, 어떤 사건에서 삶의 지혜 같은 것을 담아야죠. 그래야 의미 있는 사는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내 기사를 지배하는 건 풍류
꼭 좋은 장소,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 으리번쩍한 순간만 좇을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려운 개념을 어렵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 삶 주변에서 쉽게 이야기하자는 것이 그가 속삭여 주는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그래서 그의 '취재 현장'은 동네 주변이다. 워낙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다 보니 동네 사람들은 그를 짱구라 부른단다. 하지만 그냥 돌아다니는 게 전부가 아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의미를 뽑아내고, 이를 기사로 만든단다.
"자꾸 돌아다니다 보니까 동네 사람들도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걸 다 알아요. 하하. 신나게 수다 떨다가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갑자기 '야! 너 쓸데없는 기사 만들지 마!'라고 주의를 주기도 해요."가만히 그가 써왔던 기사를 읽고 나면 그의 기사들 저변에 흐르고 있는 뭔가가 있다. 뭔가 꿈틀거리면서, 재기 발랄한 그것. 반항스러움 같지만, 어딘가 정제돼 있는 뭔가가 말이다. 이 묘한 느낌이 뭔지 궁금했다.
"제 기사, 제 글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 철학은 '풍류(風流)'입니다. 풍류. 제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바로 '자연과 동화되는 풍류의 순간'입니다. 제 일터에 있는 화초와 대화하면서,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죠. 그런 하나됨을 기사에 최대한 드러내려고 노력해요. 하하."따지고 보면 <오마이뉴스>는 그의 풍류를 발휘하는 장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근데, 정말 조상연 시민기자는 계속 사는이야기만 쓸 생각일까. 다른 분야의 기사도 있잖은가.
"저는 계속 사는이야기만 쓸 겁니다.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사는이야기 기사에서 찾을 생각이랍니다. 중요한 건 '어떤 내용을 쓸 것이냐'라는 건데요. 제가 고전을 좀 공부했거든요. 나중에는 논어를 비롯한 각종 경전, 불교 철학 등을 빗댄 사는이야기를 쓸 거예요."이 말을 듣는 순간, 기자는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쉽게 써달라"고. 인터뷰가 끝나가는 마당에 그가 한마디 덧붙인다.
"지난번에 장인어른 건강에 관련된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기사 나가고 나서 주위에 (장인어른 병세를) 몰랐던 분들이 응원 전화도 해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 전합니다. 하하."사는이야기에 푹 빠져 사는 이 아저씨. 매일 그는 동네 시장통을 쏘다니며 사람 살 내음 물씬 풍기는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