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라 할 정도의 이상 고온 봄날, 더 늦기 전에 봄철 야생화 사진 촬영을 위해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에 위치한 동구래마을을 찾았다.
동구래마을하면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구가 밀집해 사는 조그만 동네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이호상 씨가 혼자 산다. 다시 말해 이호상 씨가 촌장이고 수많은 들꽃들이 주민인 셈이다.
"봄에는 가을보다 야생화가 적은 편입니다." 이호상 씨의 말처럼 이 마을의 가을은 수백 종의 야생화가 군집을 이뤄 한마디로 꽃 대궐을 이룬다. 고집스레 봄꽃을 소개해 달라는 요구에 그는 봄 야생화를 내게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아는 척 했다가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지난해 가을, 동구래마을을 찾았던 나는 산국 등 가을 야생화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열심히 트위터에 올렸다.
"와! 이 꽃 이름이 그거였군요. 어쩌면 그렇게 꽃 이름을 많이 아세요?" "그냥 촌 동네 출신이라 좀 압니다." '옆에 꽃 전문가(이호상 씨)가 알려주기 때문에 그 꽃 이름을 알게된 겁니다' 라는 것보다 좀 우쭐해 보이고 싶은 생각에 잘난 척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를 통해 야생화를 올리며 꽃 이름을 물어 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나를 야생화 전문가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지난번 야생화 사진 올릴 때는 전문가가 옆에 있어서 꽃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라고 이실직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기회에 야생화를 배워보겠다는 생각에 다시 찾은 동구레 마을의 봄꽃을 소개해 본다.
이른 봄에 쌉 싸름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는 꼬들빼기 꽃이다. 이 꽃이 지면 씨가 맺혀 금년 가을 어린 싹이 자라 가을 나물로 식단에 오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조팝나무라고 부르는 것은 줄조팝나무이다. 이와 구분하기 위해 동그란 공 모양으로 생겼다고 공조팝나무라 부른다.
며느리밥풀 꽃이라고 하기도 하고, 나물로 쓰일 때는 며느리취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날 산골 가난한 집안으로 한 여인이 시집을 왔다. 가난 때문에 먹을 것이라고는 풀과 산나물을 끓여서 연명할 때 시어머니는 이웃 마을에서 쌀 한줌을 꾸어왔다. 이 쌀을 이용해 밥을 짓던 중 며느리는 밥이 제대로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밥 한 알을 입에 넣던 중 시어머니에게 들켜 심하게 맞아 죽은 이후 한 송이 꽃이 피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며느리밥풀 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꽃 모양도 붉은 입술에 흰 밥풀이 달린 형상이다. 왠지 이 꽃을 보면 서글픈 생각이 먼저 든다.
달맞이꽃은 노란색의 여름 꽃이며, 한밤중 달이 떴을 때 피었다가 아침 햇살을 받으면 꽃 잎을 접는다. 그러나 이 꽃은 그 반대로 한밤중에 꽃잎을 닫았다가 해가 뜨는 아침이면 꽃잎을 연다고 해서 낮달맞이꽃이라 부른다. 차라리 해맞이꽃이라 불렀으면 어땠을까!
우리들이 구수한 냉이 국으로 기억할 냉이도 꽃이 핀다. 꽃 봉우리는 작지만 향기는 진하다.
뿌리만 나물 또는 약용으로 사용하는 식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더덕 잎을 따서 상추와 함께 삼겹살을 싸서 먹으면 최고의 별미라는 것도 알아두자.
옛날 도랑이나 계곡에서 쉽게 목격되던 도룡뇽이 없어졌다. 그만큼 환경이 오염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 좋게 동구레 마을옆 도랑에서 도룡뇽 한 마리를 발견했다.
등은 푸르고 배는 붉은색을 띠며 검은 점이 요란하다고 해서 무당개구리라 부르기도 하며, 만지면 자신의 보호를 위해 매운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고추개구리라고 부른다. 또 어느 마을에서는 배의 붉은색이 마치 피를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피난개구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엄마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되면 떠나요. 민들레처럼...' 민들레라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꽃이 지면 솜 무양의 씨앗은 바람에 날려 번식을 한다. 민들레 하면 보통 노란 꽃을 떠올리는데 하얀 민들레도 있다. 이 흰 민들레가 순수한 토종이란 설도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잎 모양이 단풍잎처럼 생긴 것이 바위틈에서 자란다하여 돌단풍이라 부른다. 지방에 따라서 바위나리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다. 어렸을 적 뿌리를 캐서 껍질을 벗겨 먹었던 기억도 있다.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불두화라 부른다. 가을에는 앵두와 비슷한 붉은 열매가 군집을 이뤄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른 봄이나 가을에 나물로 쓰이는 씀바귀의 꽃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도 알아두자.
구절초 인줄 알았다. "가을에 피는 구절초가 벌써 피었네요" 라고 말하자 이호상 촌장님은 알프스국화라고 소개해 준다.
꽃 이름이 참 토속적이며 예쁘다. 풀을 뜯으면 노란진액이 나오는데 이것이 애기 똥을 닮았다 해서 애기똥풀이라 부른다.
이른 봄에 양지쪽에 핀다고 해서 양지꽃이라 부르게 된 듯 하다.
작약 꽃보다 시골에서는 개삼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꽃이다. 이유는 개가 병에 걸렸을 때 이 꽃의 뿌리를 갈아서 먹이면 특효라고 해서 개삼이라 부르는 꽃이다.
꽃 모양이 애기똥풀과 비슷하나 더 크고 우아함이 더한다. 꺽으면 애기똥풀은 노란 진액이 나오는데 피나물은 붉은액이 나온다고 해서 피나물이라 부른다.
이른 봄에 초롱 모양의 붉은 꽃이 핀 후, 흰 머리모양으로 변하다가 완전히 백발이 된 모양으로 씨를 퍼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