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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당도가 높고 알이 굵은 캘리포니아 빙(BING) 체리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당도가 높고 알이 굵은 캘리포니아 빙(BING) 체리를 선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정말 맛있는 음식은 대개 비싸다. 시장 논리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맛있는 건 희귀하니까. '과일의 여왕'이라 불리는 체리는 기자에게 그런 존재였다. 맛있지만 너무 비싸서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

기자가 한미FTA에 반대하면서도 발효 이후 유일하게 기대했던 것은 체리를 실컷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24%나 되는 수입 관세가 한방에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한미FTA 발효 후 100일 만에 기자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FTA 관련 품목 가격인하 등 소비자편익 제고 효과 가시화'라는 제목의 자료를 냈다. 관세 24%가 없어지자 미국산 체리의 국내 가격이 48.2%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산 체리, 관세 24% 철폐에 가격 48,2% 하락... 이게 FTA 효과?

관세는 24% 떨어졌는데 가격은 50% 가까이 떨어졌다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갑지만 상식적으로 봤을 때는 좀 이상한 일이다. 공정위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6월 14일자 미국산 체리의 소비자 가격은 한미FTA가 발효된 3월 중순을 기점으로 계속 100g당 1596원을 유지했다. 담당 공무원은 "지난 3월부터 소비자원에서 직접 이마트 영등포점에 매주 조사원을 파견해 확인한 가격"이라고 말했다.

체리 애호가(?)들은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대형마트의 수입산 체리 가격은 불과 40여 일 전인 5월 초만 해도 100g당 3000원을 호가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FTA가 체결된 뒤에도 체리가격에 별 변화가 없자 이를 근거로 FTA 효과가 미미하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 미국산 체리 가격은 100g당 3300원 정도였다. 9% 가량 가격이 내린 셈이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미국산 체리를 수입해 파는 ㅇ사 대표 김창민(가명)씨 역시 가격적인 면에서 FTA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의견이었다. 체리는 과실의 크기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가격 차이가 나는데 김씨는 현재 대형마트 제품과 비슷한 '중'크기와 '대'크기의 체리 1kg을 배송비 포함 1만89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그는 "같은 구성의 상품을 1년 전 이맘때에는 1만9900원에 팔았다"며 "FTA 한다고 해서 기대 많이 했는데 별다를 게 없었다"고 말했다.

수입된 체리의 도매가격은 어떨까. 22일 서울시 가락시장에서 경매된 미국산 체리의 가격은 5kg에 평균 6만1833원. 2011년 6월 22일의 평균 경매가격은 5kg에 7만2000원이다. 이 자료만 놓고 본다면 14.2% 가량 할인된 셈이다. 결국 공정위에서 발표한 '체리의 FTA 효과'는 상당히 과장됐다는 얘기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가락시장 사이트에서 찾아본 미국산 체리의 2011년 6월 22일자 가격과 2012년 6월 22일 가격 비교.
서울시 농수산물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가락시장 사이트에서 찾아본 미국산 체리의 2011년 6월 22일자 가격과 2012년 6월 22일 가격 비교. ⓒ 김동환

가락시장 수입 체리 도매가는 14.2%만 낮아져

공정위에서는 작년 6월 중순의 이마트 영등포점 체리 소비자 가격을 100g당 3080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러던 가격이 48.2% 떨어진 1596원이 되었고, 이는 FTA 효과라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었다. 엉뚱한 주소에 '깔때기'를 갖다 댄 셈이다.

수입품은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크게 두 단계에 걸쳐 가격이 결정된다. 첫 번째는 물건이 국경을 넘을 때, 두 번째는 국경을 넘은 물건이 소비자에게 인도될 때다. FTA의 관세철폐 효과는 첫 번째 과정에서만 작용한다. 그래서 정확한 FTA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소비자 가격이 아니라 수입가격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체리 뿐 아니라 모든 비교 품목의 기준을 소비자 가격으로 삼아 공정위가 21일 발표했던 '한미, 한-EU FTA 효과' 관련 해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오히려 수입 도매가격이 14% 정도 하락했는데 가격이 48% 떨어졌다는 것은 이마트 측에서 2011년에 미국산 체리를 팔면서 현재보다 훨씬 높은 마진을 챙겼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자는 이와 관련 22일 오후, 이마트 측에 최근 1년간 체리 판매가격 자료를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21일 언론들은 일제히 공정위의 자료를 바탕으로 FTA가 긍정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했다. 개중에는 5월 초, 높은 체리 가격을 근거로 FTA 효과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기사를 내보냈던 곳도 있었지만 공정위 자료 자체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언론사는 없었다. 대부분 '받아쓰기' 수준에 그쳤다.

문제의 자료를 만든 공정위 소비자안전정보과 김정식 과장은 "전수조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장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농산물의 가격 비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자료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명시한 이마트 영등포점의 체리 가격은 분명한 사실이고 공정위는 책임이 없다는 얘기다.

체리 가격하락 주 원인, FTA 아니라 미국발 '풍작' 때문

그렇다면 5월까지도 탄탄히 유지되던 체리 가격은 왜 40일 사이에 절반으로 떨어진 걸까? 지난해부터 국산 체리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경기도 화성의 송산 농협의 홍승기 대리는 그 이유를 "미국 현지의 체리 작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산 체리는 크게 캘리포니아산과 북서부 5개주(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 유타, 몬태나)에서 생산되는 '워싱턴 체리'가 있는데 올해 작황이 캘리포니아는 흉작, 워싱턴 체리는 풍작이라는 것이다. 홍 대리는 "5월까지는 캘리포니아 체리 철이라 공급이 달려서 가격이 높았는데 6월부터는 워싱턴 체리가 수입되면서 가격이 대폭 낮아졌다"고 귀띔했다.

체리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변동이 심한 농산물은 어떤 정책적인 효과의 정도를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가격의 변화가 시장의 영향에서 왔는지 정책의 작용에서 왔는지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나 언론이 그런 어려움 때문에 손쉬운 방법으로 부정확한 분석에 만족한다면 제대로 된 정책 보완책이나 개선 방향을 도출할 수 없다. 수고를 좀 더 들여서 정확한 분석을 내놓는 사례도 있다. 5월 21일 한국소비자원은 한-EU FTA 이후 유럽에서 수입되는 전기다리미 중 일부가 3만6600원에 들어와서 9만2430원에 소비자들에게 판매됐다고 밝혔다. 유통업자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로 유럽산 수입 소형 가전시장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이 강화됐다.

세금을 내는 체리 애호가들에게는 공정한 시장 가격에 체리를 사 먹을 수 있도록 정부에 성실한 시장 감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체리뿐 아니라 뭘 사든 모두 해당하는 얘기다. 제대로 좀 하자.


#체리#한미FTA#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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