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남편은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한다. 호텔식당에서 아침을 먹다가 갑자기 종이를 들고 옆 테이블로 가서는 젊은 남자 두 사람에게 사인을 받아 왔다.
"아니, 이 평양 한복판에 아는 사람이 다 있어요? 저 사람들이 대체 누구예요?""저 젊은이들이 북한대표 축구선수들 같아. 저들 중 내가 사인을 받아 온 두 사람이 정대세와 안영학이라는 선수들인데, 둘 다 북한 국적의 재일교포야. 그 중 안영학이라는 선수는 한국의 한 프로 축구팀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걸로 알고 있어.""혹시 저 얼굴이 둥글고 체격이 좋은 선수가 남아공 월드컵대회 때 북한 국가가 연주되자 눈물을 흘리던 그 선수 아닌가요?""맞아, 맞아, 바로 그 선수야, 정대세." 기억났다. 국가가 울려 퍼지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선수. 재일교포라니까 조금은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도 해외에 살면서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날 때가 있으니까. 남편은 호텔방에서 배터리 충전을 하는 카메라에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을 뒤집어씌웠다.
"아니, 우리 카메라는 배터리가 왜 이리 빨리 닳아 버리는 거야? 아무래도 새 카메라를 하나 사든지 해야지 원..."북한의 '붉은 악마'를 만나다
호텔 로비서 안내원들을 만나자 남편이 두 선수의 사인을 보여 주며 자랑이 한창이다. 만룡 안내원 말이 이날 평양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월드컵 예선경기가 있다고 한다. 아마 선수들이 고려호텔에서 합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만룡 안내원이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이 4강에 올랐을 때의 얘기를 했다.
"그때 남조선 선수들 정말 대단 했습네다. 역시 남남북녀라고 선수들이 키도 크고 잘 생겼습네다. 그때 여기서도 모든 인민들이 얼마나 남조선을 응원했는지 모릅네다."한국을 열렬히 응원했다는 말이 약간 의외였으나 전혀 놀라지는 않았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를 대할 때 진정으로 동포애를 가지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능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민둥산이 보입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금강산에 가기 위해 북한의 동쪽을 여행했다면, 이날부터는 북한의 서북쪽 지역을 여행하게 됐다. 묘향산으로 가는 길 역시 한산하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적적한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이 겹치면서 괜스레 눈물이 고인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더욱더 쓸쓸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의 동쪽이든 서쪽이든 마을 주변의 산들은 마치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막의 산들처럼 황량하다. 에너지 사정이 안 좋아서 산의 나무들을 땔감으로 사용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변을 걷는 사람들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등에다 한 짐씩 나무를 지고 간다.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등에 나무를 지고 엄마 뒤를 뒤뚱뒤뚱 버겁게 따라간다. 지나가는 차를 발견하더니 땅만 쳐다보며 걷던 아이가 얼굴을 들어 쳐다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힘에 겨워 찡그리고 있었던 눈을 애써 치켜뜨며 미소 짓는다. 나는 손을 흔들어줬다. 내 입은 웃고 있었지만, 가슴은 살 에듯 저리다.
겨울에는 나무를 등에 지고 가느라 꾸부정해 있는 저 허리를 쭉 펴고 잘 수 있게 따스한 온기가 방 안 가득 차면 좋겠다.
'녕변' 표지판 보고 떠오른 시인... 김소월
도로에 사람들이 트럭을 둘러싸고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남편이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저 트럭이 목탄차가 아니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나는 목탄차를 들어 본 적도 없는데... 남편은 어릴 적 기록사진에서 본 기억이 난다고 한다. 가솔린 대신 목탄을 태워 차를 움직인다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나마 오래된 목탄차가 고장 났는지 사람들이 모두 내려서 이리저리 살펴 보고 있다.
내 눈에는 저 트럭이 다시는 못 움직일 것처럼 느껴진다. 난로 연통같은 굴뚝을 단 저 트럭 어느 곳에도 많은 짐과 사람을 태우고 갈 힘이 남아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쌩쌩 달리는 이 자동차 안에 타고 있자니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이 생긴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된다.
'녕변'이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남한식 표기로는 '영변'이다. 감상에 젖다가 혹시나 해서 남편에게 조용히 물었다.
"여기가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영변'인가요?""그 '영변'인지는 모르겠는데... 원자로가 있는 곳이야. 북한 핵무기 뉴스 때마다 나오는 곳인데, 당신은 그것도 몰라?" 남편의 퉁명스러운 대답과 '핵무기'라는 소리에 분위기가 깨지고 말았다. 내가 시큰둥해서 앉아 있는데, 얼마 뒤 남편이 만룡 안내원에게 물었다.
"혹시 근처에 '약산'이라는 데가 있나요?" "네. 있습네다, 선생님. 봄이면 진달래꽃이 아주 곱게 피는 곳입네다."'진달래꽃'이란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거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아! 김소월 시인이 <진달래꽃>에서 노래한 영변을 지나고 있구나!
상상으로만 그려 보며 노래로 불러 보았던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그곳을 지척에 두고 지나치며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애절한 마음으로 가슴속에 이 노래를 읊조렸다.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 영변에 약산 / 진달래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략산에 진달래를 더 많이 심어 놓아야겠습네다"설경이가 내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묻는다.
"녀사님, 략산을 아시나요?""응""아니, 어떻게 략산을...""여기가 평안북도라 그랬지? 여기서 태어나신 김소월이란 유명한 시인이 계셔.""그렇습네까? 저는 잘 모르겠는데...""남쪽에서는 누구나 다 알아. 대표적인 시의 제목이 <진달래꽃>인데 바로 이곳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이야. 이 시에 김동진이라는 작곡가께서 곡을 붙이셨어. 그분도 평안도분이셔. 아마 평양에서 학교를 다니신 걸로 알고 있어. 지난번 고려호텔에서 내가 '내 고향 남쪽바다...'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렀지? 바로 그 노래를 작곡하신 분이야. 그런데 나는 여기를 와 본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그저 상상만 하며 노래를 불렀는데, 이곳을 지나치니 아쉬움에 애절함이 더 해. 슬픈 노래거든. 남북간에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지면 아마 많은 남쪽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을 거야.""아! 략산에 진달래를 더 많이 심어 놓아야 겠습네다. 동포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말입네다."'진달래를 더 많이 심어 놓아야겠다'는 설경이의 마음이 그야말로 눈처럼 하얗다. 이제는 이 아이가 더 이상 안내원이 아니라 딸처럼 느껴진다. 설경이도 나를 어머니 대하 듯 한다.
청천강에서 만난 을지문덕 장군
우리 차는 청천강을 끼고 묘향산을 향해 가고 있다. '살수'라고 불렸다는 청천강.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양제의 100만 대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킨 곳으로 알고 있다. 그 역사의 현장을 분단된 조국의 쓰라린 가슴을 안고 쳐다보며 가고 있다. 청천강의 푸름이 내 우울함을 깊게 한다. 그래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강은 참 아름답다.
또 내 고향 대구가 생각난다. 저 청천강변을 보니 내 어린시절 가족과 친척들이 낙동강변으로 물놀이 갔던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 어른들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여자들은 강바닥에서 조개를 건졌다. 그리고 우리 어린아이들이 주어온 나뭇가지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여 먹었던 추억이 있다. 아, 그리운 낙동강변, 지금도 변함없겠지. 다음에 귀국해 대구에 갈 때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꼭 가보고 싶다.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한 북한의 노력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 힘에 부쳐 보인다. 에너지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런지 농기구들은 보이지 않고 낫으로만 일하고 있다. 어느 세월에 다 할 수 있을는지... 보는 내 마음이 답답하다. 오곡백과 풍성할 시월의 농가가 한산하고 조용해 적막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묘향산이 가까워지니 학교같이 생긴 건물 앞 운동장에서 사람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저곳은 뭐하는 곳이지?"라고 설경이에게 물었더니 "각지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합숙 훈련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수련장"이라고 설명해준다. 묘향산은 북한에서도 공기가 깨끗하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많은 단체에서 수련하러 온단다. 축구하는 모습들이 한국의 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비슷하다. 설경이는 축구는 북한에서 제일로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곧바로 산으로 향했다. 바윗길이 미끄러워 여간 조심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우리는 무릉폭포에서 포기하고 내려와야 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향로봉까지 다녀오리라는 마음을 먹으면서 말이다.
묘향산의 '향산호텔'은 리모델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북한의 호텔 중 가장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유명한 호텔 업체 중 하나인 '샹그릴라'와 제휴를 맺고 있는지, 욕실 물품들이 모두 '샹그릴라' 제품이다. 호텔을 칭찬하니 옆에서 만룡 안내원이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한다지 않습네까"라며 북한이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해준다.
북한 관광객들과 함께 '기묘한 향기' 맡으며
이곳에서는 외국 관광객들보다 단체로 온 듯한 북한 관광객들이 꽤 보인다. 명절 기간이라 나들이 왔나 보다. 오는 길에 봤던 철부지 아이도, 낫으로 온 종일 일하고 있을 농부 아저씨도, 목탄차에서 내려 어찌할 바 모르던 그 순진한 모습의 사람들도... 모두 다 가족들과 이 아름다운 묘향산에 나들이 오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또 하나의 기도가 돼 내 마음에 담긴다.
역사책 속에서만 봤던 고려시대 사찰 '보현사'. 서산이나 사명 같은 대사들께서 왜 이곳에서 수행을 하셨는지 가히 짐작이 된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묘향산은 마치 요람의 아기를 품고 있는 듯 보현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기묘한 향기를 내뿜는 산'이라고 해 묘향산이라 이름졌다고 한다. 묘향산의 정기가 향긋한 내음이 돼 그 싱그러움이 온몸을 뚫고 들어온다. 비까지 그쳐 해마저 나니 지구가 크리스털처럼 투명하고 깨끗하게 느껴진다.
만룡 안내원이 열심히 설명하며 이곳저곳 데리고 다녔지만, 나는 묘향산의 정기에 매료돼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묘향산의 공기를 내 사랑하는 남쪽 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마시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고도 단 공기 맛에 취해 신선처럼 걷고 있자니, 저 멀리 속세서 지지고 볶는 듯한 날카로운 언성이 들린다. 한 아주머니가 대학생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들을 혼내고 있다. 남녀 짝을 지어서 온 이 아이들은 한껏 멋을 내고 왔다. 여자아이들은 하이힐에 달라붙는 바지, 그리고 커다란 귀걸이에 화장도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남자아이들도 청바지에 셔츠를 풀어헤치고 이곳에서 보기 어려운 선글라스를 끼고 건들건들 거리며 서 있다. 혼내고 있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는 것을 보니 보통 화가 난 게 아닌 듯하다. 어른에게 버릇없게 행동했나 보다. 어디를 가나 저런 아이들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야단치는 아주머니의 용기가 대단하다. 더구나 벤츠 차에서 내린 학생들 차림이 보통이 아닌 것으로 보아 높은 사람들의 자제들로 짐작되는데, 저러다가 후환이라도 닥치면 어쩌시려고... 젊은이들이 크게 대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래도 웃어른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 북한에 와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 이곳에는 아직도 유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보현사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니 스님께서, '들어와 예불을 드려도 된다'고 한다. 설경이가 얼른 "이 분은 그리스도 교인"이라고 하자 스님께서 물러선다. 남편이 자꾸 스님을 쳐다보며 말을 걸라고 한다. 낌새를 보아하니 지난번 봉수교회에서 했던 것처럼 또, '가짜 스님이 아니냐'고 물을 것만 같아 남편의 팔을 끌고 서둘러 내려왔다.
산 입구에 있는 자그맣고 조촐한 기념품 가게에는 우리 부부만 있다. 온통 향나무 내음으로 가득하다. 모든 기념품들이 향나무 등 이곳의 나무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젓가락을 비롯해 부채, 나무 찻잔 등 거의 종류별로 하나씩 산 것 같다. 이곳의 특산품인 말려놓은 나물과 버섯들도 샀다.
순박하기 그지없게 생긴 기념품 가게 아가씨가 당황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물건을 포장해 줘야 하는데, 이리저리 구석구석 뒤지는 것을 보니 포장지가 마련돼 있지 않아서인 듯하다. 내가 괜찮다고 말했더니 얼굴을 붉히며 미안해한다. 그 순박한 표정에 사랑을 듬뿍 주고픈 마음이 생겨난다.
향산호텔에서 먹은 저녁 식사는 산나물 비빔밥. 비빔밥 속 나물들이 제각기 살아 있다. 어느 것 하나 맛을 잃은 나물이 없다. 친절하고 상냥한 웨이트리스 아가씨를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우리 부부의 손을 꼭 잡으며 포즈를 취한다. 따사로운 소망의 온기가 전해진다.
방으로 돌아와 발코니에 서서 밤하늘을 쳐다본다. 아! 은하수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