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 남소연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24일 밝힌,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사과를 보자. 그 내용만 보면 그동안 보여 온 박 후보의 완강한 역사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의 확보부동한 신념체제

이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정치적으로 다급해졌구나!' 하는 것이다. 박 후보의 5·16 쿠데타와 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한 역사 인식은 확고부동한 신념체제로 굳어진 것이어서, 그걸 바꾼다는 것은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박 후보의 확고한 신념체제는 9·24 기자회견 바로 전날 저녁,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내정된 김재원 의원이 기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했다는 발언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김 의원은 박 후보가 얼마나 힘들게 '과거사 사과'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면서 "박 후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복권을 위해서인데 그럼에도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단했"고, 그러한 박 후보의 입장은 마치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비유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김재원 의원은 이른바 '막말 파문'으로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의 발언은 박 후보의 본심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지금부터 23년 전인 1989년 5월 19일, MBC의 <박경재의 시사토론>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에서 공개적으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적극 평가하기 시작한 이후 '9·24 사과'까지 한 번도 그 입장을 바꾼 적이 없었다. 1989년 5월 19일 MBC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렇게 확고한 신념을 이야기했다.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믿고 있다."

"5·16을 평가하는 신문들의 표현을 보면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되고 '어떻게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느냐' '헌정을 중단시켰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 일변도다. 저는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럼 5·16이 없다, 더 나아가 유신이 없다'고 할 때 5·16을 비판하고 매도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사는 이 땅이, 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나라가 없어지는 판인데 민주주의를 중단시켰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라가 없어지면 민주주의를 못하는 건 둘째치고 다 죽는 판 아니에요? 그래서 5·16 혁명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저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제가 유신에 대해서 옳다고 그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또 그것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 것이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럼 그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그동안 매도당하고 있던 유신, 5·16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라면 얘기해야 하며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게 정치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1989년 MBC <시사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5·16과 유신 뿐만 아니라 아버지 박정희의 일본군 장교 시절과 남로당 활동, 김형욱 전 중앙정보국장의 죽음, 김대중 납치사건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세하게 밝혔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뉴스타파'(www.newstapa.com) 26, 27회 참조)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위의 인용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듯 박근혜 후보의 5·16과 유신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 "'5·16 혁명'은 구국의 결단"이었고,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었"으며, 그러한 "5·16과 유신이 매도당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야"하고,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고부동한 신념체제이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을 위해 정치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신호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에 들어선 뒤 한 번도 망설임없이 일관되게 이러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 왔다. 그러기에 김재원 의원이 박근혜 후보의 '사과 결단'을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의 고뇌로 비유했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도 '과거사 문제'가 힘들다고 했다. 최근 새누리당 국회 상임위원장·간사단과의 오찬에서 "나도 그것 때문에 힘들다, 안 그래도 한 번 정리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박 후보에게 과거사 문제는 왜 힘든 것일까.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신념체제에 반하는 자기부정을, 그것도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해야 하기 때문일 터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다급해진 상황임을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9월 24일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가 밝힌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는 역사 평가에 대한 변화는, 박 후보의 역사관 인식의 전환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로 인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대응을 바꾼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보수논객 조갑제씨의 평가가 흥미롭다. 그는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씨는 아버지를 옹호하고 그 평가를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생각이 이 짧은 기간에 180도 바뀔 수가 있는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쇼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의 그늘


 박정희.
박정희.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박근혜 후보든, 그를 옹립하고 있는 새누리당이든, 그들이 진정으로 역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눈이 그들 주장대로 '대통합'과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담보하는 진정성 담긴 구체적인 행동과 조치를 보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장준하 선생 의문의 죽음에 대한 전면적 조사, 정수장학회 문제 해결 등 구체적 사안에서 드러나야 한다.

이와 함께 새누리당과 박근혜 영향권에 있는 인적 구성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특히 KBS, MBC 등 공영방송 이사장들에 대한 여러 의혹과 도덕성 시비에도 '과거 인물들'인 그들이 건재하다는 것은 지금의 실세인 박근혜 권력의 직·간접적 묵인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있는게 사실이다.

KBS 이사회의 이길영 이사장, MBC 방송문화진흥회의 김재우 이사장, EBS 이사로 연임된 이춘호 전 이사장 등을 보면 박 후보가 주장하는 '미래'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며, '과거인물'답게 여러 의혹과 도덕적 시비가 뒤엉켜 있는 인물들이다.

9월초 새로 구성된 KBS 이사회는 11월 말에 임기가 끝나는 김인규 사장 후임을 뽑게 되어 있으니 신임 이길영 이사장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이고, 8월 말에 새로 구성된 MBC 방문진 역시 김재철 사장의 진퇴를 결정하게 되어있으니, 신임 방문진 이사장도 그 힘이 막강하다. 그러한 이사장과 친여 이사진 구성, 그 결과로 더욱 공고해지는 지금의 방송사 지도부 체제가 대선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길영씨의 행적에 관한 정리본.
이길영씨의 행적에 관한 정리본. ⓒ 최민희 의원실

KBS의 이길영 이사장은 누구인가

지난 5일 새벽 1시, 여당 추천 이사들만의 강행처리로 KBS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길영씨는 구 문공부 산하 서울방송국 직원으로 채용된 뒤, 나중 KBS 기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보도지침 등 전두환 대통령의 언론통제가 극에 달했던 1986년, KBS 보도국장이 되어 이듬해 87년 대선 보도를 지휘했다. '땡전 뉴스' 책임자 중 한 사람이라는 비판을 KBS 내부에서 받아왔다.

보도국장이 되기에 앞서 해설위원 시절인 1986년 4월 21일, 전두환 내외의 유럽순방 귀국일 실황중계 때 그는 "이번 전두환 대통령의 EC 4개국 순방은 우리 경제의 국제화, 우리 경제를 선진국 경제에 진입시키는 초석을 다지는 획기적 계기다, 라는 평가"라고 해설하기도 했다.

이길영씨는 1988년 KBS 대구방송총국장에 이어 91년 보도본부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리고 98년 대구방송(TBC)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8년간 재임했다. 대구방송 사장 임기를 마친 그는 2006년 경북도지사 선거 때, 김관용 한나라당 후보의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고, 김 후보가 당선되자 경북도지사 인수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7년, 경북도가 설립한 대구경북한방산업진흥원(현 한국한방산업진흥원) 원장에 취임했다.

그는 2009년 11월, KBS 감사가 되었고, 3년 뒤인 올해 9월 초, 감사 임기 2개월을 앞두고 KBS에 이사장이 되었다.

KBS 감사가 된 이후 그에게는 '학위 변조 의혹' '대구경북한방산업진흥원장 시절 친구 아들 채용 비리 의혹' '한나라당 인사' 등의 비판이 뒤따랐다. KBS 새 노조는 "한마디로 말해 평생 권력을 쫓으며 허위와 기만으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혹평했고,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구악의 재림"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경력의 인물이 올 대선을 앞둔 시점에 KBS 이사장이 되자, 이를 박근혜 후보와 연결짓는 평가도 있다. 87년 대선 때 이길영씨가 KBS 보도국장이었고, 그 아래 정치부장은 최근까지 박근혜 후보 캠프오의 공보단장을 지낸 김병호 전 의원이었으며, 김인규 사장은 당시 정치부 기자를 지냈기 때문이다.

'논문표절' 김재우 이사장의 미래

 MBC노조 파업 26일째인 2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사옥에서 김재철 사장이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뒤 이진숙 홍보국장과 함께 사장실로 이동하고 있다.
MBC노조 파업 26일째인 2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사옥에서 김재철 사장이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뒤 이진숙 홍보국장과 함께 사장실로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MBC 방문진의 김재우 이사장의 연임은 김재철 사장 체제 신임을 뜻하는 것이다. 올 초부터 시작된 MBC의 장기 파업과 방송 파행, 김재철 사장에 대한 여러 의혹들에도 김재우 이사장은 김재철 사장의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울타리였던 터다.

그런데 김재우 이사장도 의혹과 도덕성 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학단협에서 이미 표절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판단을 받았고, 학위를 수여한 단국대에서도 최근 '표절'이라는 예비 판정을 내렸다. 그가 방문진 이사장으로 선임될 때 야당 추천 이사들이 그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사장 불가'를 강하게 제기하자, 김재우 이사장은 "단국대에서 '표절' 결론을 내리면 이사장은 물론 이사직에서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혀 '조건부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김재우 이사장은 논문표절 의혹뿐만 아니라 앞서 8대 방문진 이사장 시절 법인카드의 과다 사용도 문제가 되었다. 휴일에 법인 카드를 쓰고, 법인 카드로 와인을 구입하는 등의 법인 카드 용처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의혹을 안고 있는 김재우씨를 이사장으로 선임할 때 당시 여권 추천이사들은 "논문표절은 방문진 이사장의 업무수행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궁색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렇게도 인물이 없는가

KBS의 이길영 이사장, MBC 방문진의 김재우 이사장, 이 두 사람을 둘러싼 여러 의혹과 논란들을 보면, 새누리당을 비롯한 수구보수 쪽에 그렇게도 사람이 없는가 하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이들의 재발탁은 제대로 된 인물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꼴이다.

이런 조악스러운 인물 배치, 그렇게도 사람이 없는가 하는 지적은 EBS의 이춘호 전임 이사장의 EBS 이사 연임에서 거듭 확인된다. 그는 이명박 정권 출범 때 여성부 장관에 임명되었다가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낙마했던 그는 아파트, 오피스텔, 단독주택, 공장, 점포, 주차장, 임야, 대지 등 전국에 부동산 40건을 소유하고 있어, 언론으로부터 '부동산 백화점'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인물이다. 그는 오피스텔이 문제가 되자 "유방암 진단 결과 무사하다는 판정을 축하하는 의미로 남편이 오피스텔을 선물로 줬다"고 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여성부 장관 임명 당시 KBS 이사였던 그는 2009년 8월 말 KBS 이사를 끝낸 뒤 바로 EBS 이사장과 KT 사외이사를 겸해서 임명되었다. 이런 인물이 다시 EBS 이사가 된 것이다.

정말 인물이 없는 모양이다. '미래'를 거부하는 방송사 이사진 3인방의 검은 그림자가 박근혜 후보 앞에 드리워 있다.

덧붙이는 글 | 연재



#정연주#이길영#김재우#김재철#이춘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