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전국에 7000여 개의 대리운전 업체가 있다. 업계 종사자 수는 8만~12만 명, 하루 대리운전 콜은 40만 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의 경우는 2006년 이후 10여 개의 대형화된 업체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대리운전협회는 대리운전 업체가 2003년 후반을 기점으로 점차 대형화 추세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진입장벽이 낮은 이유로 최근 10년간 대리운전 업체의 수는 큰 폭으로 증가하였고 이들 업체 간 경쟁 또한 불가피 하게 되었다. 스타를 앞세운 화려한 광고와 외우기 쉬운 전화번호 선점 등 이미 포화시장이라고 판단되는 대리운전 시장. 그럼에도 새로운 신생업체들은 계속 들어오고, 기존 업체들 또한 큰 수익을 얻고 있다.
지속적 성장의 비결은 바로 이들에게 살을 뜯기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대리운전 기사'이다. 실제 대리업체 구인광고의 경우 기사의 역량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다고 광고한다. 구직자는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원하지만 대리운전 업체의 실제 수익구조를 살펴보면 기사가 열심히 일할수록 업체만 배불려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산시내 전 지역 1만 원" 또는 "3번 이용 시 1번 무료" 등 손님 유치를 위한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대리운전의 수익구조는 단순하다. 기사가 손님에게 받는 요금의 일정 부분을 회사에서 가져간다. 그 비율은 회사마다 다른데, 요금의 33%를 챙기는 업체도 있고 요금에 상관없이 3000~4000원의 수수료을 떼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A업체의 경우 기사가 손님에게 1만 원을 받는다면, 3000원을 회사에서 가져간다.
또한 이 업체의 경우 출근비 명목으로 자회사의 프로그램을 켤 때마다 3000원씩 가져간다. '출근비'이기 때문에 콜(대리운전기사가 손님의 정보를 확인하고 손님을 모셔다 드리는 것)을 타지 못 하더라도 우선 '적립금'에서 차감된다. 적립금이란 대리운전 기사들이 회사계좌에 예치시켜 놓는 돈을 말한다. 대부분의 대리운전 회사들이 선납금 제도로 운영된다. 매일 출근비를 내야 하고 한 콜당 3000~4000원씩 회사가 가져가기 때문에 미리 상당금액을 넣어 놓아야 한다. 예치된 돈에서 회사의 몫이 차감되기 때문이다.
돈이 모자랄 경우 기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일 출근을 할지 못할지 오늘 콜을 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우선 돈을 넣어 놓아야 대리운전 프로그램이 켜지고 손님의 위치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한 기사의 경우, 입금하는 걸 깜빡 잊고 출근한 경우가 있었는데 인터넷 뱅킹으로 뒤늦게 입금하려고 해도 업체 측에서 입금을 확인하는 시간이 있어 그날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며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한 달 사납금만 60만 원... 손님 없어도 기사 많으면 업체는 '장땡'
보통 대리운전 기사들은 각 회사의 '대리운전 프로그램'이 깔린 PDA,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GPS를 이용하여 가까운 곳에 대리운전을 이용하려는 손님의 위치가 확인되고, 다른 기사들보다 빨리 확인했을 경우, 그 손님의 정보가 해당 기사에게 주어지는 식이다. 지역 이동이 많고, 손님이 언제 어디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대리운전 기사들은 보통 한두 개 정도의 기기를 소지하며, 두세 개 회사의 프로그램을 깔고 동시에 이용한다.
그러나 B업체의 경우, '대리기사 확보'를 위해 자회사의 기기에 다른 회사의 프로그램을 깔 경우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도록 일종의 '덫'을 놓아 운영한다. B업체의 일만으로는 등록된 기사들이 일을 보장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의 발만 묶어놓는 것이다. 그 피해는 기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다른 회사 프로그램도 엉켜버린 것. 애꿎은 대리운전 기사들만 오류 난 기기를 다시 수리해야 했으며, 기사들뿐만 아니라 경쟁 업체의 원성도 함께 샀다.
C업체의 경우, 기사들에게 손님들의 목적지는 알려주지 않는 식으로 운영된다. 기사들은 손님을 어디로 모셔야 하는지 직접 만나기 전까진 알 수 없다. 기사들에게 손님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집과 정반대 방향일지라도, 혹은 손님의 목적지가 자신의 일정과 맞지 않더라도 기사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기사들이 기피하는 목적지로는 대리운전을 가지 않을 것을 우려한 업체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출발지만 알려주는 것이다.
여러 곳을 이동하는 직업 특성상 누군가에게 기피되는 목적지는 어떤 기사에겐 퇴근에 유리한 선호 방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의 비효율적인 운영방식으로 인해 기사들은 계획 없이 주어지는 콜에 따라 이곳저곳을 방황하게 된다. 물론 원치 않는 곳으로 갔을 경우, 다시 집결지로 나오기는 교통비는 기사 개인의 몫이다.
또한 이 업체는 대리기사 1명당 일주일에 15만6000원의 사납금을 받는다. 한 달에 62만4000원의 돈을 대리기사의 실적과 상관없이 받는 것이다. 대리운전 업체의 과대홍보, 기사 모으기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손님이 늘지 않더라도, 대리운전 기사를 한 명 더 늘릴수록 업체가 수익을 얻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기사가 수익으로 사납금을 채우지 못할 경우 자연스레 기사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온다. 과도하게 높은 사납금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대리기사뿐이다.
단말기 켜기만 해도 출근비 3000원... 특정 회사 보험 강요도
D업체의 경우, 한겨울에 기사들에게 '오리털 파카 금지령'을 내렸다. 대리업체는 안전한 귀가를 책임지는 기사의 이미지를 위해 대리운전 기사들에게 정장 차림을 요구한다. 하지만 저녁부터 새벽까지 길에서 기다리며 일하는 직업 특성상 대리운전 기사들은 보온을 위해 오리털 점퍼 등 외투를 걸치고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업체는 이러한 옷들이 손님들에게 단정치 못한 이미지를 심어준다고 판단하여 외투를 걸치고 일을 할 경우 합차(일정코스를 돌며 기사들의 이동을 도와주는 승합차) 탑승금지 또는 콜 금지 등의 엄포를 내리기도 했다.
대리운전 기사로 등록할 경우, 운행 중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보험에 들도록 되어 있다. 개인에 따라 월 6~8만 원 정도를 회사에 납부하게 된다. 2~3개 회사에 기사로 등록되어 일하지만 하나의 보험에만 들어도 대리기사로 일하며 일어나는 사고는 모두 보장되는 식이다. 하지만 D업체의 경우 기사들에게 자신의 회사에서 지정하는 보험을 들 것을 강요했다.
어디 회사에 소속되어 보험을 들든 대리기사가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것만 증명하면 되지만, 이 회사는 무조건 자신의 회사에서 보험을 들 것을 강요했다. D업체를 통해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자회사 프로그램 이용을 제한하겠다며 기사들에게 알렸다. 이미 다른 회사를 통해 보험료를 납부한 기사도 있었지만, 그 뒤로는 이 회사를 통해서만 보험료를 납부했다고 알렸다. 실제로 이 회사를 통해 보험설계사를 접촉하지 않은 기사들은 D업체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쉽게 '대리운전 구인광고'를 접할 수 있다. 업체 간 경쟁으로 인해 '기사 모시기'에 혈안이지만, 막상 업체는 '기사 등골 빼먹기'에 더욱 열심인 듯하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한 콜당 30% 정도 또는 일정액의 수수료를 업체에 지불한다. 출근비, 보험료는 따로 회사에 선입금으로 납부한다. 사고가 나더라도 기사 개인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점점 더 교묘한 방법으로 기사들을 채찍질한다.
C 대리운전 업체는 기사들에게 알리는 공지사항에서 이 같은 수익구조에 대해 '투자한 홍보비용에 비해 콜 증가에는 한계가 있으며, 경쟁사가 늘고 포화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효율적인 방안을 고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손님과 기사, 회사 측에서도 더 나은 수익구조를 통해 수익증대를 위한 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고, 사실상 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입장이다. 대리운전 업체들이 기사들과 파트너로서 함께 성장하며 기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도록, 업체의 인식변화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