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27일 오후 대선 패배 이후 첫 외부 일정으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의 빈소를 방문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27일 오후 대선 패배 이후 첫 외부 일정으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의 빈소를 방문했다. ⓒ 정민규

나는 20대다.
문재인을 지지했다. 민주통합당 대학생위원회가 연 '20's choice'라는 활동에도 잠시 참여했었다(물론 황당한 조직 구조와 엉성한 활동 내용때문에 발을 뺐다). 이번 대선의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패착은 이것이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다. 친노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구태가 패배한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대전제부터 틀렸는데도, 패배 원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문재인은 역대 최고의 후보였다

문재인은 역대 최고의 후보였다. 민주당이 갖고있던 대선 후보 풀에서 가장 월등했다. 내가 바라본 그는 달변가는 아니었다. 대중을 확 끌어당길만한 선동가도 아니었으며, 셈에 빠른 정치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김대중의 노회함도 없었고, 노무현의 과격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청렴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왔고,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수평적인 인물이었다.
  
문재인이 역대 최고의 후보였음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국민연대의 국민 후보였기 때문이다. 안철수와 심상정이 후보직을 사퇴하고 문재인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득표율이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는 물론, 민주화 이후 선출된 모든 대통령들보다도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손학규와 김두관이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혹자는 이야기한다. "국민연대는 새누리당이 싫어서 모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석훈은 왜 문재인을 지지한 걸까. 그는 삼성과 모피아의 지배 하에 있었던 참여정부에 학을 떼는 사람이다. 이명박을 지지했던 황석영의 합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평생을 새누리 계열의 정파에 있었던 윤여준의 국민연대 합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문재인 하나만 봤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들리지 않는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민주당의 구태 때문이다. 민주당의 역량이 전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이 표를 줄 마음을 먹지 못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터넷을 보면 "문재인은 좋은데 민주당은 싫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민주당이 총선 이후 적극적으로 당을 쇄신해나갔더라면, 국민들로부터 그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면 아마 중도층을 중심으로 50만표 이상 더 득표할 수 있었을 것이고 대선은 이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쇄신이 채 이뤄지기도 전에 지도부는 구태세력에 의해 포박됐다.
  
민주당이 문제다

이해찬 전 대표는 지난 9월 말 한겨레TV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서 "강한 후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쇄신"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는 끊임없이 후보와 지도부를 흔드는 세력이 있었다. 경선 과정에서는 부정 경선 의혹을 제기하며 몽니를 부리더니, 56%의 표를 얻으며 문재인이 후보가 되자 이번에는 안철수에게 옮겨 붙어 "문-안 중 1명을 선택하게 해달라"며 해당 행위를 일삼았다.

2002년 후단협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 일이었다. 후단협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뒤 소속 의원 대다수가 금배지를 내려놓음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문재인과 안철수 중 선택권을 달라던 전현직 의원 67명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안철수가 민주당에 입당해서 당을 개혁해야한다는 식의 '안철수 옹립론'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문재인이 부산 사상 지역구 의원직을 사퇴해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무책임한 소리도 늘어놓고 있다.
  
민주당 안에서만 상황 파악을 잘못한 것이 아니다. 이해찬의 사퇴를 공공연하게 종용해왔던 안철수 또한 상황을 잘못 본 것이다. 이해찬과 박지원의 연대를 문제삼으며 민주당을 구태로 몰아간 프레임은 새누리당과 조중동이 짠 것이다. 여기에 편승해 안철수가 이해찬을 공격하자, 당내에서는 김한길을 필두로 이해찬을 흔들어댔다. 이렇게 새누리당의 프레임을 이용해서 대선 후보와 지도부를 흔들어놓고, 이제와서 패배의 책임을 묻고있는 민주당의 모습은 지지자들로 하여금 심각한 염증을 느끼게 하고 있다.
  
주소없는 친노 책임론

대선이 끝나자, 구태 세력은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불명확한 '친노 책임론'을 들먹이면서 분탕질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추정컨대, 이들이 이야기하는 친노 세력은 지금까지 당권을 쥐고 있었던 한명숙, 이해찬, 문재인과 그들의 주변 인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는 '친노'가 아니라 '당권파'로 불리는 것이 마땅하며, 자신들이 당권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를 죽은 노무현에게서 찾는 저열한 정치 공세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아무에게나 '친노' 꼬리표를 붙이면서, 당내 기득권에 대한 야욕을 보이고 있다. 이들때문에 김대중의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던 이해찬과 한명숙이 단지 참여정부의 총리였다는 이유로 어느샌가 '친노'가 되어있고, 정동영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했던 박영선과 손학규의 측근으로 유명한 김부겸도 친노 정치인으로 불리우고 있다.

2008년의 민주당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존재감이 없었던 시절이다. 이때 민주당은 소위 '뉴민주당 플랜'으로 대변되는 우클릭으로 존재감을 상실하고, 정체성을 잃은 상태였다. 한나라당에는 우왕좌왕 끌려다니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으로부터는 욕이나 먹었다. 이같은 비정상적인 명명을 통해서 구태 세력이 당을 장악한다면, 19대 국회의 민주당은 또 다시 '동네 바보'로 전락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내년 5월 경에 새로 바뀌게 될 지도부는 철저히 새 인물로 채워야 한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기층에서 당의 정체성을 지키고, 개혁의 중심이 되어왔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았던 인물들이 지도부에 입성해야한다. 대여 투쟁의 선봉에 섰던 박영선, 김대중과 노무현을 보좌했던 김현미, 한미FTA 저격수로 활약했지만 비주류에 머물고 있는 최재천, 고 김근태의 부인으로 초선이지만 당 내외의 명망이 있는 인재근, 4대강의 반대 전도사로 나섰던 김진애, 매니페스토 우수의원이었던 전현희, 젊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장하나 등 민주당을 이끌 얼굴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하지만 지도부 선출에 앞서 친노 타령을 종식시키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들의 지도부 진출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구태 세력은 자신들의 당권 장악에 방해가 되면 또 다시 친노를 들먹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들의 입을 틀어 막으려면, 지금까지 당을 이끈 사람들의 희생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의원직 사퇴지만, 지금 의원직을 섣불리 버리는 것은 당장 내년 4월의 재보선에서 도리어 의석을 빼앗기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4월 총선을 이끈 대표로서 한명숙이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고, 문재인․이해찬․박지원이 차기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해야한다. 억울하고 답답하겠지만, 차기 지도부에 제대로 된 인물들이 입성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할 것이다. 그것이 당과 지지자와 역사에 대해 이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기여가 될 것이다.
  
2014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라

차기 대선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이유는 새누리당에서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의 유력한 차기 후보는 김문수, 오세훈, 나경원 정도다. 정몽준과 이재오는 너무 노쇠했고, 원희룡과 남경필은 대중 정치인으로서는 2%가 부족하다. 김문수, 오세훈, 나경원의 공통점은 수도권 지자체장을 지냈거나 혹은 도전했다는 것이다. 이미 세 사람은 의원직도 없기 때문에 대권 가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민주당은 전국에서 죽을 각오로 분전해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불씨를 지필 수 있다. 핵심은 역시 수도권이다. 민주당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2차례 재보선,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걸쳐 연달아 5번의 선거 동안 '수도권 정당'임을 입증해왔다. 따라서 앞으로도 민주당은 수도권의 중산층 유권자들을 상대로 포지셔닝해야 하며, 대선때 결집시켰던 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에서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 경기도를 주목해야 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은 유일하게 경기도지사만큼은 빼앗아오지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의 결과를 보면 경기도에 공통적으로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에 따른 민심 이반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와 인천의 괴리된 민심을 끌어 모아서 수도권의 지지율을 지금보다 더 끌어올릴 수 있어야 민주당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교두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문수가 2017년 대선 출마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3선에 도전할지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김문수가 출마한다면 경기도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만약 2010년 지방선거보다 득표율을 올려서 1% 안팎의 박빙으로 경기도지사에서 이기거나 패배한다면 김문수의 대권 가도는 2010년의 오세훈처럼 불안감이 팽배해질 것이다. 민주당은 경기도를 텃밭으로 삼고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권의 차기 주자에게 재를 뿌릴 수 있는 기회를 경기도에서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방선거가 곧 쇄신이고, 대선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지금부터 지방선거를 준비해야한다. 당장 경남도지사는 새누리당으로 넘어간 상황이고, 대선 득표율로 볼 때 인천과 강원, 충청은 재선이 불가능한 것이 기정 사실이다. 지방선거에 대한 대비는 곧 대선에 대한 대비로 이어진다. 현재 정국에서 재선 가능성을 높게 쳐줄 수 있는 유일한 자치단체장이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그렇다면 자동으로 박원순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은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점에서 볼 때 민주통합당을 탄생시킨 시민사회 세력의 상징이기도 하며, 경기도의 김문수에 대한 대항마라는 점, 영남 출신이라는 점 등 차기 대선을 치르기에 가장 적합한 점을 고루 갖고있다. 구태 정치에 찌들지도 않았고, 시민사회 출신으로 '유능한 시장'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박원순 한 사람으로 이미 새누리 진영의 차기 후보군인 오세훈과 나경원은 처단된 셈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박원순을 대선 후보로 민다 한들 민주당의 모습이 현재와 같다면, 민주당의 차기 지도부가 또 다시 구태 세력에게 넘어간다면 박원순은 경선의 문턱도 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민주당을 이끌어왔던 이들의 용단이 필요한 것이고,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1년 동안 착실히 지방선거를 준비해서 총선과 대선도 단계적으로 승리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선거는 곧 쇄신이고, 대선인 것이다.
  
원내대표를 새로 뽑은 민주당은 이제 비대위원장을 새로 뽑게 된다. 비대위 체제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불과 5개월 남짓한 임기 동안 민주당의 구태 세력을 뿌리 뽑기도 어렵고, 체질 자체를 개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뭘 해도 예쁨받을 새 정부 출범 석 달 동안은 대여 투쟁도 무의미한 일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5월에 들어설 지도부다. 당의 쇄신과 함께 1년 간격으로 치러질 지방선거, 총선, 대선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유능하고 참신한 지도부가 절실한 시점이다.


#문재인#친노#민주당#지방선거#대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