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할아버지와 줄곧 한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년기 시절 유독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많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온천에 가고, 오토바이를 타고 낚시를 다니고, 들판에서 연을 날렸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 할아버지는 상경할 때마다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 여러 장을 손에 꼭 쥐어주셨습니다. 그만큼 할아버지는 제게 매우 특별한 존재셨습니다.
하지만 지난 3월, 고향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습니다. 가장 후회되는 건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했던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취업 스트레스로 할아버지께 짜증을 부렸던 제 자신이 너무 미웠습니다. 취업해서 용돈을 두둑하게 드리고 싶었는데,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편안히 잠드시길 기원하면서, 장례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통장은 보이는데, 인감도장이 보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침대 밑, 장롱 속, 오토바이 짐칸 등 나올 만한 곳은 다 뒤져보았지만, 어디에도 도장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영영 도장을 못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후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민철아, 할아버지 도장을 찾았다. 그게 말이지. 엄마 핸드백에 있더라?" 저는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할아버지 도장이 왜 엄마 핸드백에 있어? 이상하네." 그러자 어머니는 울먹거리며 말하셨습니다.
"본인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셨는지, 마지막 선물로 주신 것 같네. 큰며느리 27년 동안 같이 사느라 고생 많았다고 사고 싶은 거 사라고 핸드백에 두신 것 같아." 평상시에 내색은 안하셨지만, 할아버지는 늘 어머니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어머니는 그저 우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