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서 전국의 주요 대학교수들 여론을 물어 선정한 2013년 사자성어가 '제구포신(除舊布新)'이라 한다. '제구포신(除舊布新)'이라?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내라"는 뜻인데 <춘추좌전(春秋左傳)>이 출전이다. 교수신문이 2012년의 한 해를 돌아보는 사자성어는 '거세개탁(擧世皆濁 ;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으로 지의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들다는 의미)'이었고 이 말은 초나라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
오래 생각하였다. 오늘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명확하되 '제구포신(除舊布新)'이라면 굳이 중국역사까지 찾아가 <춘추좌전>을 빌지 않아도 더 적확한 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춘추좌전>은 공자의 <춘추(春秋)>를 노나라 좌구명(左丘明)이 주석한 책이다. '제구포신(除舊布新)'은 소공(昭公) 17년 겨울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노나라의 대부(大夫) 신수(申須)가 이를 새로운 변화의 징조로 풀었다는 내용에 근거한다. 혜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길한 흉조로 여겼는데 신수는 오히려 이를 변혁의 징조로 풀었던 것이다.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새해 사자성어를 추천한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변혁은 불길함의 징조가 나타날 때 필요한 것"이라며 "다만 그 변혁은 백성의 믿음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추천배경을 밝혔다.
'불길함의 징조'란 무엇일까? 또 '백성의 믿음을 얻기 위한 변혁'은 무엇일까? 생각컨대 2013년을 여는 전제를 지난 연말 대선에서 찾지 않았나 싶다. 박근혜 후보에게 51.6%의 지지를 보낸 국민과 이에 반한 48.0%의 국민. 거의 반반으로 갈라진 민심을 생각하면 분명 우리 대한민국은 '불길한 징조'의 기로에 서있고 '백성의 믿음을 얻기 위한 변혁'이 절실함을 공감한다. 허나 문제는 이를 나누어 본다는 시각과 입장에 있지 않을까?
한 걸음 나아간 문제제기는 왜 굳이 중국 역사와 고사에 빗대었는가이다. 우리 시각과 입장에서 걸맞는 금언이 없다면 그래도 좋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있지 않은가?
두 가지 문제제기를 아우르면 '불길한 징조'를 넘어서 '국민의 믿음을 얻는 변혁'을 우리 국민이라는 하나의 주체의 시각과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우리 역사의 맥박에서 교훈을 찾으면 어떤가 하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 아시다시피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중국에 기대어온 조선의 문맥을 우리 현실의 고구(考究)에서 찾자는 연암 박지원의 문(文)과 행(行)의 화두였다.
'법고창신(法古創新)'.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새겨보았을 금언이다. 왜 연암은 공자(孔子) 왈(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두고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새로 세웠는가? 그리고 이 금언이 비단 문체(文體)에 한정된 것이었을까?
천박한 식견의 소치일지는 모르나 감히 답한다면 조선조 사대적(事大的) 문치(文治)의 근간이었던 이른바 '공자(孔子) 왈(曰)'을 벗어나 '우리 민족 왈(曰)'의 문체(文體)로 행(行)하고자 하였던 돈오(頓悟)가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아니었나 되새기는 것이다.
정조에게 문체반정(文體反正)의 단속까지 받지만 연암은 이를 문체에 그치지 않고 민생에 실천한다. 경상도 안의현감으로, 또 충청도 면천군수와 강원도 양양부사로 재임하면서 행한 목민(牧民)과 선정(善政)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묵언으로, 그러나 엄숙하게 오늘 우리 대한민국에 말을 건넨다. 18세기 영정조 중흥이 근대조국으로 발흥하지 못하고 좌절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연암의 '법고창신(法古創新)'에서 이어진 '동도서기(東道西器)'가 좌절하고 닥친 비운이 경술국치 아니었던가?
돌아보면 당시 청나라의 '중체서용(中體西用)'과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 그리고 우리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는 모두 서양의 부국강병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 마주친 하나의 문제인식이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이 과제를 이뤄낸 일본 군국주의 앞에 청과 조선 두 나라의 운명은 어떠했는가?
이제 이백여년이 지나 2012년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대한 역사의 이름으로 '교수신문'에 묻는다. 궁벽진 역사의 금언에 빗대어 현학(衒學)에 연연할 것인가? 역사의 준엄한 교훈을 새기며 우리 역사의 처절한 깨달음을 딛고 우리 몸 우리 생각으로 서고 행할 것인가? 그래서 '제구포신(除舊布新)'이 아니라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지난 이백년, 우리는 위정척사와 동도서기로 나뉘어 나라를 빼앗기고 국민을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일제 치하에서 항일과 친일로 우리끼리 상잔(相殘)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국권을 찾지 못하였다. 광복 후에는 좌와 우로 갈라져 분단과 전란의 처참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성장과 민주의 반목과 갈등 앞에 서있다.
스스로 또한 지식에 기대어 사는 백면(白面)과 백수(白手)의 문약한 처지이지만 객관과 학리의 미명 아래 국민의 여망을 가르고 참된 지행(知行)과 아세(阿世)를 구분 못하는 우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연하여 뼈를 깎는 탁마(琢磨)의 정신으로 굳게 서서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항일과 친일의 기로에서, 또 좌와 우의 갈림길에서, 성장과 민주의 역정에서 우리 대학과 강단은 무엇을 했는가?
학위와 급부가 없이도 현대사의 갈림길마다 문행(文行)으로, 또 지행(知行}으로 우뚝했던 선학들을 우러른다. 만해 한용운과 이육사, 심훈과 윤동주의 문행(文行)은 주지의 가르침이고 장준하 선생, 함석헌 선생, 임종국 선생, 또 장일순 선생 같은 분들의 묵묵한, 그러나 그 치열한 헌신의 길 또한 오롯이 선연하다. 어디 이 분들께 현학의 학위나 강단의 급부, 또는 생전의 명예가 있었던가?
2012년 우리 대한민국은 51.6% 대 48.0%의 '불길함의 징조'에 직면해 있고 '국민의 믿음을 얻기 위한 변혁'을 요구받고 있다. 역사는 말한다.
세종은 중국에서 빌어온 민즉천(民卽天)의 왕도(王道)를 시현하는 화두로 맹자의 '발정시인(發政施仁)'을 즉위교서에서 스스로의 문행(文行)으로 비꾸어 '시인발정(施仁發政)'으로 펼친다. 그리하여 조선초 왕자의 난 등으로 피비린내 나던 조정을 통합과 관용으로 수습하며 진정한 '인(仁)'이 백성의 민생에 끼치도록 선정을 실천한다. 중국의 사상과 역사의 경험을 빌었으되 우리 생각 우리 몸으로 바꾸어 실천한 문행(文行) 아니었던가?
정조는 연암 박지원 등의 '법고창신(法古創新)' 류의 문행(文行)을 문체반정(文體反正)으로 단속하면서도 감싸 실용의 길을 열어주는 동시에 채제공, 정약용, 성해응 등에게 <춘추좌전>을 편찬하도록 한다. <춘추좌전>은 교수신문의 '제구포신(除舊布新)'의 출전이다.
이제 우리가 알다시피 1800년 정조의 죽음 후에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박지원 일파와 <춘추좌전>에서 나아간 정약용 일파는 서로 만나 아우르며 조선중흥의 기운을 이루지 못한 채 <열하일기(熱河日記)>와 <목민심서(牧民心書)>로 상징되는 문행(文行)의 유업을 남긴 채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다시 바깥 경험과 정신에 기대인 '제구포신(除舊布新)'인가? 우리 몸 우리 깨달음인 '법고창신(法古創新)' 인가?
끝으로 연암 박지원 선생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되새기며 2012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지행(知行)과 문행(文行)의 사명을 새기고자 한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초정집서>(楚亭集序)에서 이렇게 말한다.
"天地雖久 不斷生生 하늘과 땅은 비록 오래되었으나 끊임없이 새것을 낳고, 日月雖久 光輝日新해와 달은 비록 오래 되었으나 그 빛은 날로 새롭다." 연암은 이로써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말하는데, '법고창신'은 본받을 '법'(法), 옛 '고'(古), 비롯할 '창'(創), 새 '신'(新)으로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해 낸다'는 의미이다.
연암은 그의 저서인 <연암집(燕巖集)>권7 <영처고서(嬰處稿序)>에서 기술한 바, 자신이 속해 살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 작가의 임무이지 당대 현실과 동떨어진 한당(漢唐)의 글을 모방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다. 문체가 고문과 비슷할수록 그 작품의 표현은 더욱 거짓될 뿐이며, "古世 입장에서 今世를 보면 비속하겠지만 古人들이 자기 시대의 것을 보았을 때도 반드시 고풍스럽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시대 역시 한 금세였을 것이다"라 하였다.
"法古者秉泥跡 옛 것을 본받는 자들은 그 옛것에 구속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병폐이고, 嗆新者患不經 새것을 창조해 내는 사람들은 불경한 것이 병폐이다. 苟能法古而知變 참으로 옛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刱新耳能典 새것을 창조해 내면서도 근거가 있다면 今之文猶古之文也. 이 시대의 글이 고문과 마찬가지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초정집서(楚亭集序)> 券1'교수신문'으로 상징되는 오늘 우리의 지식인들이 <玉匣夜話>에 갇혀있던, 또는 표표히 역사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던 허생(許生)의 귀환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민생과 중흥의 경학(經學)과 창신(創新)의 문행(文行)으로 생생지락(生生之樂) 대한중흥의 새 날을 열 것이 아닌가.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와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한 목소리로 약속했던 약속했던 '국민대통합'의 초석 위에 화합과 상생(相生)의 대한민국을 열 수 있지 않은가? 파란과 불안의 2012년을 보내며 2013년을 새로이 맞는 불민한 자의 생각이다.
다음은 '교수신문'이 밝힌 2013년 희망의 사자성어 원문입니다. 참고하셔서 함께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6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