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국가에 있어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1년 동안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
지난 2일 인기 아이돌그룹 SS501 출신의 가수 겸 배우 김형준(26)씨가 국회의원들 앞에 섰다. 김씨의 지상파 연기자 데뷔 무대인 MBC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 촬영이 한창인 상황에서, 그가 국회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씨가 향한 곳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중문화예술분야 법제도 개선 공청회였다.
이날 공청회는 성상납 의혹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장자연씨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마련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지원법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박창식 의원이 지난 8월에 발의한 이 법안에는 연예기획사 등록제와 표준계약서 제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김씨는 국회의원들과 대중문화 전문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상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데뷔 시절 경험담을 전하면서 "무자격 기획사를 걸러낼 수 있는 연예기획사 등록제로 후배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소신을 밝혔다.
아이돌 출신의 젊은 배우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장자연 사건 방지법'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다. 그가 소신 발언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김형준씨 쪽에 인터뷰를 요청하니, 바로 '만나자'는 답이 왔다. 23일 낮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MBC드림센터 내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앉자마자, 자신의 데뷔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김씨는 지난 2000년 연습생 신분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뒤 2005년 SS501의 보컬로 데뷔했다. 2010년 SS501가 해체된 후, 그는 솔로 가수와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모델 시켜주겠다'고 기획사 따라갔지만, 돈만 떼여"김씨가 연예계에 발을 들인 건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2000년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는 전철역 앞에서 연예기획사 몇 곳으로부터 명함을 받았다. 기획사 관계자들은 명함을 건네며 "연예인에 관심 있어요? 카메라 테스트를 받아보자"고 말했다. 김씨는 "몇 차례 '길거리 캐스팅'을 경험하자, 신기하면서도 '나도 연예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모의 반대에, 몰래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러면서 무자격 연예기획사의 현실을 알게 됐다. 그는 "오디션을 보기 위해 찾아갔더니, 작은 사무실에 덩그러니 사장 명패만 있었다"며 "여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피해자가 됐다. "'아이돌로 바로 데뷔할 수 있다', '너 안 하면 다른 친구가 한다'고 하니, 연예인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혹할 수밖에 없었다"며 말을 이었다.
"당시에 연예기획사들은 학교 정문에서 명함을 뿌렸어요. '모델 하자'고 제안을 많이 했어요. 친구 몇 명이 갔어요. 프로필 사진을 촬영한다면서 수십만 원을 달라고 해요. 100만 원 넘게 낸 친구도 있어요. 친구들은 모델이 될 생각에 돈을 빌려서 냈죠. 그런데 촬영은 계속 미뤄졌어요.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돈만 떼였어요. 소송을 할 수도 없고, 미성년자가 어떻게 대응을 하겠어요?" 김씨가 대형 기획사 연습생이 된 후에도, 영세한 연예기획사의 유혹은 계속됐다. 그는 "학교도 안 가고 하루 10시간씩 연습하다보면, '이러다 잘리면 어떻게 하지?', '언제 데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해 초조해진다"며 "다른 영세 기획사에서 '바로 데뷔시켜주겠다'고 하면,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실제로 함께 연습했던 사람들 중에 유혹을 받고 떠난 사람이 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동생도 연예기획사로부터 피해를 당했다. 동생 기범씨는 2006년 12월 '씽'이라는 아이돌 그룹에 속해 싱글앨범을 냈다. 소속사는 방송 출연을 약속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씨는 "결국 동생이 소송을 통해 계약 해지를 할 수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범씨는 이후 아이돌그룹 유키스로 데뷔했지만, 또 다시 소속사와 분쟁을 겪은 뒤 일본으로 떠났다.
"연예인들에게 잘해주는 깨끗한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대화 주제는 곧 현재로 옮겨왔다. 김형준씨에게 공청회 참석이 부담스럽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그동안 소속사 대표님과 이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와 관련된 법안과 제도가 어떻게 토론되는지 궁금했고 공부하고 싶었다"면서 "저도 어렸을 때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문제가 많았고 주변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다, 이 법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 법이 발의된 지 9월이 됐지만,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8월에 발의한 이 법은 현재 해당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또한 18대 국회에서 나경원(새누리당)·최문순(민주당) 전 의원이 연예기획사 등록제를 담은 법안을 발의했지만, 두 의원의 선출직 출마로 인해 폐기됐다.
김씨는 "국회의원들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서 현실과 법안의 필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국회의원 자녀들이 연예인을 한다고 하면, 이 법이 이렇게 관심을 못 받지 않을 것 같다"면서 "많은 인재들이 잘못된 길로 가서 망가지고 없어지는 일이 많다, 지금 커나가는 후배들을 위해서 정말 간절한 법"이라고 전했다.
그에게 고 장자연 사건을 아느냐고 물었다. 최근 "영화 <노리개>를 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4월 개봉한 <노리개>는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해, 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다룬 영화다. 그의 말이다.
"사회에서 크게 부각됐던 사건이니까 내가 몸담고 있는 연예계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니까 씁쓸했어요. 내가 몸담고 있는 연예계가 이랬나 싶었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군대를 다녀온 후 미래에 기획사를 차리고 싶은데, 연예인들에게 잘해주는 깨끗한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대중문화발전법①] 전자팔찌 찬 고영욱... 방지법 만들어지나?[대중문화발전법②] "드라마 스태프 혹사... 외국이면 구속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