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는 서비스 분야에서 수년째 '고객만족도 1위'라는 타이틀을 자랑합니다. 'A/S는 삼성이 최고'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고객들을 상대하는 기사들의 친절함과 신속 정확한 수리 덕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주인공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삼성의 옷을 입고 있지만 삼성의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협력사의 직원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삼성A/S의 눈물' 연속보도를 통해 고통 위에 세워진 '1등 서비스'의 실체를 확인하려 합니다. [편집자말] |
"저희만 타깃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장도급 의혹과 관련한 반론을 취재하는 과정이었다. 그 말 앞에는 "이런 말을 하면 기사에 쓰실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도 덧붙여 있었다. 얼핏 들으면 위장도급 의혹을 인정하는 말 같았다. 천하에 삼성이 이렇게 '쿨'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일까? 결론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위장도급 의혹'이 제기된 것에 억울함을 표현한 말이었지, 이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전자제품 서비스 업계 전반이 똑같은 형태로 운영되는데 "왜 삼성만 때리냐"는 것이다.
지난 17일 <오마이뉴스>가 삼성전자의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 의혹을
최초 보도한 이후 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사례와 함께 "우리도 같은 처지"라며 다른 업체 소속의 서비스 기사들의 호소가 많았다. 어디 A/S 업계만 그럴까? 국내 웬만한 대기업치고 사업의 일정 부분을 도급으로 운영하지 않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특히 고객 응대나 서비스 분야는 '백이면 백' 도급이라고 봐도 무방한 지경이다. 상황이 이러니 '왜 삼성만 때리냐'는 억울함도 이해될 만하다.
인력 운영의 유연성 위해 맺는 '도급계약'
법적으로 도급은 도급인이 부탁한 어떤 일이 수급인이 완성하게 되면 이에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관계를 말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노무'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완성'을 놓고 거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고용계약'과 구분된다. 여기서 도급계약 관계를 고용계약처럼 이용할 경우, 즉 수급인의 노무에 도급인이 관여하게 되면 '위장도급'이라고 볼 수 있다. 수급인의 실체가 있다면 '불법파견', 실체가 없이 도급인이 사실상 운영하는 업체라면 '묵시적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에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대 기업 가운데 하나인 현대자동차의 사례가 있다. 현대자동차는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도급에 하도급까지 맺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씨가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현대차가 최씨를 직접고용하고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불법파견'이라는 판단이다. 최근에는 신세계 이마트에서 '불법파견'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에서 적발됐다. 이마트 역시 판매업무에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고용관계로 사용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기업이 직접고용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으로 사용하면서 비용을 아끼는 것도 하나의 효과지만 무엇보다 도급계약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인력 운용의 유연성이다. 직접고용했을 경우 해고가 쉽지 않은 반면, 도급관계는 도급업체와 계약을 파기하거나 재계약 하지 않는 방법으로 손쉽게 인력을 정리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신세계에 뒤이어 이제는 삼성이다. 삼성전자의 제품 수리 서비스를 전담하는 삼성전자서비스는 전국에 170여 개 서비스 센터를 운영하면서 각 센터별로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수리 업무 대행을 맡겼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채용·교육·징계·평가 등 고용관계에서 발생하는 사용자의 권한을 행사했다. 이에 '위장도급' 의혹이 제기 됐고,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에 들어갔다.
서비스 기사 직접고용, 과연 손해날까?삼성을 비롯한 여러 제고기업들이 가전제품 수리 업무에 도급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이 분야가 별로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말 삼성전자서비스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연매출 1조681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 총이익은 1231억 원이지만 각종 영업비용을 제외한 실제 영업이익은 75억 원에 불과했다.
매출은 높지만 서비스 업무의 특성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회사가 남기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삼성이 이 정도면 다른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S는 그것 자체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이라기보다는 고객의 재구매를 유도하는 하나의 영업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런 면에서 직접고용은 서비스 기사들의 고용안정에 따른 숙련도 향상과 처우개선을 통한 능률 향상 등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직접고용의 효과는 눈에 보이는 것만 있지 않다. 취재 결과 삼성전자서비스는 1년 내내 수시로 협력업체 직원을 뽑는다. "근무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게 현장 기사들의 전언이다. 그만큼 처우가 나빠 이직률이 높다는 뜻이다. 고용이 안정되고 '다닐 만한 직장'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이직률이 줄고 수시로 진행됐던 채용과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직접고용을 하게 되면 117개나 되는 협력업체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서비스 기사들의 처우 개선에 사용할 수도 있다.
괴롭다는 서비스 기사들에게서 '행복한 서비스'가 나올까
다시 삼성전자서비스가 억울해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제는 삼성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업계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른 기업들과 삼성이 차이가 있다면 삼성 스스로 '초일류기업'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일 삼성이 신경영을 선언한 지 20년을 맞아 진행된 기념행사에서 이건희 회장은 "도전과 혁신, 창조경영으로 초일류기업의 위치를 지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 따뜻한 사회, 행복한 미래를 만들자"고 밝혔다. 도전하고, 혁신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 하려면 '왜 우리만 때리느냐'며 억울해할 틈이 없다.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아니 이미 '초일류기업'임을 자부하는 삼성이 다른 기업들에 묻어가려는 모습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A/S는 삼성이 항상 '1등'을 자랑해왔던 분야 아닌가.
개인적인 바람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이마트처럼 자발적으로 직접고용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삼성이 바꾸면 다른 기업들이 쫓아하는 경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서비스 기사들을 직고용 한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게 클 것이다. 삼성으로도 업계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을 자신있게 시행하기에는 부담감이 클 것이다. 사실 삼성이 억울해하는 '삼성만 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찌됐든 역시나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위장도급 의혹을 전면로 부정했다. 협력업체 경영에 간섭하고 직원들 인사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제기되고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진행되면서 그 진위여부는 밝혀질 것이다.
위장도급 문제가 앞으로 결판 날 문제라면, 지금도 업무과중과 저임금을 호소하는 서비스 기사의 목소리는 현실의 문제다.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협력업체 직원들의 근로실태 문제와 관련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직원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이 도전하고 혁신하는 자세,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최소한 서비스 기사들이 제기한 근로실태 문제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해야 한다.
삼성에 대한 인식은 텔레비전 속 광고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고객을 직접 마주하는 서비스 기사야말로 삼성의 얼굴이다. 이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삼성의 서비스가 행복할 수 있을까? '왜 나만 때려'라며 칭얼거리지 말고 '삼성'이라는 이름을 걸고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 땀 흘리며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는 노동자들을 보기 바란다. 이들이 진짜로 웃을 때 삼성의 고객들도 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