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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6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광주전라입니다. [편집자말]
혼자는 처음이었다. 무등산을 찾을 때마다 옆에는 친구, 동료, 가족이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지난 6월 29일 혼자 무등산을 찾았다. 올해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을 어떻게 소개할까 많이 고민했다.

'오버하지 말고 평소 내가 오르던 대로, 느끼는 바를 진실되게 전달하자'고 결론 내렸다. 다시 말해서 나의 계획은 '오를 수 있을 데까지 오르다 지치면 내려오자'였다. 하지만 계획과 예상은 빗나갔다. 나는 증심사-바람재-토끼등-중머리재-용추삼거리-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동화사터-토끼등-증심사 코스를 선택했다. 무려 9시간이 걸렸다. 오전 10시 시작해 오후 7시에 내려왔다. 

 광주를 감싸고 있는 무등산의 모습
광주를 감싸고 있는 무등산의 모습 ⓒ 신원경

혼자 이런 욕심을 낸 이유는? 무등산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글로 새로 무등산을 찾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무리를 했다. 나는 '저질체력'의 소유자다. '산을 급하게 타서 무엇하리,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오르면 그곳이 정상과 뭐가 다를까'라는 유연한(?) 생각도 하고 있다. 이런 내가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온갖 신음소리를 내며 강행군을 했다. 

혼자 오르니 과거 무등산에서 겪은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무등산 안내지도
무등산 안내지도 ⓒ 신원경

'광주의 어머니' 무등산

지금의 무등산과 내 기억속의 무등산에는 몇 가지 다른 게 있다. 일단 증심사 근처 모습이 그렇다. 현재는 아웃도어 매장이 즐비하지만 예전에는 보리밥, 파전 등을 파는 식당이 많았다. 그중 황토색 벽지가 매력적이었던 그 보리밥집이 생각난다.

또 증심사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유명 브랜드가 아닌 일반 산행 도구를 파는 가게도 많았다. 그곳에서 무등산 지도가 그려진 빨간색 손수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꾸준히 무등산을 찾았다. 아빠가 "무등산 한 번 갔다 오자", 친구가 "주말에는 무등산에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오자"하면 곧잘 따라 나섰다. 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김인주 본부장에게 "무등산은 광주의 어머니"라는 소리를 듣고 몸이 먼저 반응했던 까닭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광주 사람은 무등산을 사랑했다.

 무등산에서 바라본 광주.
무등산에서 바라본 광주. ⓒ 신원경

지금은 어머니 품 같은 무등산을 멀리서도 눈으로 알아볼 수 있다. 완만하고 둥글둥글한 능선은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을 준다. 무등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100만 명이 나눌 수 있다니, 광주시민에게는 '젖줄' 같은 곳이다. 

이날 산에서 얼마 전 그만두신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만났다.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아파트에서 일하신 아저씨다. 최근 아파트는 경비직을 간접고용으로 바꿨고, 아저씨는 그때부터 안 보였다.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는데, 산에서 밝은 얼굴로 뵈니 반가웠다. 무등산은 이렇게 경비아저씨도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저 멀리 중머리재가 다 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하늘빛이 보인다.
저 멀리 중머리재가 다 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하늘빛이 보인다. ⓒ 신원경

싱그럽고 촉촉한

산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다. 산에 올 때마다 그걸 느낀다. 뭔가 싱그러우면서도 촉촉한, 계절마다 그 냄새는 조금씩 다르다.

내게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무등산에 관한 추억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계절마다 무등산의 매력은 다르다. 향기도 다르다. 말로 굳이 표현하자면 봄은 탱탱하고 여름은 싱그럽다. 가을 감미롭고 겨울은 묵직하다.

 아름다운 능선을 자랑하는 무등산.
아름다운 능선을 자랑하는 무등산. ⓒ 신원경

주위 친구들에게 여름 산행을 권하면 대개 "더워!" "죽을 일 있냐!" 등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내게 여름 산행은 찜통 속 걸음이 아니다. 적어도 숲이 도심보다 시원하다. 바람과 그늘이 있고, 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어렵게 봉우리에 올라 광주를 내려다볼 때, 몸을 감싸고 지나가는 바람은 에어컨, 선풍기와 비교할 수 없이 시원하다. 

증심사에서 바람재로 향하는 길 옆으로 물이 흐른다.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깨끗하고 차갑다. 꼭 산에 오르지 않아도 이 물에 발을 담그러 오는 소풍객도 많다. 이날도 선생님을 따라 온 초등학생들이 물가 근처에 돗자리를 폈다.

 선생님과 무등산 계곡을 찾은 초등학생들.
선생님과 무등산 계곡을 찾은 초등학생들. ⓒ 신원경

'너덜' 감상은 무등산의 또 다른 재미

바람재에서 토끼등으로 가는 길은 거의 평지다. 작년 겨울, 눈 내리는 날 친구들과 이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만약 드라마 PD라면 이곳에서 아름다운 한 컷을 찍으리라.'

이날도 그 길을 택했다. 길 양쪽에 나무가 서 있고, 오른편에는 나무 사이로 능선이 힐끔힐끔 보이는 것이 사람 마음을 콩닥콩닥 설레게 한다. 좀 더 가다보면 '너덜'도 볼 수 있다. 너덜은 돌이 흩어져 있는 비탈을 의미하는 우리말로 '너덜겅' 또는 '너덜강'으로 불린다. 언젠가 <한겨레> 조홍섭 환경전문기자는 이런 글을 썼다.

"무등산의 너덜은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서사면에 발달한 무등산 최대의 덕산너덜은 동화사터에서 바람재와 토끼등 사이에 길이 600m, 최대 폭 250m 규모로 펼쳐져 있다."

이 길은 무등산의 대표적인 덕산너덜이 있는 곳이다. 의자에 앉아서 마음껏 감상할 수도 있다. 내가 본 가장 좋은 너덜은 토끼등에서 중머리재 가는 길에 있다. 겨울에는 돌 위에 눈이 쌓이면, 꼭 장독대를 모아놓은 것 같은 모습처럼 보인다. 

 토끼등에서 중머리재 가는 길에 펼쳐진 너덜.
토끼등에서 중머리재 가는 길에 펼쳐진 너덜. ⓒ 신원경

두렵지만 아름다운 이름, 서석대

항상 중봉까지였다. 중간에 있는 봉우리여서 중봉이다. 중머리재까지 오르면 조금 아쉽고, 한 번 더 올라 중봉(해발 915m)까지 오르면, 그래도 꽤 올랐다고 위안하며 내려갈 수 있었다.  2011년 생일, '유흥보다 산'이라는 주제로 후배들과 무등산을 찾았다. 그때 후배들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오늘은 서석대(해발 1100m)까지 가볼까?"

하지만 그날도 역시 중봉에 만족하고 내려왔다. 내게 서석대는 '바라만 봐도 벅차고, 굳이 올라가기는 두려운 곳'이었다. 물론 알고 있었다. 서석대가 아름답다는 걸 말이다. 가보진 않았지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화산활동 후 남은 주상절리대. 천연기념물 입석대(해발 1017m)와 서석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엄숙한 그 절벽을 향해 발을 떼기에는 내 의지가 부족했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입석대(오)와 서석대.
장불재에서 바라본 입석대(오)와 서석대. ⓒ 신원경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장불재(해발 900m)에서 입석대와 서석대를 올려다보는데, 왠지 여기까지 왔으니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게으름 피우고 싶지 않았다. 먼저 입석대로 향했다.

입석대는 한 면이 1~2m인 5~6각 또는 7~8각의 돌기둥 30여 개가 수직으로 솟아 동서로 40여m 늘어서 있는 주상절리대다. 어떻게 산꼭대기에 이런 주상절리대가 형성됐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입석대에서 조금 더 오르면 서석대가 나온다.

 입석대의 모습.
입석대의 모습. ⓒ 신원경

"서석대는 입석대보다 풍화작용을 적게 받아 한 면이 1m 미만인 돌기둥들이 약 50여m에 걸쳐 동서로 빼곡히 늘어서 있다. 이 돌병풍같은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처럼 반짝인다 하여 '수정병풍'이라고도 불린다." - 무등산국립공원 설명 중

 서석대의 모습.
서석대의 모습. ⓒ 신원경

매번 멀리서 바라보던 주상절리대를 가까이서 보니 참으로 신통했다. 돌기둥 사이사이에 난 풀과 이끼도 신기하고 봄이면 꽃도 핀다고 하니 자연의 신비가 놀랍기만 하다. 

서석대의 감흥도 잠시, 실감나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인왕봉과 천왕봉(해발 1187m)이었다. 무등산 정상 천왕봉은 군사제한구역으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일반인 출입이 불가능하다. 작년부터 분기별로 하루씩 천왕봉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이날 서석대에 오른 한 할아버지는 "나쁜 놈들이 산에다 저런 걸 설치해서 산 다 망쳐 놨다"고 한숨을 뱉었다.

 서석대에서 바라본 인왕봉과 천왕봉의 모습.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서석대에서 바라본 인왕봉과 천왕봉의 모습.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 신원경

서석대에서 중봉으로 능선을 따라 걸었다. 중봉에서 동화사터로 또 능선을 따라 걸었다. 고개만 휙휙 저으면 무등산의 아름다운 능선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저 멀리 광주가 짠하게 밀려오는데... 왠지 슬프기도 했다.

혼자 가도 함게 걷는 산

이날 무등산에서 만났던 '오뚜기 산악회' 분들, 혼자 '셀카' 찍을 때 사진기 뺏어 찍어주신 부부, 무등산이 낯선 경상도 사람들, "산에 오면 이런 거 먹어야 한다"며 오디 다섯 개 따주신 아저씨, "선녀같이 예쁘게 산도 잘탄다"고 칭찬해주신 아저씨.... 홀로 걷되 함께 가는 게 뭔지를 알려준 산행이었다. 

 지나가는 등산객 아저씨가 따주신 오디 5개.
지나가는 등산객 아저씨가 따주신 오디 5개. ⓒ 신원경

무등산관리소에 물으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3개월째라 아직 정확한 방문객 규모를 집계하는 건 어렵단다. 다만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다. 무등산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면 한다.

물에 발 담그는 법을 무등산에서 처음 배웠다. 넓적바위 위에 구름을 이불삼아 낮잠자는 법을 배운 곳도 무등산이다. 이곳에서 함께 걷는 즐거움을 익혔다. '나는 무등인'이라는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새기기도 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산. 광주, 호남사람이 아니어도 무등산을 보면서 짠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무등산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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