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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창기, 변똥, 변기, 변기통, 똥씨, 옥떨메......

위 단어들이 뭔 줄 아시나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게 아니랍니다. 제가 대한민국 울산이란 지역에서 살면서 들어왔던 단어들 입니다.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들이나 형들로부터 심심찮게 들었고, 회사에 들어와서도 누군가에게 들었던 단어입니다.

"제 이름은 '변창기'라고 합니다."

 변창기 시민기자
변창기 시민기자 ⓒ 변창기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또 좋은 모임이 있어 참석할 때마다 저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름 석자부터 말하지요. 김씨, 이씨, 박씨, 전씨, 양씨, 유씨, 명씨, 위씨, 우씨, 사씨, 관씨, 용씨, 옥씨, 피씨…. 저는 수많은 성씨 중에 왜 하필 저는 변씨 일까요?

"엄마, 난 변씨가 싫어요. 엄마 성씨로 바꿔 주세요. 아이들이 자꾸 똥씨라 놀려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놀림을 많이 당하다보니, 어머니에게 성씨를 바꿔달라고 떼를 쓴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당시는 법적으로 그런 일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뿐더러 유교 사상에 길들여진 대한민국 남성 중심의 씨족 사회구조에선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변씨란 것이 불쾌했습니다. 제 성씨와 관련하여서도 놀림을 받아 싫었지만 얼굴 생김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듣기 싫었던 말... "야 니 옥떨메 닮았다"

"야 니 꼭 옥떨메 닮았다."

사춘기 시절, 어느 날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나중에 그 단어의 의미를 전해 듣고는 기가 죽어 지냈습니다. 가뜩이나 집안이 가난하고 부모가 문맹이라 기가 죽어 지냈는데, 주변에서 아버지 닮았다는 말까지 듣다 보니, 내성적인 성격은 더 심해졌습니다.

제 아버지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었기에 저는 "아버지 닮았다"는 이야기도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옥떨메' 라니요. 옥떨메의 의미는 말 그대로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였습니다.

저는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생기면 옥떨메 닮은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삶의 용기도 점차 잃어 갔습니다. 학교 다닐 땐 선생님이 제 이름을 부르면 겁부터 덜컥 났습니다. 국어와 사회, 도덕 뭐 이런 시간엔 지명해 서게하고 책을 읽어 보라는 선생님의 하명이 뒤따르곤 했었는데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니는 니 아비 닮아 머리가 둔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고 자란 탓에 저는 제 자신을 '나는 머리가 둔해서 공부도 못하고 못생겨서 앞에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문처럼 외우곤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선생님이 지명하면 일어나긴 하지만 속부터 떨렸습니다. 아는 글이 몇 개 없어서 떠듬떠듬 거리며 책을 읽으면 곧장 날아오는건 몽둥이 세례였습니다.

선생님은 교사용 지휘봉 머리를 한 대 내리칩니다. 그리곤 "너 중학생이 되어서도 아직까지 책 하나 못 읽나. 앉아라 이놈아"라고 혼냈습니다. 비웃는 듯한 친구들 웃음소리가 머릿속과 가슴속에 남아서 늘 윙윙거리며 맴돌았습니다.

'그래, 난 머리도 나쁘고, 생긴 것도 못 생기고, 집안도 가난하고, 부모도 무식하고…. 나도 아버지 닮아서 그런가봐.'

그런 생각 속에서 바보처럼 살아 왔습니다. 누군가는 내게 "아냐. 변씨 중에도 훌륭한 인물들 많아. 변씨가 어때서 기죽지마. 성씨 가지고 놀리는 친구들이 잘못된 거야"라거나 "이 세상에 잘 생기고 못생긴 건 없어. 다 자기 특성에 맞게 생긴 거야. 이 지구별에서 너처럼 생긴 것은 없어. 너는 이 지구별 사람중에 딱 한 사람 뿐이야. 그러니 너는 멋진 존재야. 너의 생긴 것으로 놀리는 친구가 나쁜 거야"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또 "넌 머리가 나쁘지 않아. 단지 너의 조건과 환경이 공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다른 사람보단 느렸던 거야. 넌 바보도 아니고 멍청이도 아니야. 이 세상엔 똑똑하고 멍청하고 그런 거 없어. 누구나 평등한 거야. 너는 너만의 어떤 특질이 있을 거야. 그 특질을 찾아 잘 계발해 나가면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라며 손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형성된 저의 취향은 혼자 사색하고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도록 변해갔습니다. 지금도 어떤 모임에서 책을 읽으라고 하거나,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겁부터 납니다. 집회에서 앞에 나가 말을 해보라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못생긴 게 앞에 나가 웃음거리나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듭니다.

"아빠 성 말고 엄마 성으로 바꿔줘"

"아빠, 친구들이 똥씨라고 놀려. 아빠 성 말고 엄마 성으로 바꿔 줘."

결혼하고 자식이 생겼습니다. 자식이 둘인데 이녀석들이 커가면서 동네에서 놀다가 누구에겐가 그런 말을 듣고 와 저와 아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정말 땅이 꺼질듯이 마음 한켠이 저려 왔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들었던 놀림이 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들은 커가면서 학교에 들어 가서도 가끔씩 그런 놀림을 듣고와서 울먹이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바꿔줄 수 없었습니다. 남성중심의 사회구조, 씨족 중심의 나라 대한민국에선 개벽이 일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유가 명백할 경우 아버지 성씨에서 어머니 성씨로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방송을 보고 있는데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새로 마련된 법의 취지는 이혼한 가정의 자녀 중 제한적으로 어머니 성씨를 따를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아비된 도리로 아이들이 성씨 놀림을 받는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찌 됐든 자식들 성을 아내의 성으로 변경해 달라는 청구를 법원에 했습니다.

법원에 출석하여 왜 자식이 아버지 성을 따르면 안 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판사는 경청하여 들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특성상 그런 경우는 없다" 면서 저에게 꼭 자식 성을 바꾸어야겠냐고 되물었습니다.

함께 간 딸에게도 성씨에 대한 놀림을 받는지에 대해 물었고 성을 바꾸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딸도 어머니 성으로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재판이 끝나고 1개월이 흘렀습니다. 법원으로부터 송달이 왔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아버지 성을 이어 가기엔 자녀들의 불편함과 고충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어머니 성으로 바꾸도록 허락 한다.'

봉투를 뜯고 내용을 보니 그랬습니다. 이제 두 자녀의 성씨를 제 성씨에서 아내 성씨로 바꿀수 있었습니다. 아내 성씨는 박씨입니다. 저는 동사무소와 구청, 학교에 자녀의 성씨를 바꾸는 행정 절차를 밟았습니다. 성씨를 바꾼 후부터 자식들은 한결 인상이 밝아졌습니다.

아이들 인상이 밝아지니 제 기분도 좋아 졌습니다. '이제 너희들은 이 아비가 겪어온 성씨에 대한 놀림을 받지 않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화장실 이름중에 변소라고 표현되는 화장실 이름이 있지요. 또 변자와 연결지어지는 단어들 중 제 속을 끓이는 여러 가지 표현으로 놀림을 받아 오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변이 있나."
"변사또."
"또 궤변 늘어 놓네."

친구들은 저에게 "야 니 변씨가 춘향전에 나오는 그 변학도 변씨냐?"라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성씨 가지고 놀림받지 않고 컸더라면 지금 저의 자식들도 변씨를 사용하며 살고 있을 것 입니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그 속담이 맞다고 봅니다. 어려서부터 받아온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놀림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삽니다. 지금도 저는 그렇게 주눅들고 어리석은 바보처럼 살고 있습니다.

요즘도 방송을 보면 간혹, 놀림을 받고 따돌림 받은 학생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소중한 생을 마감하기도 합디다. 한 번뿐인 인생길 즐겁게, 기쁘게, 행복하게 살아도 짧은데 왜 그리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비아냥 거리며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말하고 싶습니다. 제발이지 외모 가지고 또 성씨 가지고 신체적 특성이나 성향이나 취향이 독특하다고 놀리지 마시라고요.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길수도 있다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신의 혐오, 나의 차별' 응모글 입니다.



#놀림싫다#그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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