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1년 동안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
지난해 8월부터 올 7월까지, 12개월 동안 '전기 아껴쓰기'를 실천해 총 61만2840원을 번 가정이 있다. 올 1월(6만5220원)의 경우 전년(18만5270원) 대비 1/3 가량으로 전기요금을 아꼈다. 올 5월에는 지난해 7만90원의 전기요금을 내던 걸 3만 8240원으로 줄였다.
올해로 결혼 26년차인 주부 황혜영씨 얘기다. "같이 사는 세상이니 전기를 아껴보자"는 남편의 제안에 생활 속 절약 방법들을 실천하기 시작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연이은 폭염으로 전력대란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전기 사용량 감량 비법을 듣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황씨의 집(40평형 대 아파트)을 지난 12일 방문했다. 사방의 문을 다 열어놓은 상태에도 온도기는 30.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더위를 날리기 위한 도구는 선풍기 달랑 한 대뿐이었다. 정부가 내린 '냉방기기 사용 자제 등 각별한 절전 노력' 당부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 아끼기, 첫 시작은 전기포트와 전기밥솥 없애기
지난해 8월, 전기 아끼기에 돌입한 직후 처음 한 건 전기포트와 전기밥솥 치우기였다. 바쁠 때 무심코 손이 가는 걸 아예 막기 위해서다. 아파트에 옵션으로 달린 식기 세척기는 플러그를 찾을 수 없어 사람을 불러 플러그를 뺐다. 속옷이나 작은 옷들은 틈틈이 손빨래를 했고, 웬만한 세탁물도 세탁기 '헹굼' 기능을 안 쓰고 손으로 해결했다. 머리카락 말리는 데 드라이기를 많이 사용하는 거 같아 머리카락도 싹둑 잘랐다.
35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이어지는데도 올 해 단 한 번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선풍기도 손님이 올 때나 나오는 특별품목이란다. 대신 눈에 보이는 곳마다 부채를 놔뒀다. 집에 있을 때는 수건에 물을 적셔 머리 위나 목에 올려둔다. 그 나름의 피서법이다.
냉장고 안 식품들도 수시로 정리해 칸을 아예 비웠다. 겨울엔 웬만한 식품들을 베란다에 보관해 냉장고 칸 두 개를 줄였다. 청소기 대신 등장한 건 부직포다. 정수기도 전기를 많이 소모한다고 들어 냉수 기능은 끄고 정수 기능만 쓰고 있다. 그마저도 정수기 약정이 끝나면 아예 치울 계획이다. 비데기도 사용할 때만 코드를 꼽아서 쓴다. 겨울에 방마다 뒀던 전기장판도 모두 치웠다.
이정도가 1년 동안 '전기 아끼기'를 실현한 항목들이다. 그 가운데 다른 이들도 함께 실현했으면 하는 것들을 묻자 황씨는 "포트와 전기밥솥 두 개만 없애도 큰 차이가 있다"며 "전자레인지도 가족 건강을 위해 아예 없애는 게 좋을 거 같다, 불편을 감수하면 얻어지는 게 있다"고 말했다. 12개월 동안의 성과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무심히 지나가던 것들을 실행에 옮긴 거"라며 "그동안 내가 낭비하던 게 많더라"라고 말했다.
최재성 의원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개정안 발의
황씨에게 전기절약을 제안한 건 남편인 최재성 민주당 의원이다. 에너지 절약의 생활화를 유도하는 법안을 준비하던 최 의원이 '일단 나부터'라는 생각에 아내에게 전기 아껴쓰기를 권유했던 것.
새벽에 들어왔다가 새벽에 나가, 전기 사용량이 거의 없는 최 의원도 담배를 피울 때 만큼은 전기 아끼기에 동참했다. 가스레인지 위 후드에 대고 담배를 피우곤 했던 최 의원은 후드 가동에도 전기가 소모된다는 생각에 세탁실로 나가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최 의원은 "절약하기 시작한 이후 전기요금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은 수준에서 변화를 주는 것만 해도 50%나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석 달 정도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계속하게 돼서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래도 6개월 지나고 나니 요령도 생기고 아예 습관이 됐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치를 쌓은 최 의원은 지난 5월,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최 의원은 "에너지 절약 정책에 있어 홍보 및 이용량 공개 등의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절약 장려에 한계가 있어, 절약 성과가 높은 주택 등에 인센티브를 지급해 에너지 절약 생활화를 유도하는 적극적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가 에너지 절약 생활화를 위한 인센티브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기초자치단체별로 전기소비를 절약한 성과가 높은 아파트 단지 및 주택 등에 대해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인 주요 골자다.
최 의원은 "에너지 절약을 한 번 실행하면 절약이 몸에 배는 효과가 있다"며 "포상금 수여를 목적으로 절전을 실행한 주택은 지속적으로 전기절약을 일상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황씨도 "절약 습관만 들이면 플러그만 봐도 자동으로 뽑게 되는 등 계속해서 절약하게 될 거"라며 "절약 운동이 일회성으로 끝나진 않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최 의원은 "절약 없이는 원전에 대한 대안도 없다"며 "환경을 생각할수록, 원전에 대한 걱정이 많을 수록 절약 없이는 대안도 없다는 원칙에 공감하고 생활에서 실천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치솟는 전기 사용량의 주범은 '산업용 전력'
생활 전기 아끼기에 집중했던 최 의원의 관심은 이제 '산업용 전기'를 향해 있다.
그는 "산업용과 영업용 전기의 요금이 너무 싸고, 전기 낭비에 대해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이를 주요 포인트로 보고 관련 법안을 만들기 위해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실제, 전체 전기사용량 중 가정용은 14%에 그치지만 산업용은 55%에 달한다. 더군다나 가정용 전기의 경우 누진세가 적용되지만 산업용 전기에는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원가의 89%의 수준에 불과한 가격에 판매된다.
이에 감사원도 한전이 산업용 전기를 싸게 판매하는 것이 산업용 전기 과다소비의 원인이 됐다며 전기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최 의원은 "산업용 전기 요금을 현실화 시키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전기료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차등해서 요금 등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