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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50분. 배가 아프다는 아내를 급히 가림막을 치고 잠이 덜 깬 채로 소변을 받아내는데, '...이상하게 바닥이 축축해온다?' 아뿔싸! 소변 통으로 들어가 있어야 할 호스 끝이 빠져나와있다. 그러니 소변이 그대로 매트리스 위를 철벅하게 적시고 있었다.

'아악!' 머리를 쥐어뜯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분통이 터지지만 어쩌나...  끙끙거리며 어둑한 조명아래에서 침대보를 갈고, 몸을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물수건으로 닦고,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나니 5시가 넘고 있었다. 옆 침대 분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난 묵묵부답,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세수시키고 밥 먹이고, 양치질 시키고 옷 갈아입히고, 체중 재고 채혈하고, 그렇게 바쁘게 처리하고 침대째로 성분 혈액실로 갔다. 한 시간만 더 자고 싶다. 그럼 좀 더 생생할 수 있을 텐데...

간병을 잘 할 수 있는 비법은?

가족을 어디까지 돌볼 것인가? 기억의 끝까지 같이 가줄 '소중한 사람'이 당신에게도 있습니까? 질문을 남기던 영화
▲ 영화 '소중한 사람' 포스터 가족을 어디까지 돌볼 것인가? 기억의 끝까지 같이 가줄 '소중한 사람'이 당신에게도 있습니까? 질문을 남기던 영화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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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줄  '소중한 사람' 당신에게도 있습니까?      

이 말이 생각났다. 치매로 망가져 가는 시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길을 가는 며느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02년 영화 '소중한 사람'의 포스터 문구다.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을 때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한다. 환자를 잘 돌보기 위한 방법 찾기! 보다 좋은 정보를 알아내기! 도서관 뒤지기! 이웃에게 물어보기! 간병인을 알아보기! 도모에와 그녀의 가족 역시 이와 같은 방법들을 강구하느라 하루하루가 벅찼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를 시설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까지 도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밟아가는 순서처럼.

그 과정의 험난하고 생살을 북북 찢는 고단함, 슬픈 갈등을 어찌 말로 할까. 병의 종류를 불문하고 병든 가족을 돌보는 일이란 다 비슷하다. 그럼에도 그 마지막까지 함께 걸어준 며느리 도모에가 책으로 펴낸 간병일기를 보고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서 십년이 넘도록 아직도 상영 중이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았다고 한다. 이 땅에 아픈 사람과 돌보는 가족이 끝이 나지 않는 한, 계속 공감하고 계속 볼게 뻔한 영화다. 누군가에게는 계속되는 실화일 것이고.

'나의 끝은 어디일까? 끝까지 아내와 같이 가기는 할 수 있을까?'

밥상도 미뤄놓고 자다가 간신히 밥을 먹이는데 기어이 아내와 부딪히고 말았다. 미안해하는 아내는 공연히 다른 트집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는 그런 아내를 왜 날카롭냐고, 그러면 내가 모를 줄 아느냐고 따지다 숟가락을 놓고 복도로 나가버렸다. 어쩌면 예고된 충돌일 수도 있다. 밤새 잠 못 자고 예민해진 두 사람이 마주보는 기차처럼 달렸으니! 그런데 마음이 자꾸 편치 않다. 꼬리를 물고 한 생각이 따라붙는다.

'나는 속상하면 이렇게 휙 나가서 풀고 올 수 있지만 거동도 못하는 아내는?...'

그 생각에 병실로 돌아오니 다른 간병사가 아내를 달래고 있고 아내는 울고 있다. 우는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어깨를 감싸는데 나도 모르게 오열이 터진다.

"미안하다. 내 생각만하고 나갔다와서, 당신은 스스로 나가지도 못하는데..."

저 건물의 9층 어느 창문 안에 아내가 누워 있다. 나올 때는 숨이 막혀 갑갑하다가 살아날 것처럼 벗어나지만, 막상 나와 있다 보면 무슨 일은 없을까? 어디 또 아프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예정보다 늘 일찍 들어가던 병동.
▲ 암센터 병원 뒷산에서 내려오며 찍은 모습 저 건물의 9층 어느 창문 안에 아내가 누워 있다. 나올 때는 숨이 막혀 갑갑하다가 살아날 것처럼 벗어나지만, 막상 나와 있다 보면 무슨 일은 없을까? 어디 또 아프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예정보다 늘 일찍 들어가던 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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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그리고 깊은 터널

그런 중에 휴일이 왔다. 많은 건강한 사람들에겐 갖가지 계획들로 설레는 날, 우리 가정도 예전에는 이 날이 참 행복했다. 온 가족이 늦잠도 자고 가끔은 장도 보면서 외식도 하고, 반가운 사람들이 오거나, 아니면 보고 싶은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하는 즐거운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건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모처럼 잠시 주사들을 떼어내고, 3층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난 뒤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울음을 누가 볼까봐 휴일이라 사람이 뜸한 1층 '약 받는 곳' 구석자리로 가서 앉았다. 대상없는 분노가 몰려온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쳐다보며 침묵에 잠기는데 온갖 장면들이 대형광고판처럼 기억 속을 지나간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헤치고 입원했던 첫날의 고단함도 떠오르고, 가슴 위쪽에 관을 삽입해서 혈장교환을 몇 시간씩 끙끙거리며 한 것도 수차례, 그러는 와중에도 들이 닥친 재발, 마음이 우울하니 눈에 들어오고 보이는 것도 모두 비관적이다. 이런 슬픈 마음이 차올라오니 서러움이 또 울컥 한다.

"세상은 색안경을 쓰고 보면 같은 피사체도 달라 보인다. 빨간색 안경은 온통 빨갛게, 파란색 안경은 온통 파란색으로! 슬픔의 안경은 남들은 모두 행복한데 우리만 슬픈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하나? 혼자 속으로 저울질을 해대는데 저기서 어떤 사복 입은 분이 우리에게로 곧장 오고 있었다. '이곳은 오늘 쉬는 약제 창구라 올 사람이 없는데...' 하는 사이 가까이 오셨다. 우리 담당 의사선생님이셨다. 아마도 지나다 구석진 자리에서 울고 있는 우리 부부가 눈에 보여 다가오셨나 보다.

"안녕하세요, 오늘 쉬시는 날인데 어떻게..."

엉겁결에 인사를 했다. 황급히 눈물을 닦고 말없이 있는데 이런 저런 증상을 물어보신다. 묻는 분이나 대답하는 우리나 의례적인 빤한 대답을 하고 다시 침묵, 그러다 결국은 털어놓았다.

"솔직히 많이 힘들어서 좀 울었네요. 창피하게..."
"괜찮아요. 조금만 더 힘을 내고 치료과정을 버티면, 분명히 좋은 회복의 날이 올 겁니다. 힘내세요."

우리 부부를 위로해준 '날개없는 천사'

병원을 열손가락이 넘도록 여러 곳 다녔고, 더 심한 상태일 때도 겪었지만, 의사선생님에게 이런 위로의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담당선생님은 비보험 비싼 항암주사비에 막막할 때 신경과에 배당된 사회복지비로 메워주시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혈액검사비도 자주 임상연구용으로 처리해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

(위) 암센터 뒷산 정상의 정자 평심루. 흔들리는 마음들을 가진 많은 암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여기 누각에 올라 쉬었다 내려간다. 거의 3개월을 날마다 한 번씩 오르다시피 한 곳. 병실에서 왕복 1시간이면 넉넉한 짧으면서도 긴 휴식의 장소.
(아래) 평심루 오르는 길, 이곳에서 아내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핸드폰으로 찍었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라고,
▲ 상한 마음 달래는 병원 뒷산 평심루 (위) 암센터 뒷산 정상의 정자 평심루. 흔들리는 마음들을 가진 많은 암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여기 누각에 올라 쉬었다 내려간다. 거의 3개월을 날마다 한 번씩 오르다시피 한 곳. 병실에서 왕복 1시간이면 넉넉한 짧으면서도 긴 휴식의 장소. (아래) 평심루 오르는 길, 이곳에서 아내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핸드폰으로 찍었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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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계산하면 길이 없어 못살 것 같아도, 살다보면 풀리는 신기한 삶, 이론을 넘는 현실, 그건 사랑의 나눔만이 가능하게 한다."

우린 그런 걸 '기적'이라거나 '행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한 도움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전 병원생활에서 나는 불편한 경험을 하면서 의사선생님들은 직업적 관계이지 가족 같은 대상은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두 시간을 대기실에서 힘들게 앉았다가 진료실에 들어가면 5분 만에 밀려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불행'이나 '고난'들이 아무 예고 없이 몰려오는 세상에서, '희망'과 '위로'도 예고 없이 몰려오는 게 어찌 놀랄 일인가!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기적이 아니라 균형을 맞추는 신의 개입으로 일어나는 자연과학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 균형을 잡는 법칙을 만났다. 이유 없이 우리 가정을 몰아세운 불행을 바로 잡을 행운, '이제 그만 버틸까?' 고민하는 자리로 다가 와서 눈물을 닦아주시는 '사복 입은 천사', 그 사복 입은 천사의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없었다. 분명 양복 속 어딘가에 숨기셨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진 세상을 향한 원망과 오해를 조금 덜어주려고 왔는지 모른다.

밥시간이 되어 대충 먹고 식판을 치우고, 병원 뒷산을 올랐다. 물론 아내에게 잘 허락을 받고! 좋은 오솔길을 걷는 것은 정말 도움이 된다. 두 시간 정도의 제한된 나들이로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풀고 나면 얼마나 홀가분해지는지 모른다.

슬픔 베인 솜 인형 하나처럼

꼭 쥐면 / 염분 섞인 물이 / 손가락 사이로 /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다 / 징징거리지 마라 / 세상 끝난 것도 아닌데 / 운다고 세상 끝이 물러나지도 않는데 / 만만한 날들만 앞길에 있어야 한다. / 우길 수도 있다만 / 어디 그게 너나 나만 누릴 독점물이더냐. /그저 오는 데로 가는 데로 / 섞였다 나왔다 갈 뿐인 길에서...

내려오는 오솔길 / 앞에 가는 아주머니 / 등산화 뒤축이 양쪽으로 심하게 닳았다. / 인생은 저렇게 사는 거다. / 신발 뒤축 모서리가 닳아 떨어지도록 / 앞으로 걷고 또 걸으면서 / 오는 돌부리들을 뒤로 뒤로 물리며 / 가는 거다. /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오솔길을 내려오면서 휴대폰으로 아내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도 한편 찍었다. 사과의 말을 담은 영상편지를 보면서 마음을 풀 아내를 떠올리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11월부터 2009년 12월 사이, 치료기간 중의 가장 깊은 바닥을 지날 때 이야기입니다.



태그:#희귀난치병, #소중한사람, #가족,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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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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