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김장하는 날. '내가 도와줄게 뭐지?'라고 물으면 아내는 '없어'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절인 배추 실어오고, 마늘과 생강 까고 같이 양념 버무리자'고 한다. 괜히 물어봤어. 그냥 중요한 손님이 오시기 때문에 사무실가야 한다고 선방 날릴 걸~16일 저녁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렇게 살다간 늘그막에 개피 본다", "생강 껍질을 벗기는 데엔 나무젓가락을 이용하면 딱이다", "아내 말 잘 들으면 남은 남은 여생이 편해진다" 등 40여개의 댓글이 깨알같이 올라왔다.
김장과 편육과 굴...소주 한 잔은 최고의 궁합 아내의 김장 방법은 이렇다. 먼저 농가에 배추를 주문하고 소금에 절여 깨끗이 씻어 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곤 쑥갓, 새우젓, 멸치액젓, 미나리,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 온갖 양념을 사 들인다. 배도 몇 개 준비해 둔다. 김치의 신선도를 높이기 위함이란다.
"주문한 30포기 외에 다섯 포기 더 가져왔어."강원도 화천군 용암리에 사신다는 아주머님과 집사람은 친한 모양이다. 몇 년간 고객이었다니 그럴 만도 하겠다. 추가로 주었다는 배추 다섯 포기가 별로 반갑지 않다. 30포기 김치를 처제들에게 나눠주고도 매년 남기면서 왜 그렇게 많이 담그는지 모르겠다.
"와서 무도 가져가. 남겨봐야 잘라서 소 먹여야 돼."소금에 절여 씻어낸 배추 한포기 가격이 3천원. 지난해와 같은 가격이다. 무는 그냥 가져가란다. 올해엔 배추와 무값이 폭락한 모양이다. 웃으며 말하는 아주머님의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당신은 저기 가서 TV나 봐." 김장하는 날, 내 역할은 마늘과 생강을 까는 일이다. 벌써 몇 년째 반복해 왔다. 지난해엔 잘 버무려진 양념을 배추 속에 넣는 일도 했다. 어설프게 김장 양념국물을 줄줄 흘리는 것을 보다 못한 집사람은 그 일에서 나를 제외시켰다.
마늘과 생강을 다 깠으니 내 역할은 끝난 거지만, 거실 한쪽 귀퉁이에서 TV를 보는 것도 편치 않다. 그릇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커지면 불안해 진다. TV 소리를 최대한 작게 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국물 안 흘리게 조심하면서)양념을 배추에 넣는 게 편할 것 같다.
그나마 기대되는 건 김장을 마친 후에 먹는 편육과 굴이다. 아내는 신선한 굴을 김장에 다 넣지 않고 꼭 남겨둔다. 양념을 머금은 노란 배추 고갱이에 편육과 굴을 싸서 소주 한잔 곁들이면... 캬... 온갖 잔소리를 들어도 김장하는 날에 내가 집에 남아있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변하지 않는 신선함, 어머님표 김장입니다"큰아들, 넌 지게에 배추 나르고, 둘째 너는 구덩이를 파라."내 나이 8살 때, 어머님은 김장 전날 우리에게 임무를 부여하셨다. 10살짜리 형은 배추를 지게에 지고 200여m 떨어진 개울가로 옮겼다. 이후 절인 배추를 다시 집으로 옮기는 일도 형님과 어머님 역할이었다. 산속에 살아서인지 형은 지게질을 잘했다.
난 구덩이를 팠다. 1m정도 되는 항아리를 파묻기 위함이었다. 말을 안 해도 꼭 세 개를 팠다. 일반김치와 무김치, 동치미를 담글 용도라는 걸 그 이전에 터득했기 때문이다.
구덩이를 다 파고 난 후, 나무를 삼각뿔 모양으로 세웠다. 그 내무 주변으로 옥수수 대를 빙 둘러 세우면 꼭 아프리카 원주민 움막 모양이 된다. 훌륭한 김치 저장고가 완성된 셈이다. 문은 가마니를 매달아 놓으면 제격이었다.
항아리를 굴려 입구만 보일 정도로 흙을 덮으면 형님과 어머님은 씻은 배추를 한켜 넣고, 고춧가루 뿌리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소금물을 붓는 것으로 200여 포기의 김장은 끝난다. 무김치 담그는 방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난했기 때문에 고춧가루를 풍족할 정도로 넣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집 김장에서 고춧가루를 발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린 그걸 김치라는 이름 대신 짠지라고 불렀다. 오랜 기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어머님은 소금을 유독 많이 넣었다. 우리 집 김치는 늘 짠맛이 강했다.
간식이 별로 없던 산골마을의 추운 겨울밤. 땅에 묻었던 무를 꺼내다 껍질을 벗겨 먹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삶은 감자에 짠지를 얹어 먹는 맛 또한 별미 중 별미였다. 김장이 워낙 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땅속에 묻은 김장은 이듬해 가을 햇 김장을 할 때까지 그 신선함이 유지됐다. 어머님표 김장 맛, 왜 50대가 훌쩍 넘은 이제야 가슴 아리도록 그리워지는 걸까.
개구리 젓 김치, 우리가 개발한 신상품이었다
내가 군 생활을 하던 졸병 시절엔 '김장파견'이란 제도가 있었다. 사단병력이 먹을 김치를 담그는 역할을 병사들이 했다. 김장을 담글 인원을 대대별로 선발했다. 꼭 참여하고 싶었다. 고참들 눈치 때문에 내무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추운 밖을 배회하는 것보다 손발은 시리겠지만 개울가에서 무나 배추를 씻는 게 편할 것 같았다.
"야 인마, 너 이번 김장파견 나가!"유난히 춥던 늦은 가을 어느 날, 분대장은 나를 지목했다. 어리버리하고 존재감이 없는 일등병 녀석이 부대 월동준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 달 동안 부대를 벗어나는 것.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몸에 전율이 느껴지도록 좋았다. 서로 다른 부대에서 모인 병사들은 타 부대의 하급자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 한밤중 텐트로 바람이 술술 들어와 번데기처럼 꾸부리고 잠을 자도 마음은 편했다. 취침이나 기상점호도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개울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군용트럭에 실려 오는 배추와 무를 씻어 노란색 플라스틱 박스에 담았다.
군부대 김장 방법도 어머님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스에 담겨진 배추와 무를 큰 통에 옮겨 담고, 고춧가루를 뿌리고 다시 무와 배추 넣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에 소금물을 부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10여일이 지나자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성의껏 열심히 씻던 배추도 손이 시리다는 이유로 끝을 잡고 물에 담갔다가 꺼내기만 반복했고, 처음엔 수세미를 이용해 박박 문지르던 무도 양동이에 한꺼번에 넣고 긴 막대로 휘 젓다 꺼내기로 대신했다. 그러니 부대 복귀 후 배식 받은 김치에선 모래가 씹히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군대 김치에는 굴이나 새우젓 그런 거 안 넣지?"평소 장난이 심했던 병사 한명이 배추를 씻다가 잡은 개구리를 들어 보였다. 모두 재미있겠다는 표정들이다. 잡은 개구리를 배추 속에 넣었다. 식용 개구리니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개구리 젓이란 것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고 환호를 올리며 즐거워했다.
투박한 어머님표 짠지 맛, 그립습니다
"여보, 김치 맛이 어떤지 좀 봐줘."아내의 부탁에 엄지를 들어 보였다. 약간 짜지만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배추와 무에 양념이 스민다. 김장 양념이 약간 짜야하는 이유다.
아내는 오늘 만든 김장을 김치냉장고에 집어넣을 거다. 과일과 젓갈을 넣었음에도 신선함이 오랜 시간 지속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신선함이 땅속 항아리 속 김치 맛에 견줄 수 있겠나.
어머니표 짠지 맛이 그리워지는 계절, 김장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