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19편에서는 2011년 5월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이번 20회 이야기는 2013년 12월로 세월이 훌쩍 건너뛰었다. 그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는 게 그동안 기사를 보아주신 분들께 도리라 생각하여 조금 밝힐까 한다. 병원을 옮긴 후 지루하고 긴 투병과 간병의 사연들이 있었지만 큰 사건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피로감이 누적되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속으로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무겁고 지루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이 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어 그간의 일기를 생략하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댓글로 직접 말하신 분도 계셨고…. 그래서 20회부터는 현 시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심으로 가능하면 밝게 연재할까 한다. 부디 따뜻한 시선으로 이해와 지지를 계속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 기자말
"뭐지?""벌써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네! 작년에 한 음악 공연 또 한다네.""1년이 빠르네."복도에 붙는 음악공연 알림 글을 보면서 꼬박 이 자리에서 보낸 시간이 저절로 머릿속에 계산이 되었다. 2년 하고도 6개월, 벌써 그렇게 되다니 하루는 길고 지루한데 일 년은 눈 깜짝 하는 사이에 지나갔다. 어르신들이 60년은 6일보다 빨리 가더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지나간 6년보다 더 무섭고 벅찬 건... 작년 이맘때 병원 7층 로비는 저녁을 먹고 우르르 몰려온 3개 층의 입원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재활치료사 선생님들과 각 병동 간호사들이 팀으로 분장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길고 고단한 생활이 반복되어 별 재미가 없던 재활병원 장기환자들에게는 모처럼 웃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바깥 생활을 건강하게 해낼 때는 모두가 수시로 직접 하면서 즐기던 삶이었는데….
오랜 병원생활을 하다 보니 환자들도 구분이 된다. 이곳은 몇 년 씩 있는 장기 환자들과 몇 개월의 짧은 환자들이 섞여서 재활치료를 한다. 문병객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환자는 단기 환자다. 3개월에서 6개월 미만 정도, 사람이 뜸하고 가족조차 자주 오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가 2년, 3년이 넘은 환자들이다.
또 하나. 유난히 여기저기 아프다고 떠벌리는 사람은 단기 환자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장기 환자다. 어떤 이는 십년도 넘은 사람들, 이들은 아예 병에 대해서는 입도 안 뗀다. 보이지 않는 흐름이 한편 서글프기도 하다. 우리도 그중에 끼인다는 사실이 더더욱.
"살려주세요!""흑… 흑…."깊은 밤 시간, 병실 한곳에서 연신 터지는 기침소리. '아이구 발이야!' 신음소리, 좀 조용하나 싶다가 가위에 눌렸는지 냅다 지르는 '살려주세요!' 흐느끼는 소리…. 다인실 병동의 특징이다. 우리가 머무는 병실은 9인실이고 꽉 차 있으니 더욱 그렇다. 수시로 돌아가면서 우울한 말을 내뱉고, 심해진 증상을 끌어안고 버티다 대학병원으로 떠나면 누군가 또 그 자리에 들어온다. 그 반복 속에 24시간 서로를 가리는 문도 없는 방 하나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잠옷도 갈아입는 법 없이.
총체적 난국, 고통의 소굴 같다. 가장 희망과 치유가 필요한 현장, 그래서 바꾸어 말하면 가장 절망이 넘치는 곳. 하기야 세상이나 어느 인생도 오십보 백보일 거다. 몸만 안 아프다고 다 평안하지는 않더라. 이런 아우성을 강물에 섞여 떠내려가듯 산 지가 6년이다.
지나간 6년? 까짓 괜찮다. 뭐 이미 지났으니, 그보다 무섭고 벅찬 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이다. 이미 안다는 것이 단 하루, 단 한 달도 더 힘들게 한다. 생각만으로 먼저 달려온다. 그날들이 6개월이 될지, 6년이 될지 아님 몇 십 년이 될지 전혀 기약이 없는 아내의 난치병.
인생을 절망적 파탄으로 끌어내리는 3대 불행을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실패, 가정해체, 중증 질병,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만나도 어지간한 인생은 폭 고꾸라진다고. 그 절망적 만남의 충격을 흡수해주는 것이 국가는 복지요, 종교는 사랑이고, 가족은 동행이라고 본다. 내게 지금 조국의 복지는 어떤가? 종교는? 가족은?
복지는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고 종교는 눈살 찌푸리게 변질 중이다. 그나마 아내나 내게 다행인 것은 가족의 무한동행 보장! 고맙다. 가족들의 말없는 수용이, 세상에는 그나마 가족도 구멍난 불행한 이들이 너무 많다. 연일 뉴스에 떠오르는 자진해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부부들, 가족들, 누가 그들에게 대리 가족이라도 되어주면 정말 좋겠다.
마지막만 잘 되면 '해피엔딩'일까"아니, 이게 뭐야?""아, 찜찜해, 이런 걸 영화라고 만드냐?""혹시 속편 만들려고 이런 거 아닐까? 아님 진짜 열 받는 거고."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끝이 미지근하거나 미운 사람들이 벌도 안 받고 잘 된 채로 막이 내리면 황당해 한다. '이게 뭐야?', '미쳤나?' 등 심하면 욕을 퍼부으면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악평을 전파한다. 반대로는 내내 고난을 당하고 억울한 모함에 시달리다가 끝나기 직전에 밝혀지고 잘 풀리기만 하면 박수를 치고 기뻐한다.
그런데 인생도 그런 걸까?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평생을 고생고생 하다가 막판만 잘 되면 만사 오케이! 해피엔딩! 하면서 좋아만 할 수 있을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몇 년, 몇 십 년을 갖은 정성과 희생으로 돌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감당을 못해서 해라도 끼치면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퍼부을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단호하게 인생에는 속편이 없다는 전제를 하고서도 말이다.
지난해 10월19일. 이아무개씨는 49년의 세월을 함께한 부인 조아무개씨(73)를 두 손으로 직접 죽였다. 그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엄마를 죽였다'고 말했다. 아들은 허겁지겁 달려와, 현관문을 열었다. 이씨가 8층 아파트 베란다에 한 발을 걸친 채 막 뛰어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말렸고, 이씨는 '죄인'이 됐다.이씨 부인은 1987년부터 담석증으로 세 차례나 배를 가르는 수술을 했다. 그때마다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든 병수발을 직접 담당한 것은 남편 이씨였다. 그러나 아내의 치매 증상이 심해질수록 이씨는 점차 지쳐갔다. 지난해에는 자살을 결심하고 8층 자택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내가 없으면 아내는 누가 돌보나' 싶어 자살조차 포기했다. 그러나 결국 이씨는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아내의 목을 조르는 동안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 함께 가자. 이게 애들 짐을 덜어주는 길이야"라고 시를 외듯 반복해서 말했다. 이씨 부부의 사연은 병과 죽음 앞에 파괴되어 가는 노부부의 삶을 그린 영화 <아무르>와 다르지 않았다. (중략) - 2013년 1월 <경향신문> 식물인간 아들을 25년째 돌보던 아버지가 집에 불을 질러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불은 가재도구와 내부 120㎡를 태우고 1시간 20분 만에 꺼졌지만, 집 안에서는 김씨와 둘째 아들(31)이 숨진 채 발견됐다.둘째 아들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것은 지난 88년. 당시 아들의 나이 6살 때였다. 대형 화물차에 치여 5년간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아들은 결국 뇌병변장애 1급 판정과 함께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후 김씨 부부는 아들의 병수발을 하는데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보냈다. 경찰은 평소 김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말을 자주 했다는 유족들의 진술 등으로 미뤄 김씨가 집에 불을 질러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2013년 11월<연합뉴스> 오랜 시간 자기의 생을 줄이고 포기하고 가족을 돌보다가 너무 지치고, 더 견딜 수 없어 선택한 마지막 행동. 누가 이들에게 끝 장면이 마음에 안 든다고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언제까지 변함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그러다가 그대로 죽어가야 한다고, 그래야 해피엔딩 미담이라고 몰아부칠 수 있을까? 그게 옳기는 할까?
오직 하루, 오늘만이 전부다
나도 곧 7년차에 들어간다. 5개월만 지나면, 갓난 아기처럼 보살핌이 필요한 환자가 되어버린 아내를 24시간 돌본 지가. 그것도 병실 안 침대 하나만 차지하고 산 지가. 차라리 한 번에 간이나 눈을 이식해준다거나, 극단적으론 대신 죽는 게 더 쉬울지 모른다. 사실 너무 고단해서 그런 마음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소리 없이 쌓여 짓누르는 고통이란 그랬다. 마치 밤새 곱게 내린 눈이 비닐하우스를 왕창 주저 앉혀 놓는 것처럼. 소리도 모양도 요란하지 않고 내리는데 무서운 무게가 되는 것처럼.
오직 하루, 오늘만이 전부다. 지난날은 지났으니 흘려보내고, 닥칠 날들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미리 걱정하지 말고, 접고 보면 남는 건 오늘 하루다. 사는 건 오늘 하루만이다. 누가 긴 끝의 해피엔딩까지 책임지고 짐 진 사람처럼 허덕이며 살아야 하겠는가. 그저 지금, 여기를 잘 지내기도 벅찬데, 아주 작은 일,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아무나 끝까지 못하는 일. 하루는 살아내는데 평생은 못 사는 일. 단번에 죽는 순교보다 어려운 변치 않고 사는 일. 부엌에서 하루 세 끼 밥 지어 내놓고 설거지해서 치우는 일. 하루는 쉽다. 하지만 평생을 부엌 안에서 청춘이 다 지나가도록 그렇게 자리를 지키는 삶은 쉽지 않다.
실제로 어느 수도원에서 그렇게 평생을 사신 분이 있다. 다른 이들은 온갖 사람들 다 만나고 온갖 곳을 다 다니며 사는데 다른 수도자들을 위해 스스로 그 일을 맡아서 부엌공간에서 사신 분. 그런데 사실 놀라운 건 그런 특별한 장소, 특별한 사람 아니고도 우리 주변에도 있다는 것. 바로 아주 평범하게 흔하게 스스로 평생을 가족 뒷바라지로 마친 숱한 어머니와 아내들. 남편과 자식들은 세상에서 꿈도 키우고 이름도 날리고 승승장구해도 집안 부엌과 살림으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변함없이 일생을 보내신 그 값진 헌신은 가볍지 않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내처럼 살겠다고 하늘 따스한 보금자리도 버린 이가 있다. 그리곤 차디찬 무정의 세상 마굿간으로 온 사람. 12월의 예수! 그가 곧 온다. 천만다행이다. 까딱했으면 굴욕과 비관만 가득할 뻔한 세상에 희망을 주고 자부심이 되신 분, 동행해주는 가족처럼 다가오는 분, 그분을 기다리며 노래하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다. 잠시 고통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웃을 병원의 12월 19일 잔치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