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너무 떨어졌네요. 이의신청 하실 거지요?"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지난 2011년 장애 판정 이후 2년 만에 했던 장애등급 재판정 결과가 지체1급에서 5급(상지 5급 하지 5급으로, 합쳐서 간신히 복합장애 4급)으로 추락이란다. 세상에 맙소사….

'이의신청, 이의신청, 이의신청…' 새벽 3시에도 잠 못 들고 벌떡 일어난다. 아직도 생생한 전화 목소리.

장애 1급에서 5급으로... 기적이 일어났다, 사무실에서

"걷지 못한다는 증빙자료를 가지고 와서 이의신청서 작성하세요"
"그게 뭡니까? 걷지 못한다는 증빙자료라는 게?"
"영상이나 뭐 다른 거…."

솔직하게 말하면 이의신청서를 내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의신청을 하고도 한 번 내려간 장애등급이 조정되었다는 사례를 듣기가 너무 힘들어서다. 그럼에도 가슴에 멍이 들고 새벽이 되도록 잠들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게 되는 이 응어리를 하소연이나 하고 싶어 제출했다. 더 쪼들리고 힘들어질 살림 때문에, 나보다 몇 배는 죄인 된 심정으로 눈물을 삼키는 장애인 당사자 아내가 자꾸 걸려서….

"면제 받던 자동차 세금도 내셔야 하는 거 아시지요?"

주민센터 장애인 담당자가 이의신청 결과를 다시 전화로 알려주면서 한 말이다. 이의신청을 변경 없이 확정한다고 한 달이나 애를 태우더니 12월에 통보가 왔다. 주저앉으면 혼자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마비되어 나오지도 않는 소변은 3시간마다 남의 손을 빌려야만 볼 수 있는 사람인데 장애등급이 5급으로 추락했다. 혼자서도 걸어 다니고 생활도 가능한 상태인 등급으로.

장애재판정 이의신청서 정말 심하다고 생각하시는 주변 사람들, 의사 간호사, 큰 병원 국립암센터까지 모두의 자료를 모아서 제출했다. 그러나 어디서 잘못된걸까? 이해할 수 없는 결과...
장애재판정 이의신청서정말 심하다고 생각하시는 주변 사람들, 의사 간호사, 큰 병원 국립암센터까지 모두의 자료를 모아서 제출했다. 그러나 어디서 잘못된걸까? 이해할 수 없는 결과... ⓒ 김재식

재심사를 요구하는 이의신청을 하면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예상대로였다. 다른 숱한 사람들이 경험했듯 요지부동이었다. 근력 수치가 어떻고 관절의 움직임이 어떻고 하면서 그나마 생존비로 나오던 장애수당도 중단 시키고, 퇴원 후 가능하던 장애활동 지원시간도 박탈해 버렸다. 이래도 못 받아들이면 행정소송을 하란다. 중증난치병 장애환자와 환자를 두고 나들이도 힘든 그 보호자에게.

다시 벽으로 돌아온 이의신청 결과 통보서 정말 견고하고 무지막지했다. 걷는 건 고사하고 서서 5미터 화장실도 5년 내내 한 번 못 간 사람에게 조정없는 5급 판정서가 날아왔다. 정말 5급 정도로 회복이 되면 잔치하고 싶었는데... 강탈 당한 잔치.
다시 벽으로 돌아온 이의신청 결과 통보서정말 견고하고 무지막지했다. 걷는 건 고사하고 서서 5미터 화장실도 5년 내내 한 번 못 간 사람에게 조정없는 5급 판정서가 날아왔다. 정말 5급 정도로 회복이 되면 잔치하고 싶었는데... 강탈 당한 잔치. ⓒ 김재식

"장애재판정 결과가 나왔는데 1급에서 5급으로 강등, 시력장애까지 합해서 복합4급이래요."
"에잉? 뭔 그런 일이 있어요? 이 병원에 기적이 일어났네요. 1급이 단박에 4급이라니,"
"…."

아내 재활치료를 담당하는 치료사 선생님께 아내가 결과를 말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다. 이게 정말 기적일까? 그런데 그 기적이 환자가 생활하는 장소도 아니고, 재활치료를 받는 병원도 아니고, 장애재판정을 하는 사무실에서 일어났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감동 받아 고마워해야 하나?

신용불량자 아내에게 또 다시 날아온 '경고장'

올 7월이던가? 의정부의 한 주민센터에서 유서를 품에 담고 자기 가슴을 칼로 찔러 자살한 간질 4급의 남자가 생각난다. 공감 정도가 아니라 공범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정도면 밤도 오기 전에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의정부시와 경찰 등에 따르면 3일 오후 5시 45분께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동주민센터에서 박모(39·무직)씨가 흉기로 자신의 가슴 부위를 찌르는 등 자해를 했다. 박씨는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이날 오후 8시 40분께 숨졌다.

박씨는 2009년 5월 27일부터 간질장애 4급을 유지했으나 지난 5월 24일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의 한 관계자는 "박씨에게 판정 결과를 통보하고 90일 이내 이의신청하는 방법 등에 대해 안내했으나 박씨가 이의신청을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씨가 남긴 유서에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주저앉아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기록을 제대로 안 했다', '서류만 보고 장애등급 판정하는 잘못된 관행 바로잡아 달라', '더 이상 싸우기 싫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연합뉴스>

계속 기운만 꺾는 강제집행통보서 벌써 5년 전부터 제발 강제 법집행 해달라고 빌었다. 도저히 갚을 가능성이 안 보여서, 그런데 안한다. 법도 이상해서 개인파산도 접수도 안된다. 액수가 적다고, 신용불량자가 수입이 없어 워크아웃, 회생도 안된다. 채무를 넘기지 않아 국민행복기금지원도 못 받는다. 괴로운 제도...
계속 기운만 꺾는 강제집행통보서벌써 5년 전부터 제발 강제 법집행 해달라고 빌었다. 도저히 갚을 가능성이 안 보여서, 그런데 안한다. 법도 이상해서 개인파산도 접수도 안된다. 액수가 적다고, 신용불량자가 수입이 없어 워크아웃, 회생도 안된다. 채무를 넘기지 않아 국민행복기금지원도 못 받는다. 괴로운 제도... ⓒ 김재식

엎친 데 덮친다던가? 신용불량자가 된 아내에게 또 '최후 통보'라면서 채무 강제집행 경고장이 날아왔다. 아들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우편물이 왔다고 전화를 했다. 발병 초기 병원비로 빌렸던 두 곳의 카드 대금이 5년 새 눈덩이처럼 불었다. 300만 원이 채 안 되던 한 곳은 700만 원이 되었고, 600만 원 조금 넘었던 곳은 1200만 원이 넘었다.

원금 1000만 원 미만은 법적으로 개인 파산 신청도 안 되고, 개인 회생 워크아웃도 얼마라도 고정수입 증명이 안 되면 못한단다. 파산도 갚지도 못하는 사이, 이자만 계속 늘어갔고 아내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올 초 국민행복기금에 신청한 게 통과되어 간신히 살았다 싶었더니 한 곳만 되고, 한 곳은 카드회사가 국민행복기금에 위탁 가입을 안 해서 안 된단다. 하필 더 액수가 많은 카드사였다. 그러더니 결국 그 회사가 강제 집행 통보서를 보내온 것이다. 참 끝나지 않는 채권 채무 관계. 그냥 하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라고 5년을 말해도 채권사는 안하고 있지만….

아내의 투병, 나의 간병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내게 별명을 지어주었다. '3시간 남편'이라고, 아마 나의 활동 가능한 자유를 기준으로 지었을 거다. 그 이상은 오래도, 멀리도 못 간다는 기준.

그러나 삶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하루살이 생명이다. 날마다 아침이면 사는 것이 시작이고, 날마다 밤이면 죽는 하루살이. 기쁜 일은 기쁜 대로, 슬픈 일은 슬픈 대로 다 두고 잠드는 하루살이. 그래서 잘 해결된 일은 잘 풀린 대로, 잘 안된 일은 남겨둔 채로 죽는 사람처럼 하루를 받아들인다.

사는 동안 이런 일들에 파묻히면 웃고 못 산다. 웃는 건 고사하고 하루도 못 견딘다. 살 이유보다 죽을 이유가 더 흔하게 널려 있고, 신나는 일보다 우울한 일들이 더 사람을 목을 조를 테니.

그래서 미루고 덮어두고, 그렇게 하루만 생각하면서 하루를 또 산다. 오늘 중에 그 일들이 나를 죽이지는 않을 테니, 길게 보면 더 괴로운 상황도 있고 삶도 있다는 걸 경험한다. 그래도 웃어야 밥도 맛있고 자녀들과 친구들과 웃기도 하고 티브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늘의 신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마라. 오늘 일은 오늘에 족하다'라고. 삶이 나를 괴롭힌다고 나도 생존을 괴롭힐 수야 없다. 그게 더 나를 비참하고 우울하게 할테니.

간병 7년차, 세 번째 외출... 숨통이 트인다

지난 19일, 여의도 MBC에서 라디오 방송 녹음을 하고 왔다. 이렇게 힘든 일이 연달아 줄을 잇고, 하루살이에게 한 1만 년은 살 사람처럼 세상이 무거운 짐을 지울 때는 그저 나들이가 최고다. 숨통이 트인다.

<7년 만의 외출>이라는 영화에서 그랬다. 아내와 아이들이 멀리 다니러 가고 혼자 집에 남게 된 주인공 남자. 7년 만에 혼자 시간을 가지게 된 남정네에게 다가오는 춘풍은 온갖 상상으로 설렌다. 아내가 딴 짓을 하는 꿈도 꾸게 되고, 자신은 금발 미녀와의 연애에 들뜨기도 한다.

주인공 남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상태가 불안하여 상담을 간다. 영화 속의 의사가 논문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남자는 결혼 7년쯤이면 바람기가 생깁니다!'

그 말에 남자는 고민을 한다.

 영화 속의 남정네는 금발 미녀에게 상상 속에서 협박을 받는다. 그러나 잘 뿌리치고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유명한 장면, 지하철 바람에 치마 날리던 그 마릴린 먼로를 감히 팽개치고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그러하다.
영화 속의 남정네는 금발 미녀에게 상상 속에서 협박을 받는다. 그러나 잘 뿌리치고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유명한 장면, 지하철 바람에 치마 날리던 그 마릴린 먼로를 감히 팽개치고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그러하다. ⓒ 20세기 폭스

아내 간병 7년차. 아내를 떼어놓고 혼자 딱 두 번 외출했다. 한 번은 엄마 임종은 못 보고 간신히 안장하던 날 3시간 외출로, 또 한 번은 8월말 더운 폭염 속에서 방송출연차 반나절.이번이 세 번째다. 공연히 설렌다. 내게도 바람이 부는 걸까?

영화 속의 남정네는 금발 미녀에게 상상 속에서 협박을 받는다. 그러나 잘 뿌리치고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유명한 장면, 지하철 바람에 치마 날리던 그 마릴린 먼로를 감히 팽개치고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그러하다. 꼼짝 못하고 잡혀 지낼 때는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가, 정작 나가서 반나절만 지나면 회군하는 게 오히려 평안하다. 이 지독한 귀속.

결국 잘 다녀왔다. 영화 속의 그 남정네처럼 바람을 거부하고 찬란한 서울 야경을 뒤로하고 곧장 병원으로. 분명 눈 빠지게 날 기다렸을 아내에게서 안심의 눈빛을 보았다. 이날 녹화분은 12월 25일 오전 11시 10분, MBC 라디오 '이재용이 만난 사람'에서 성탄특집으로 방송된단다.

하루살이에게 힘든 한 해를 준 하늘이 그래도 측은했는지 좋은 사랑 고백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주었다. 아닌가? 이 <오마이뉴스> 간병일기가 기사로 채택되는 게 올 한 해의 가장 마지막 선물이고 기쁨일까?

덧붙이는 글 | 2013년을 마무리하면서 힘든 일 고마운 일을 모두 마무리 한다.
새해는 새 희망으로 아침을 열어서 새로 살고 싶다. 2014년 하루살이로!



#희귀난치병#투병#간병#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장애등급제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9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