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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 일찍 문상길에 올랐습니다.
 아침 일찍 문상길에 올랐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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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정에서 돌아와 날마다 봄옷을 저당 잡혀(朝回日日典春衣 조회일일전춘의),
매일 강가에서 취하여 돌아오네(每日江頭盡醉歸 매일강두진취귀).
술빚이야 가는 곳마다 흔히 있지만(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항처유),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의 일부입니다. 두보는 이 시에서처럼 이승에 미련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뛰어난 시인으로서의 재능만큼 벼슬에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살기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고 노래한 것처럼 방랑 중에 배에서 병을 얻어 후난성(湖南省)의 둥팅호(洞庭湖, 동정호)에서 59세에 이승을 하직했습니다.

 KTX는 서울과 대구를 불과 1시간 50분 만에 이어주었습니다. 지나온 인생길을 뒤돌아 보는 것만큼이나 빨랐습니다.
 KTX는 서울과 대구를 불과 1시간 50분 만에 이어주었습니다. 지나온 인생길을 뒤돌아 보는 것만큼이나 빨랐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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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게는 세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습니다. 대구로 출가해서 큰 기복 없이 살고 있습니다.  

시어른은 인자하신 분이었습니다. 시어른은 두 분 다 약대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함께 큰 약국을 경영하셔서 생활에 모자람 없는 재산을 일구었고 시아버님은 섬유제조업까지 시작하셔서 성공적인 경영을 하신 분입니다. 

넉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항상 당부하신 말씀은 "올려다 보지 말고 내려 보고 살아라"였습니다. 양평에서 사시던 분이 한국 전쟁때 대구로 맨몸으로 피난했고 허기를 면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쏜살처럼 흐르는 풍경처럼 현재도 시간은 쉼이 없건만…….
 차창 밖으로는 쏜살처럼 흐르는 풍경처럼 현재도 시간은 쉼이 없건만…….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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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주먹밥 하나를 먹는 것을 보아도 그것이 그렇게 부러웠다"는 말씀으로 그때를 회고하곤 했습니다. 

사업을 하는 제부(弟夫)는 다섯 형제 중 막내이고 네 분의 형님들은 의사, 약사, 사업가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의사인 큰 형님은 제가 막내 아들를 얻을 때, 막내를 받아준 서울의 종합병원 산부의과 과장이셨습니다. 하지만 의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분야가 산부인과라는 말처럼, 일찍이 의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DL민을 간 다음 부동산 투자로 의사로서는 만져보기 힘든 경제적 여유를 확보했습니다. 

부모의 재산을 가장 많이 축낸 사람은 제부였습니다. 예의바르고 부지런한 제부는 여러 가지 사업을 시작했지만 원금을 날리는 일이 비일비재였습니다. 

부모님은 잘된 자식보다 늘 아등바등하는 자식에게 더 애착이 가는 법이지요. 그런 사정으로 여동생이 주로 시어른을 돌보았습니다.

 상념을 잡아볼 생각으로 책을 폈습니다.
 상념을 잡아볼 생각으로 책을 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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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난 토요일(1월 18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월요일에 문상을 갔습니다. 적지 않은 눈이 내린 파주와는 달리 다행히 추풍령 아래쪽으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습니다.

캐나다의 큰 형님까지 모두 당도하셔서 모든 형제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올해, 구순. 칠순까지 사는 것도 드물다고 했던 두보시대에 비하면 호상이라고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어떻게 호상일 수 있을까.

 장례식장이 있는 경북대학병원 입구에서 돌에 새긴 글이 먼저 저를 맞습니다. '人命至上인명지상'
 장례식장이 있는 경북대학병원 입구에서 돌에 새긴 글이 먼저 저를 맞습니다. '人命至上인명지상'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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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의 어른 사진을 한 참 바라보았습니다. 사진 속에는 여전히 강직함이 살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돈어른을 마주하는 그 순간, 일전에 지인이 보내준 '아버지'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태평양 연안에
천축잉어라는 바다고기가 있답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그 알을 입에 담아 부화 시킵니다. 

입에 알을 담고 있는 동안,
수컷은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점점 쇠약해지고,
급기야 알들이 부화하는 시점에는 기력을 다잃어 죽고 맙니다. 

수컷은 죽음이 두려우면
입 안에 있는 알들을 그냥 뱉으면 그만 입니다. 

하지만 수컷은
죽음을 뛰어 넘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이 땅에는
아버지란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누구 하나 위로해 주지 않는 그 무거운 자리!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어깨를
단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 준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누구의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내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대여~ 

가정에서 내 자리가 적어지고
사회에서 어깨의 짐이 무거워지고
하루하루의 삶이 막막하고 힘들어도~ 

당신은 믿음직한 아들이었고
든든한 남편이었으며
위대한 아버지임을 잊지 마세요. " 

주검으로 누워계신 한 아버지를 대하는 순간, 글쓴이도 출처도 알 수 없는 이 글이 마치 실연한 뒤의 유행가 가사처럼, 애잔하게 다가 온 것은 누워계신 분에게서 제 처지가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문을 끝내고 다시 동대구역에서 한 어르신이 숫자가 큼직한 구형 핸드폰 숫자임에도 그 번호를 읽기위해 돋보기를 들고 어렵게 눈의 초점을 맞추고 계셨습니다.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제 모습임이 분명했습니다.
 조문을 끝내고 다시 동대구역에서 한 어르신이 숫자가 큼직한 구형 핸드폰 숫자임에도 그 번호를 읽기위해 돋보기를 들고 어렵게 눈의 초점을 맞추고 계셨습니다.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제 모습임이 분명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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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두보가 죽고 60년 뒤,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시인이 탄생했습니다. 백거이(白居易)입니다. 과거시험에 낙방한 두보와 달리 백거이는 28세부터 10년 동안 스스로 세 번이나 과거에 합격했지만 두 사람 모두 벼슬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형편은 백거이가 훨씬 나아보이지만 위정자들의 폭정을 시로 담아낸 탓에 좌천되거나 권세 다툼에 온 정신이 팔린 현실을 혐오하고 스스로 벼슬을 버렸습니다.

 지나온 동대구로의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가로수 길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소실점에서와서 소실점으로 가는 인생.
 지나온 동대구로의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가로수 길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소실점에서와서 소실점으로 가는 인생.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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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짧고 덧없음을 우수로 담아낸 두보와 달리 자(字)가 낙천(樂天)이었던 백거이는 '술을 마주하고(對酒)'라는 시처럼 세월과 세상사에 담담하고 초월적이었습니다.

 이 베개를 높이 베고 지낼 남은 날이 몇 날일까.
 이 베개를 높이 베고 지낼 남은 날이 몇 날일까.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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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부싯돌 불빛 같은 찰나의 순간을 사는 이내몸(石火光中寄此身 석화광중기차신)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즐겁게 살면 될 것을(隨富隨貧且歡樂 수부수빈차환락)
크게 입 벌려 웃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상념은 끝나지 않았는데 열차는 다시 서울입니다.
 상념은 끝나지 않았는데 열차는 다시 서울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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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의 블로그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문상#대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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