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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작가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서 나온 문장이다. 노인 문제를 다룬 <황혼길 서러워라>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기도 하다. 취재에 참여한 기자도 본문에서 "내가 목격한 노인들의 말년은 '형벌'이었다"라고 적었을 정도다.

오늘날 한국에서 노년세대가 보내는 현실을 심층적으로 그려낸 이 책의 내용은 슬프고 또 참혹하다. 많은 노인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다. 노인연금만으로 살아가기엔 빠듯한 처지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는 일조차도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힘들어 주저하게 된다.

더불어 외로움도 나이 든 사람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다. 자식들은 각자의 길로 떠나가고, 이웃들과도 소통이 단절된 현대의 노년세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배고픔과 병듦, 그리고 외로움에 고통받다 끝내 제초제로 자살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총체적으로 힘든,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단비뉴스의 한국 노인 보고서

 단비뉴스의 기사를 엮은 책 <황혼길 서러워라>의 표지.
단비뉴스의 기사를 엮은 책 <황혼길 서러워라>의 표지. ⓒ 오월의봄
<황혼길 서러워라>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들로 이루어진 취재단이 각계각층의 노인들을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결과물이다. 여러 분류로 이루어진 기사들은 각각 노년세대의 가난·의료 및 보건·일자리·황혼 육아·성 문제들을 다루었다.

본문에서 지적하듯이 다양하지 못한 노년 일자리는 대부분 아파트 경비나 지하철 택배기사로 수렴되는데, 그마저도 임금이 턱없이 적고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다. 이마저도 일자리 수가 넉넉하지 않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근로빈곤층'이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에서 공적연금 혜택을 받는 노인 인구는 32%에 불과하고, 노인빈곤율은 2011년 기준 45%로 OECD 국가 중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세웠다. 치매와 성인질환에도 많은 노인들이 부족한 의료시설과 병원비 때문에 '의료 사각지대'에서 방치되는 현실이다. 대책이라며 만든 정부 정책들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단비뉴스의 인터뷰로 들어본 노인들의 주장이다.

이 책은 노인세대를 '낯선 집단'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이자 이웃'으로 조명하고 있다. 냉정한 분석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며 노인세대의 눈으로 본 세상도 담아냈다.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독일과 스웨덴, 가까운 일본의 노인복지와 정책을 비교하여 다룬 점도 인상깊다. 여러 개의 기사를 하나로 엮어낸 이 책은 그야말로 한 편의 '한국 노인 보고서'라 부를 만하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는다

취재를 맡은 단비뉴스 기자들은 모두 20대 청년들이었다. 이 책의 매력이라면, 바로 그 청년들이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등을 직접 찾아 노인들과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본문과 취재후기를 읽다보면, 단순히 수치화된 통계자료에만 의지하지 않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소통하려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

"노인들이 가난과 외로움, 병마에 시달리면서 '죽는 순간에도 혼자가 아닐까'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부끄럽고 죄스럽게 느껴야 할 일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 분들을 돌볼 것인지, 이제 본격적인 토론과 실천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본문 178쪽 중에서)

나이 든 그들에게 고통은 왜 계속될까? <황혼길 서러워라>를 관통하는 굵직한 물음이다. 2013년에 대한민국의 독거노인 125만 명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따뜻한 밥 한 끼, 때로는 전기장판, 혹은 병원비나 다른 누군가의 손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작은 관심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나이 드는 일 자체가 문제이자 고통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 마땅한 일 아닐까. 작은 관심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지속적이고 많이 모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주위의 많은 다른 국가들이 그리해왔음이 증명하듯이 말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는다. 노인이라는 대상이 언제까지 '타인'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다. 또한 우리가 앞서 말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모아야 할 필요성이기도 하다. 우리의 늙음이 우리가 지은 죄로 받는 형벌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지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황혼길 서러워라> (제정임 씀 | 오월의봄 | 2013.12. | 1만2500원)



황혼길 서러워라 - 단비뉴스의 대한민국 노인보고서

제정임 엮음, 오월의봄(2013)


#황혼길 서러워라#노인 문제#단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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