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2013년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대학살의 현장인 신천박물관을 떠나 평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여전히 침묵이 흐른다.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남편도 물끄러미 차창 밖만 바라볼 뿐이다. 아무래도 오늘 받은 충격이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52일간 3만5000여 명의 주민들이 죽임 당했다. 당시 신천군의 전체 군민 수가 불과 십수만이었다고 한다. 주민의 4분의 1 이상이 희생된 것이다. 학살의 주체가 미군이었는지 아니면 우익 동포들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군의 짓이라면 우리의 책임이 면제될 수 있을까. 우익 동포들의 짓이었다면, 좌우대립의 결과라며 정당화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대학살 당시 어린아이들까지 창고에 가두고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였다고 한다. 사건의 본질은 엄청난 수의 무고한 양민들이 잔인하게 학살됐다는 사실이다.
우리 일행은 해가 저물고 나서야 평양 시내에 도착했다. 전보다 많은 건물에서 네온사인이 빛을 발한다. 평양역이 보인다. 우리가 머무는 고려호텔에 다 왔다는 뜻이다. 차 안에서 설향이가 내게 묻는다.
"오늘 저녁식사는 무얼로 하시겠습니까?""글쎄, 나는 생각이 없네…. 당신은요?"남편도 저녁식사 생각이 전혀 없단다. 남편이 설향이에게 말한다.
"우리는 생각이 없으니 자네들이나 들고 와.""저희도 생각 없습니다. 신천박물관에 갔다 오는 날은 밥 못 먹습니다. 밥이 넘어가면 기게 조선사람이 아니지요.""그렇겠지. 내가 한 잔 살 테니 차라리 호텔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연평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그리고 천안함
모두가 우울한 표정이다. 평소 술을 거의 안 하는 설향이도 오늘은 따라주는 대로 받아 마신다. 남편이 조용히 영길 아우를 쳐다보며 입을 연다.
"영길이. 오늘 해주 앞바다에서 연평도 쪽을 바라보니 심정이 정말 착잡하더구만."아직도 신천박물관의 비극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데…. 아니, 대체 남편은 무슨 생각으로 연평도 이야기를 꺼내는지…. 남편은 분위기 파악이 안 되나 보다.
"무슨 말씀인지 알갔시요.""그래, 근데 왜 연평도에 폭탄을 퍼부었어?"남편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아니, 형은 형 집 마당에 누가 돌을 냅다 던져대면 기냥 가만 있갔시요? 나가서 '왜 이러느냐, 기러지 마시오' 할 것 아니야요? 그런데도 말을 안 들으면 어카겠시요? 기냥 집으로 돌아와서리 던져대는 돌을 구경만 하고 계실라요?""물론 그럴 수야 없지. 그런데 돌이 떨어지는 마당이 남의 집 마당이 아니라 자기 집 마당이라고 하면 어쩔 텐가? '내 집 마당에서 내가 돌 던지는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하면서 말이야.""아, 형두…. 그래서 장군님께서 남녘의 대통령과 그곳을 평화로운 바다로 만들자고 합의를 하셨지 않갔시요. 기러면 기걸 지켜야지…. 오째뜬 남조선 사민(민간인)들이 희생됐다니 기건 안됐시요, 형.""그래, 좋아. 근데 금강산에 온 여자 관광객은 왜 쏴 죽였어?"남편의 질문이 갈수록 태산이다.
"형, 쏴 죽이다니요? 기곳은 들어갈 수가 없는 군사지역이야요. 대체 어케 관광객이 기곳에 들어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말입니다. 긴데 서라고 해도 서지 않고 도망을 가는데, 경계를 서는 병사가 어케해야갔시요? 관광객이라고 상상이나 했갔시요? 남조선 동포들은 군사복무 안 해봤시요? 기것도 어쨌던 사민 관광객이 희생이 됐으니 참 안됐시요. 생각해 보시라요. 제가 모시는 관광객인 형하고 누나가 희생됐다고 상상해 보시라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시리. 기래 우리도 유감을 표명하고 다시는 기런 일이 없도록 서로 주의하자 하지 않았갔시요. 긴데 기걸 핑계로 관광을 중단시켜 버리고서리…."남편은 급기야 천안함으로까지 화제를 돌려 직격탄을 날린다.
"천안함은 어떻게 할 거야?""아, 참, 형두. 아니 도대체 하지 않은 걸 어케 했다 기럽니까? 기리고 어뢰맞고 폭파된 배가 무 짤라지듯 두 동강이 납네까? 배가 어뢰를 맞아 폭파되면 어케되는지 아시나요? 우리 인민들이 얼마나 어이없어 하는지 말도 못합니다. 형, 자꾸 기런 말씀 하실라면 조국에 오지 마시라요.""야, 이 사람아. 우린 동포야. 서로 오해를 풀자고 이런 저런 얘기하자는 건데 다짜고짜 오지 말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나? 사람하고는….""미안하요, 형. 천안함 소리가 나오니 열통이 터져서리…."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천안함이 문제긴 문제다. 연평도와 금강산은 남과 북이 서로 유감을 표명하고 화해를 할 수 있겠다 싶은데, 천안함은 해결할 방법이 없을 것만 같다. 남에서는 북에서 했다고 하고, 북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솔로몬의 지혜로도 풀지 못할 것만 같다.
남과 북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북한은 '1번 어뢰'를 제공하고 남한은 폐선 한 척을 제공해 폭파 실험을 해보는 것을. 과연 '1번 어뢰'를 맞고 폭파된 배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확인해 보면 어떨까.
남편이 술에 흠뻑 취했다. 그만 올라가야겠다. 저 시한폭탄 같은 남편이 또 무슨 실수를 저지를지 모를 노릇이다.
내일의 일정을 마치면 우리는 서울로 간다. 그곳에서 열흘 정도를 지낸 뒤 수양조카 방현수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다시 평양으로 올 예정이다. 서울에 계신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호텔 2층에 있는 전화센터에서는 국제전화가 가능하다. 전화라도 걸어볼까 망설이다가 이틀만 참자고 다짐하며 방으로 올라간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북한동포들
평양 방문 일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평양 시내 관광을 한단다. 첫 방문지는 금수산 궁전.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이 공개됐다고 한다. 문득 김정일 위원장의 장례차 행렬이 떠오른다. 눈이 내리는 길을 외투로 덮던 평양시민들의 모습이 말이다. 평양시민들은 진심으로 외투를 벗어 길을 덮었을까? 궁금해진다. 혹시나 하며 진심을 떠보려는 생각에 금수산궁전으로 가는 차 안에서 설향이에게 물었다.
"설향아, 당시 장례차 행렬이 떠오르는구나. 평양시민들이 옷을 벗어 길을 덮던 모습이 말이야."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설향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설향이가 숨 가쁜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한다.
"우리는 일생 동안 장군님께 달라고만 했지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습니다."눈물을 흘리는 설향이에게 더 이상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향이가 말을 이어간다.
"유럽 관광객들을 금수산 궁전으로 안내해 서거하신 뒤 처음 장군님을 뵈러 갈 때였습니다. 울음이 나서 통역은 하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 나왔습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하는 일은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인데 이렇게 울고만 있으면 안 되는데' 하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관광객들도 내 등을 두드려주며 리해해주더구만요. 그런데 두 번째 갈 때에도 그랬답니다."우리 일행은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 앞에 다다랐다. 설향이는 또 눈물을 흘린다. 설향이는 엄숙한 적막 속에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오므리고 숨을 참는다. 아!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장면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유품을 참관한 뒤 우리 역시 설향이의 등을 다독여주며 금수산 궁전을 빠져나왔다.
우리의 역사와 국토를 한눈에 보다
민속공원을 관람하고 점심식사를 할 차례다. 2012년 5월 단군릉에 다녀오는 길에 민속공원 건설 현장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이미 완성이 돼 인민들에게 공개됐다. 평양 근교에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문화재들을 실물 크기 또는 축소해 재현해놓은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왼쪽으로 대형 거북선과 탑들이 보인다. 해설원이 거북선 뒤의 탑을 가리키면서 "경주 황룡사 9층탑을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고 설명한다. 탑의 크기에 압도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원나라 침략 때 불타 없어졌다는 황룡사 목탑이 이렇게 거대한 탑일 줄은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다. 높이가 족히 70~80미터는 돼 보인다. 황룡사는 대체 얼마나 큰 절이었을까. 불국의 정취를 듬뿍 담은 신라의 도읍 경주는 얼마나 웅대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웠을까. 안타깝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 유적들이 외적(外敵)의 침략으로 파괴되거나 불타 없어졌다는 것이.
황룡사 9층탑 바로 옆에는 고구려의 탑이 사이좋게 세워져 있다. 5세기 고구려의 절인 금강사의 8각목탑을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는데, 이 또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탑 속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난다. 민속공원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국토를 모두 모아놨다. 선사시대 주거지, 고분군, 고구려궁, 발해궁, 석가탑, 다보탑, 첨성대, 백두산, 금강산, 팔도의 민속마을, 현대 평양의 건축물 등 일일이 나열조차 할 수 없다.
점심 전까지 이 공원을 다 돌아보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도보로 겉만 구경하기로 했다. 공원 안에는 가족끼리 나들이 나온 사람들, 단체로 견학온 학생들,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들이 있다.
다리가 아파 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우리는 휴게소에 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설향이가 '얼음과자'를 사온다. 한국 돈으로 몇십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일반 주민들이 먹는 '싸구려'라는 생각에 갑자기 먹기 꺼려진다. 하지만, 사온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마지못해 한 입 먹어본다. 깜짝 놀랄 만큼 맛이 좋다. 우유가 듬뿍 들어있어 고소함이 느껴진다.
2011년 첫 북한여행 때 평양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맛은 별로였다. 당시 나는 '고급레스토랑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이 정도인데, 일반 주민들이 사먹는 아이스크림이란 오죽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얼음과자가 그때 먹은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맛이 좋다. 나는 지금 이 얼음과자를 먹으며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대체 나의 이 오만함은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모든 가치를 돈으로 따지는 사회에 살면서 나도 모르게 젖어든 습성임이 분명하다.
세련된 모습의 한 쌍의 남녀가 우리 앞을 지나간다. 외국 관광객인가 싶어 유심히 살펴봤는데, 왼쪽 가슴에 김일성 주석 배지를 달고 있다. 대학생 같기도 하고 직장인 같은 느낌도 든다. 손에 고급 쇼핑백이 들려있는 것을 보니 여자친구의 생일이라도 되는가 보다.
우리는 휴게소를 나와 또다시 '행군'한다. 사진을 찍기 위한 관광이다. 무척 아쉽다. 남편이 또 불만을 토로한다.
"영길이. 이런 데를 오려면 하루 전체를 잡아야지…, 대체 두세 시간 안에 어떻게 여기를 다 구경하나?""형, 이번만 오시고 말겁니까? 다음에 또 오시라요."넉살 좋은 영길아우의 대꾸에 남편이 너털웃음을 짖는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안내를 맡았던 이곳 해설원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민속공원을 보고 감동했다는 말에 환한 미소를 지어준다.
북한에서만 가능한 일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떻게 거대한 부지에, 그것도 평양에, 이런 어마어마한 공원을 건설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토지가 국유화돼 있는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의 친정 어머니는 약간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그 땅을 이용해 뭔가를 하겠다며 팔 것을 종용하지만, 어머니는 팔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계속 갖고 있다가 나중에 땅값이 폭등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 팔기 위함이다.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그 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다.
인구는 많고 땅은 비좁은데, 그나마 재벌을 포함한 일부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는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기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한 양극화가 문제다. 양극화에는 비단 소득의 불균형뿐만 아니라 소유 토지의 유무도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부모의 도움이나 유산 없이 보통 사람이 직장생활을 하며 저축을 해 토지나 또는 토지가 딸린 집을 소유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고들 한다.
기업이나 개인 소유의 땅을 국가가 보상해 전 국토를 국유화하고, 개인이나 기업은 토지의 사용권 그리고 설치물에 관한 소유권만 갖게 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된다면 땅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도 없애고, 좁은 국토를 전 국민을 위해 알뜰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만 해본다.
토지와 노동은 생산의 기본 요소라고 한다. 문득 남북 경제협력이 떠오른다. 남북 경제협력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싸고 질 좋은 북한 동포들의 노동력만을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국유화된 북한의 토지 이용에서 얻는 이득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남과 북의 장점을 잘 살려 멋진 경제공동체를 만들어내길 기원한다. 그 기저에는 남북한 동포들이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사랑이 전제돼야만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통일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