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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가 평소 서로 아끼고 의지하는 사이였으며, 딸이 굳이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고집한 내용이 유서에 있다."빚 때문에 야산에서 목을 맨 마흔 네 살의 아버지. 올해 특성화 고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이었던 열일곱 살 딸은 유서를 남긴 채 경찰의 표현처럼 '굳이' 아빠와 죽음을 함께했다. 지난 21일 이 사건을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서 숨이 턱 막혔다. 이런 기분이 든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가보다. 윤민석 송앤라이프 대표는 이 기사를 보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뭐든 시작하려면 빚더미를 깔아야 하고, 한 번 실패하면 죽음밖엔 길이 없는 나라.'
1,000,000,000,000,000. 숫자 0이 15개 붙은 숫자는 1천조다. 얼마인지 감도 안 오는 이 숫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머리에 이고 사는 '가계부채' 총 금액이기도 하다. 2005년 500억 원이었던 가계부채는 10년도 채 되지 않아 2배로 늘었다. 국민 1인당 1983만 원(가계부문)의 빚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빚으로 가정경제를 지탱하도록 만든 '나쁜 정치'의 결과다. 빚의 유일한 탈출구로 '죽음'이란 최악의 구멍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정치, 그리고 정부. 때문에 빚에 떠밀려 죽음을 택한 이들의 선택은 '자살'이라 말할 수 없다. 이건 무능하고 표독스러운 정치, 성장을 앞세우며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한 정권에 의한 '타살'이다.
한 번 실패하면 죽음밖엔 길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
성장위주의 정책만 강요했던 이명박 정부는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대기업이 잘돼야 서민들도 낙수효과를 볼 수 있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임기 내내 친기업(비즈니스 프랜들리)정책을 고집했다. 고환율을 유도해 물가폭등을 유발하고 기업 경쟁력을 올린다는 명분 하에 끊임없이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시킨 것도 이명박 정부였다.
그런 정부가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서민들에게 내민 카드는 '대출'이었다. 자영업자 대출, 등록금 대출, 전세 대출, 주택담보 대출... 이명박 정부는 임기 5년 내내 숱한 대출 카드를 남발했고 은행 문턱도 몇 번이나 낮췄다. 가계부체 1천조 원이란 살인적 기록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2017년에 3%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잠재성장률을 4%대로 끌어 올리고, 고용률 70%를 달성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을 넘어 4만불 시대로 가는 초석을 다져 놓겠습니다."지난 25일 취임 1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경제혁신 3년 계획'을 발표했다. 아마도 박근혜 정부는 '청사진'이라며 야심차게 이 계획을 내놓은 것이겠지만, '성장률 4%, 고용률 70%, 4만불 시대'란 말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서민들에겐 와 닿지 않는다.
임기 내내 '경제'만 외쳤던 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했던 747공약(7% 성장, 4만불 소득, 7대 강국)처럼 변죽만 울리다가, 결국 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지는 않을까란 우려가 먼저 든다. 더구나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과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474 청사진은 많이 닮았다. 특히 내수 경제의 가장 절박한 문제인 노동을 통한 빈곤 해소와 지속가능한 삶의 방안이 뒷전이란 점이 똑같다.
박 대통령은 담화 첫머리에 "우리나라도 지금 도약이냐 정체냐를 결정지을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면서 "앞으로 제 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서 우리 경제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리고,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것이 저의 사명이자 정치 신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현재 많은 나라들이 불황을 겪고 있고,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 또한 둔화된 징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진단은 구태의연하다. 성장 정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기업과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반성이 없는 점이 가장 아쉽다. 이런 진단을 기본으로 성장률 4%를 바라고 호소하는 건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용률 70% 달성 목표도 그렇다.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률을 높이는 것은 경제 정책의 근간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것이 고용의 질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시간제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선 고용률을 70%까지 올린다 해도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 기업에게 노동은 생산의 수단이지만, 가정에서는 생계 수단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외쳤지만, 늘어난 건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 등 질 나쁜 일자리였다.
최저임금으로는 오르는 물가와 공공요금조차 따라 잡을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부터는 인상률이 더욱 더뎌졌다. 해고가 자유롭고 임금을 줄이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나라에서 '고용률 70%'란 목표는 '저임금 노동자를 대량으로 양산하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노동의 대가로 가계를 꾸리고 부채를 줄여나갈 수 없다면 '고용률 70%'는 워킹푸어 양산의 깃발일 뿐이다.
1%부자와 99%빈곤의 평균이라면 축복 아닌 재앙
2013년 현재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 소득은 2만5000불(약 2500만 원)이다. 4인 가족이라면 1년에 1억 원의 소득을 올려야 평균에 근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연봉 6300만 원을 받는 19년차 노동자를 '귀족'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더 황당한 건 많은 가정이 아버지와 아내는 물론 아이들이 아르바이트에 나서도 19년차 노동자의 연봉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도대체 2만5천불 국민소득은 누가 가져간 걸까.
사실, 답은 따로 있다. 국민소득의 산술적인 평균이 2만5000불이라고 하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그 소득을 향유할 수 없다면, 목표치를 높이는 건 의미가 없다. 그것보다 국민소득이 실질적인 국민들의 평균 소득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래서 "국민소득 3만불 넘어 4만불 초석 다질 것"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에선 희망보단 절망의 그림자가 더 짙어 보였다. 국민소득 4만불 달성이라는 위업이 1% 부와 99% 빈곤이 만들어낸 평균이라면, 그것은 재앙이지 축복이 아니다.
물론 이번 대통령 담화에 진일보한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고 관리하겠다는 것과 내수 활성화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구상이다. 그러나 대선기간 내내 주창하던 경제민주화가 아닌 성장 중심의 '474'라니... 달갑지 않고 동의도 안 된다. 더구나 담화 발표 다음날 내놓은 '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은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땀 흘려 일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받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이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대한민국은 점점 빚더미에 올라앉고 있고,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도 이어지고 있건만, 이를 멈출 정부의 지혜와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474청사진이, 이명박 정권의 실패작인 747공약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