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편집자말] |
한때 해외 여행을 가면 꼭 엽서를 썼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에 누워 파도소리를 들으며 누군가에게 빼곡히 엽서를 썼지요. 삐뚤빼뚤 기어가는 글씨로 이런저런 얘기를 적고는 'South Korea(한국)'이라고 써서 우표를 부쳤습니다. 짧은 휴가에서 돌아와 일상에 적응하려 발버둥칠 무렵, 그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엽서 잘 받았다고. 그 절묘한 시간차 공격에 아직도 여행지에 있는 기분마저 듭니다.
요즘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엽서를 띄우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바깽이의 인도여행엽서'를 연재하고 있는 박경 시민기자님인데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두장과 짧고 간결한 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요즘 오마이뉴스에는 여행기가 무척 많은데요, 그 중에서 박경 기자님의 글은 약간은 다른 향내를 풍깁니다. 약간은 느슨한,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설렁설렁 걸어다니는 느긋한 여행자의 모습이 연상되는데요. 그곳이 인도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메일 인터뷰로 박경 기자님을 만났습니다.
☞ 박경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일년에 한번 떠나는 여행, 일년마다 여행기가 차곡차곡
- 2005년부터 베트남, 일본 도쿄, 캄보디아 앙코르 왓, 일본 간사이, 이집트, 중국 윈난, 이탈리아-스위스, 인도를 여행하셨어요. '1년에 한 번은 해외 여행을 하자' 같은 특별한 삶의 지침이 있나요? "'1년에 한 번은 꼭!', 뭐 이런 결기는 전혀 없고요. 돈과 시간의 제약에 따른 결과라고 할까요. 시간은 아이 방학에 맞추다 보니 그렇고, 돈은… 음… 잠깐 그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어요. 나중에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 줄 것이냐, 그게 돈이나 재산보다는 여행의 추억, 여행에서 얻는 것들이라면 좋겠다, 그렇게 결론 내리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 꼭 가족과 같이 여행을 하나요? 남편분과 따님, 맞죠? "아이가 너댓 살까지만 해도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어요. 어떻게 남편이랑 새끼 좀 떼어 놓고 여행갈까 하고. 친구와 지리산 종주도 하고 울릉도 도보 여행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가족과 하는 게 더 편해졌어요. 서로 길들여진 거죠. 그런데 앞으로 점점 힘들 것 같아요. 딸이 좀 컸다고 자기주장이 생겼거든요. 이제 엄마 아빠 하자는 대로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어린 애가 아니더라고요. 우리 품을 떠나 따로 여행을 다니게 될 날이 머지 않은 듯해요."
- 이번 인도여행도 한 달 정도 하셨지만 온 가족이 시간 맞추는 게 쉽지 않아 보여요.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준비랄 게 뭐 없어요. 그냥 세 마음이 맞아 떨어진 거죠. 일하기 싫은 아빠와 밥하기 싫은 엄마와 공부하기 싫은 아이의 마음이. 아이는 중 3을 마친 겨울방학이었고요, 저는 언제든 튕겨나갈 준비가 된 전업주부고, 남편만 맞추면 되는 거였는데, 마침(?) 남편이 얼마 전에 벌인 일이 그다지 시뜩하지 않아서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어요. 그래, 그럼 인도 여행이나 가지 뭐, 하면서 과감하게 남편 일을 접고 떠나게 되었어요."
- 지금 연재하는 여행기가 '바깽이의 인도여행엽서'예요. 글도 짧고 사진도 한두 장이라 무척 간결하고 여백이 느껴져요. '엽서' 형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인도에 갔을 때 우연히 엽서를 사게 됐어요. 엽서 한 장에 가족이, 서너 문장씩 돌아가면서 써서 뭄바이 우체국 가서 서울 우리집으로 보낸 거죠. 여행지에서 내가 나에게 쓴 엽서를 돌아와 집에서 받아보는 기분도 재밌더라고요. 엽서 한 장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아, 사진 한 장에 짧은 글, 받아보는 사람이 부담이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 처음에는 기사 같지 않아서 편집부 기자들도 약간 당황했어요. "사실 무지하게 긴장되더라고요. 이게 채택이 될까 안 될까, 안되면 그만 두면 되지 뭐, 편하게 생각했어요. 첫 회는 그럭저럭 통과했던 거 같은데, 두 번째가 생나무 클리닉으로 뜬 거 보고, 안 먹히는구나 싶다가, 괜히 오기가 생겨 그 상태에서 바로 3회를 송고해 버렸어요, 고집스럽게. 제 딴에는 승부수를 던진답시고. 또 생나무 클리닉이 떴어요. 아, 정말 아니구나, 그만 써야겠다 하고 편하게 있는데, 바로 편집부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사실 다시 고칠 자신이 없어 전화 주신 기자분께 좀 차갑게 대답했어요, 생각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해 보니, 감사한 거예요. 수많은 시민기자의 기사 중 하나일 뿐이고 그냥 기사를 버리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전화를 주셨다는 게 감사해서 다시 고쳐 송고한 게 다행히 채택이 되었고, 그럭저럭 이어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저 그런 나라의 그저 그런 여행기, 어떤가요
- 여행기에서 인도에 대한 '동경' 뭐 그런 게 느껴져요."바라나시 가기 전까지만 해도, 동남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별 재미없다, 했는데, 바라나시 들어가니까 확 다르더라고요. 아, 이게 인도구나. 바라나시가 인도구나, 인도가 바라나시구나. 사실 제가 목도한 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깊이보다는 가난한 현실에 불과해요. 껍질만 본 수준이라고 할까? 인도에서 보면, 인간과 짐승이 경계가 없이 섞여 있어요. 짐승들이 울타리가 따로 없고 섞여서 돌아다니고, 동물이 사람 같고 사람이 동물 같고, 너무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사람이 막 짐승들 속에 내깔려진 느낌.
얼마 전에, 인도에서 쓴 일기장을 들춰보고 깜짝 놀랐어요. 여행한 지 스무 날쯤 되었을 때, 이렇게 썼더라고요. 인도에 다시 오고 싶지 않다.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때 그랬는지. 지금은 정말 다시 가고 싶은데. 우리 딸은 인도에 다시 갈 마음 전혀 없다고 고개를 저어요. 바라나시에서부터 시작된 배탈이 가라앉질 않아서 계속 고생했거든요.
- 가족 여행에는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주부들은 뒤치닥거리를 해야 하니 피곤할 것 같아요. "여행이 일상의 연장이라고 보면, 별로 달라지지가 않아요. 집에서 하던 주부짓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여행은 주부파업의 절호의 기회예요. 어느 날 선언했어요, 각자 옷 각자 빨아 입자고. 그랬더니, 깔끔 떨던 남편이 빨래하기 싫으니까 속옷도 입던 거 대충 다시 골라 입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어릴 때의 가족여행은 아이에게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여행을 통해서 성장하는 걸 느꼈어요. 첫 해외여행에서는 호텔이 별로네, 뭐가 어떻네, 투덜대고 불평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오지마을의 보잘것없는 숙소에서도 우리보다 더 잘 적응하더라고요. 겁 많고 낯선 걸 안 좋아하는 애였는데, 지금은 너무 겁 없이 덤빌 때도 있어요.
그런데 여행이란 게 생판 모르는 사람도 만나서 친구도 되고 새로운 경험도 해야 하는 건데, 우리한테는 접근을 잘 안해요. 그래서 가족여행은 때로, 우리끼리만 매몰된 느낌, 뭐 그런 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 박경 기자님(가족)의 여행 스타일이 궁금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가지 않으려고 해요. 첫 해외 여행지가 프랑스였는데, 파리의 한 호텔에서만 1주일을 묵었어요. 한 도시에만 머무르는 거, 잡스럽지 않고 그 도시에 녹아드는 기분, 참 좋았어요. 계속 같은 길 왔다리 갔다리, 어디에 가게가 있고 어디쯤에 꽃집이 있고 버스가 어디를 거쳐서 어디로 가는지 다 알게 되니까 정도 들고 친밀감도 생기고 눈에 선하고.
또 밤늦도록 돌아다니지는 않는 편이에요. 저녁 때 숙소로 와서 일기 쓰고 그날 정리하고. 아침도 서두르지 않고 느지막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하루 세끼 챙겨 먹는 것도 스트레스고. 낯선 외국에 가서 식당 찾아가는 것도 관광지 한 곳 찾아가는 것처럼 큰일이잖아요. 때에 따라서 하루 두 끼도 충분하더라고요. 여행이 거듭될수록 게을러져요, 느긋해져요. 게으른 여행이 진화된 여행이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 지금까지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진 않으셨지만 꾸준히 글을 쓰셨어요. 오마이뉴스에 계속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요?"사실, 지난 번 이집트 여행기를 끝으로 그만 쓰려고 했어요. 그래서 마지막회 한 회를 일부러 쓰지 않기도 했어요. 마무리도 안 짓고 다음번 새로운 여행기 쓰기는 좀 웃길 테니까. 그런데 이게 중독이 된 건지, 여행을 다녀와서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스멀스멀 마음이 동해요. 전 딱 세 가지 이유에서 여행기를 올려요. 제 여행을 기록하고 정리해 두고 싶은 마음에서, 여행기를 쓰는 동안 한 번 더 여행하는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제 여행의 추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와 여행기를 꼽자면. "얼핏 떠오르는 곳은, 작은 티벳 '샹그릴라' 정도. 사람들 눈빛이 정말 순박하거든요.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안 좋은 소식을 들었어요. 중국 군대가 투입되고 티벳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 그게 참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요.
특별했던 여행기는 없는데, 베네치아 여행기 썼을 때 어떤 분이 원고료를 만 원이나 주셨어요. 좋은 여행기 올려 달라고 격려해 주셨는데, 그게 참 미안하고 부담스러웠어요. 베네치아 여행기는 두 편으로 끝냈거든요. 양심에 찔려서 원고료를 돌려 드려야 하나 마나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 앞으로 어떤 여행기를 쓰고 싶으신가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가서 스쳐 지나가지 않고 머무르기도 하는, 일상처럼 살아보는 그런 여행을 그려 봅니다. 너무 알려진 곳도 아니고 너무 오지도 아닌, 그저 그런 나라의 그저 그런 작은 마을에서 그저 그런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과 감흥을 나눌 수 있는 여행기라면… 그저 그럴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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