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란아~ 혜란아~ 널 두고 어떻게 가니? 엄마다. 엄마가 여기 왔다. 아가야~"8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제4묘역. 딸을 잃은 어미의 통곡이 울려 퍼졌다.
직속상관이던 노아무개 소령에게 지속적인 성추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오혜란 대위의 안장식이 열렸다. 육군이 지난 달 오 대위의 순직을 인정함에 따라 국립묘지에 이날 안장되게 된 것.
이날 안장식은 현충관에서 국민의례와 영현에 대한 경례, 종교의식, 헌화와 헌시낭송, 묵념 등으로 진행됐고, 현충관을 나서 장군 제4묘역으로 이동한 후에는 하관 및 하토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안장식이 시작되기에 앞서 오 대위가 근무하던 15사단 정인영 작전부사단장(대령)이 40여명의 오 대위 동료 등과 함께 안장식장을 찾았으나 유족의 항의를 받고 들어가지 못했다.
이날 오 대위의 고모부인 박아무개 씨는 "유족들은 사단장이 직접 이 자리에 와서 조문하기를 요구했다, 그런데 부사단장이 온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돌아가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다만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은 들어와도 좋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부사단장은 "부대에 사전에 계획된 중요한 훈련이 있어서 지휘관인 사단장이 오지 못했다"며 "어떻게 말씀 드려도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밖에 있겠다"고 말했다.
현충관에서의 의식이 끝나고 오 대위의 영현이 장교 제4묘역으로 옮겨졌다. 오 대위의 묘소 앞에는 미리 보내온 김상희 국회의원과 육군 참모총장, 육군 제2군단장, 제15사단장, 제2군단 여군 장교 일동 등이 보내온 조화가 놓여있었다.
오 대위의 영현이 땅에 묻히고, 삽을 들어 흙을 뿌리던 오 대위의 아버지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오 대위의 어머니는 손으로 흙을 덮으면서 "혜란아, 엄마다. 엄마가 왔다"고 울부짖었다.
평소에 오 대위를 많이 아꼈다는 오 대위의 큰고모는 "좋은 곳에 가거라"라며 흐느끼다가 "억울해, 억울해~ 저렇게 예쁜 애를 왜 그렇게 했어"라고 소리쳤다. 이에 유족들이 "그만 하라, 뒤(군부대 대표 및 동료 군인들)에서 듣겠다"고 말리자 "들으라고 해, 왜 내가 한마디도 못해, 억울하다는 말도 못 해"라며 소리 지르기도 했다.
하관과 하토를 마친 후에는 불교식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유족들은 오 대위의 묘소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차례대로 절을 하며 명복을 빌었다. 군 대표로는 육군본부에서 나 온 김기돈 소장이 하토에 참여한 뒤, 동료 부대원들과 함께 묵념과 경례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모든 의식을 마친 후 오 대위의 어머니는 땅 바닥에 주저앉아 "혜란아~ 혜란아~"를 외치며 대성통곡했다. 이후 가족들의 부축에 의해 겨우 일어난 어머니는 오 대위와 함께 근무했던 10여명의 여군동료들을 한사람씩 모두 안아주며 흐느껴 울었다.
이에 오 대위의 동료들도 "힘내세요"라며 위로하면서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특히, 오 대위의 어머니는 오 대위와 함께 노아무개 소령을 고소하고, 재판장에서 진술했던 박아무개 중위를 껴안고 한 참을 울었다. 마지막 자리를 떠나기 전 오 대위의 큰고모는 제사상에 차렸던 과일과 음식을 싸서 오 대위의 동료들 손에 들려줬다.
또한 정 부사단장은 오 대위의 아버지에게 "부대원들이 모은 것"이라며 조의금을 전달하고 "저희들의 불찰이다, 죄송하고 죄송하다, 힘내시라"고 말했다.
한편, 오 대위는 지난해 10월 직속상관이던 노아무개 소령에게 성관계를 강요받는 등 지속적인 성추행과 폭행, 가혹행위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지난 2월 제2군단보통군사법원은 강제추행과 직권남용, 가혹행위, 폭행, 모욕 등 노 소령의 가해사실을 모두 인정하고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