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9시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앞에 유가족 3~4명이 몰려들었다. 유가족 A씨가 무릎을 꿇고 박 대통령에게 하소연했다. A씨는 "자기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 전전긍긍… 그 해경 관계자들 엄중 문책해 주십시요, 웃고 다녀요"라고 박 대통령에게 하소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5분 분향소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검은 투피스 차림이었다. 국화꽃 한 송이를 영정에 헌화한 후, 유족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울면서 이야기하자 위로했다. 조의록에 '갑작스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며 삼가 고개숙여 명복을 빕니다'고 쓰는 동안 이번에는 유족들이 "대통령이 왔으면 가족을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쳤다. 박 대통령은 그제서야 유족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오전 9시 8분께 박 대통령이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를 뜨자, 일부 유가족들은 "대통령 조화 밖으로 꺼내 버려"라고 소리쳤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이 떠나자 성난 유가족들이 "여기까지 와서 사과 한 마디 안할 수 있느냐"며 가슴을 치며 고함을 질렀다고 현장 상황을 보도했다.
대통령 2번 만난 세월호 가족들, 2번 무릎 꿇어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은 두 번 세월호 가족들을 만났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달 17일 오후 박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체육관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을 맞이한 유가족들의 감정은 격앙돼 있었다. JTBC 중계에는 발언을 하는 박 대통령을 향해 실종자 가족들의 격앙된 고함소리가 날 것 그대로 전달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을 향해 '욕설'이 날아들었다고 전했다. 전날인 16일 밤에 현장을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물병 세례를 당하고 쫓겨나듯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
청와대 경호실의 호위를 받으며 발언하던 박 대통령을 향해 실종자 가족인 한 여성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아이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절박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장면이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1분 1초가 급하다"고 말하며 구조작업의 시급성을 언급했지만 그 후 실종자 가족들이 동의할 만한 구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두 차례 박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그때마다 무릎을 꿇었다. 17일에는 실종자 가족인 중년의 여성이 진도체육관에서 무릎을 꿇었다. 박 대통령은 연단에 서서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라봤다. 29일에는 합동분향소에서 이번에는 유가족인 중년의 남성이 무릎을 꿇고 '해경에 대한 처벌 등'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위로하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대통령 앞에서 뿐만 아니라 세월호 가족들은 무릎을 자주 꿇었다. 사고 발생 3일째인 18일 밤 진도 팽목항 상황실 앞에서 실종자 가족 엄마들이 단체로 무릎을 꿇고 '실종 아이 생사를 확인해 달라'며 울부짖었다. 상대가 박 대통령이어서만 무릎을 꿇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의도적으로 구조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해경과 해수부에 분노했지만 그들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빌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작업에 있어 현실적 힘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라면 그가 누구라도 빌었다. '사상 최대 규모 수색'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던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가족들은 무릎을 꿇고 실낱 같은 희망을 빌었던 것이다. 구조하지 못한 죄인은 정부이나, 그나마 구조할 장비와 인원을 가진 것 또한 정부이기에 국민들은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것인가, 꿀린 것인가.
노무현 당선인 "대구 지하철 참사에 죄인된 심정"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발생한 화재로 192명이 사망하는 대참사였다. 2월 2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정치하는 사람들과 스스로 지도자로 칭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죄인 느낌을 가지고 일을 대해왔는데 내 심정도 그렇다"며 "하늘을 우러러 보고 국민에게 죄인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죄인' 발언을 한 지 이틀 후인 2월 23일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대구에 가니 대구시장이 저에게 인사를 하면서 '면목 없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소개하면서 "'시장이 무슨 책임이 있소. 하고자 한 것도 아닌데'라고 위로했는데… 그 인사를 받을 때 대구시장의 인사가 꼭 내 심정하고 같았다"고 당시의 망연자실했던 상황을 전했다.
2004년 6월 23일 이라크에서 재건작업을 하던 중 피살된 김선일씨 사건과 관련해서는 당일 오전 9시 30분 청와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참으로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고 말한 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소식을 전해드리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국민사과를 발표했다. '고인의 절규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사소한 사진 한 장에서도 소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5월 28일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가 공개한 미공개 사진 속에는 노 대통령이 한 중년 여성 앞에서 무릎 꿇은 모습도 들어있었다. 퇴임 후인 2008년 5월 21일 사저 앞 잔디밭에서 방문객 인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한 여성으로부터 사인을 요청받자 무릎을 꿇고 사인을 해준 것이다.
지난달 17일 진도체육관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중년 남성이 할 말이 있다고 손을 높이 들었다. 그는 큰 소리로 물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박 대통령은 대답했다.
"국민이지요!" 그 주인이 두 차례 무릎을 꿇었다. 이제는 박근혜 정부가 주인이 무릎 꿇은 것에 대한 답을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