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시민 중 윤조덕(64)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무소속으로 파주시 기초의원(나선거구-조리읍, 광탄면, 운정1·2동)에 도전하는 것을 다소 의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윤 후보 선거사무실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윤 후보의 학력과 경력은 시장 후보로도 손색없다"며 "더구나 동생(윤후덕, 파주갑, 새정치민주연합)이 여기 국회의원인데 무소속으로 나와서 솔직히 놀랐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그동안 각종 선거 때마다 타천에 의해 후보 물망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정치에 동생이 먼저 뛰어든 이유 등으로 모든 후보직을 고사해 왔다. 그러다 동생이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돼 부담감을 없앴고, 이번에 기초단체 정당 무공천 약속도 있어 무소속으로 기초의원 선거에 나섰다.
그런데 무소속 예비후보 등록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새누리당이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단체 정당 무공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이어 새정치민주연합도 정당 공천을 다시 수용한 것. 그 바람에 지역에서는 동생이 속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경쟁하는 모양새가 된 윤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 대상이다.
"정부가 안전관리를 못해도 너무 못했다"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열띤 정책과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선거운동마저 전면 멈춰 서 있던 지난 11일 일요일 오후 와동동에 자리한 윤 후보의 사무실을 찾았다.
윤 후보는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참담한 분위기에서 인터뷰하는 것조차 매우 조심스럽다"면서 "그러나 정부가 안전관리를 못해도 너무 못했다는 건 분명하다"고 전제한 뒤 말을 이었다.
"1995년에 국무총리 안전관리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어요.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등 대형 사건사고가 너무 많이 발생한 뒤였죠. 그때부터 각종 시설과 사업장 등의 안전관리 중요성을 늘 강조해 왔어요. 이번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안전관리는 반드시 관련 전문가가 평소에 매우 치밀하게 해야 합니다."함께 자리한 황세영 사무장은 조심스러운 후보와 달리 목소리를 높이며 윤 후보를 거들었다.
"검증된 안전관리 전문가가 여기 있습니다. 파주시만 하더라도 오래전 안전관리위원회를 꾸리면서 윤조덕 박사님을 아예 초청조차 안 했어요. 안전관리에도 정파나 파벌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초의회를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많아요."황 사무장은 이어 "지금 세월호 참사는 안전관리 전문가 없이 우왕좌왕했기 때문에 사고를 키운 것"이라며 "윤조덕 후보는 위기에 빠진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파주 교하 출신으로 금촌초, 문산중을 거쳐 서울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다. 이후 독일 부퍼탈(wuppertal)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노동연구원 선임 연구원,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삼성그룹 지구환경연구소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안전관리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사회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학계, 산업계, 정부 등 다양한 분야의 경력에서 드러나듯 윤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동·안전·정책 분야 전문가다. 정치 현장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정치인에게 각종 위기관리와 정책생산 능력은 필수요소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윤 후보는 "제 경력은 기초의원에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무엇보다 기초의원은 시장 그 이상의 자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아래에서부터 파주시의회를 바꿔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초의원은 시장 그 이상 자리보다 중요하다"
동생 윤후덕 국회의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윤 후보는 "선거에 있어 아무런 도움도 그렇다고 장애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동생은 동생대로, 저는 저대로 정치에 대한 소신과 신념이 있기 때문에 소속이 같건 다르건 이번 선거와는 아무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윤 후보 선거사무실 건물 외벽에 내 걸린 2장의 대형현수막은 윤 후보의 기초의원 진입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손희정 후보는 "국회의원 윤후덕과 함께 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며 윤후덕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걸었다. 반면 윤 후보는 "주민 행복시대, 준비된 전문가"라는 간단한 문구만으로 무소속의 험난한 선거전에 나섰다.
윤 후보는 "사실 조직이 없는 무소속인데다 세월호 참사로 선거 운동도 못하고 있다"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조직을 활용해 드러나지 않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걸 감안하면 굉장히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정치의 생명인 대화와 타협, 토론과 설득 능력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실제 결과물로 증명하며 살아왔다"며 "조직도 없고 돈도 없지만 시민들이 잘 판단하실 것으로 믿는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윤 후보는 지난 2003년 정부가 의정부에 있던 교도소를 파주시 조리읍의 미군기지로 이전을 추진하자 범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았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대화와 설득, 오랜 토론을 거쳐 결국 교도소 이전을 백지화시켰다. 정부와 국방부를 상대로 이뤄낸 뜻 깊은 성과였다.
파주시는 과거 미군기지가 많은 곳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군사도시로도 불리던 곳이다. 현재도 미군이 떠난 몇몇 기지들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정부와 국방부를 상대하는 싸움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윤 후보의 갈등 조정과 문제 해결 능력은 그 때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동생은 새정치연합 국회의원, 형은 무소속 기초의원 후보... 결과는?윤 후보는 그동안 파주시민회 상임공동대표, 푸른파주21 추진협의회 상임공동회장 등을 맡으며 파주시 관련 일을 계속 해 왔다. 시민단체 활동이 아니라 정치초년병으로 선거운동을 하면서 직접 제도 정치권에 발을 디딘 느낌은 어떨까.
"노인복지회관 등을 다녀보니 반응이 2가지로 나뉘어요. 능력 있는 사람이 나왔다고 반겨 주시는 분들과 왜 선거 때는 오면서 당선되면 안 오느냐고 냉담하신 분들로요. 어떤 사안을 논의해 갈등을 조정하고 정책을 추진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인복지는 물론이고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토론하고 결과를 모아서 의견차를 좁히는 게 중요합니다. 교도소 이전 반대도 그런 과정을 거쳐 결론을 끌어냈고요."16일 오후 후보 등록 결과 새누리당 나성민(1-가)·김병수(1-나), 새정치민주연합 손희정(2-가)·한기황(2-나), 통합진보당 윤희갑(3), 무소속 김창순(4) 윤영필(5) 윤조덕(6) 8명으로 대진표가 확정됐다. 이들 중 3명만이 시의원이 될 수 있다.
과연 윤 후보가 동생 윤후덕 국회의원이 밀어주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과의 경쟁을 뚫고 당선될 수 있을까. 윤 후보는 조심스레 자신감을 내비쳤다.
"선거운동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는데도 예비후보 안내 홍보물만을 보고 사무실로 전화해 필요하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말씀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제 이력과 경력만 보고 응원해 주시는 건데,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최육상 기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지방선거 특별취재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