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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새벽 3시. 오늘도 어김없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차에 몸을 싣는다. 꼬박 네 시간을 달려야만 도착하는 어색한 출근길을 재촉한 지 벌써 두 달째다.

지난 5월, 충남 당진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전라도의 끝자락에 사는 가족과 일 주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됐다. 일명 '주말부부'가 된 것이다. 이제 꼬박 5일을 보내야만 금요일 밤에야 그리운 집으로 퇴근한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구나?"
"3대가 덕을 쌓았나? 무슨 덕이기에 주말부부를…." 

이 말은 자유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던진 말이다. 그러나 현실을 잊는 해방감도 잠시, 주말부부의 여유는 독신의 그것과 또 달랐다. 일단 집으로 오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야속하게도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묶었다는 KTX나 고속버스는 노선 자체가 없었다. 그러기에 금요일 오후까지 근무한 뒤 승용차를 타고 달리면 자정에야 도착했고, 이틀을 보낸 후 월요일 새벽에 다시 출발해 힘든 한 주를 시작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은 모텔촌과 마시지 업소를 거쳐야만 한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은 모텔촌과 마시지 업소를 거쳐야만 한다. ⓒ 김학용

어디 그뿐인가. 반경 5km 이내에는 그 흔한 술집조차 없었다. 또 공단의 특수성으로 대부분이 1인 가구라는 점을 반영, 이들의 생활 방식에 맞춰 어딜 가나 원룸 촌이다. 지역이 지역인 만큼 젊은 여성을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 편의점과 식당의 아줌마가 전부였다. 그야말로 군대 생활이나 마찬가지다. 내리 쬐는 태양과 바다만 있을 뿐이다.

원룸 골목에 뿌려진 이상한 명함

 공단 바로 옆에는 '호텔식 마사지'라는 간판을 단 정체불명의 업소가 성업중이다.
공단 바로 옆에는 '호텔식 마사지'라는 간판을 단 정체불명의 업소가 성업중이다. ⓒ 김학용

해가 기울자, 공단 가로등에는 불이 켜지고 한 공장의 맞은편 업소에서는 오늘도 '특별 서비스'를 일상처럼 행한다. 쌩뚱맞게도 공장 옆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이 곳은 아마도 변종 성매매 업소인 듯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안마시술소의 회전 광고등에 퇴근하는 근로자들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

이 곳을 막 벗어나면 서해대교 부근. 내가 기거하는 원룸 입구에는 러브호텔이 부지기수다. 이 지역이 관광지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곳이지만, 이미 호화설비를 갖춘 대형 모텔촌은 에로티시즘의 절정 거리다. 대놓고 걸려 있는 초저가 대실 사용료 안내문을 보노라니 속으로 웃음이 절로 난다.

 원룸단지 입구에 늘어선 모텔들. 과연 누구를 위한 모텔들일까?
원룸단지 입구에 늘어선 모텔들. 과연 누구를 위한 모텔들일까? ⓒ 김학용

점입가경이다. 하지만 여기서 안도하기엔 아직 이르다. 자, 이제 화룡점정이 기다리고 있다. 모텔촌을 막 벗어나 퇴근 후 숙소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나를 맞아주는 것은 현관문에 뿌려진 수십 장의 출장 안마 명함이다. 이곳에는 원룸 거주자들을 상대로 한 여러 가지 전단이 뿌려지는데, 대부분은 이 출장안마가 차지한다. 그런데 이 명함형 전단지의 문구들은 정말 기가 막힌다.

'여성과 함께 피로를 날려요', '일단 불러만 주시면 만족할 때까지~', '전화 한 통으로 황홀한 안마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 광고 문구들, 너무 뻔하지 않나? 반라의 여성 사진을 배경으로 숙소에서 편하게 전화하라고 친절히 광고하는 이 안마는 1시간 15만 원, 최초 이용 때 2만 원 할인이란다. 이 출장안마는 안마 이외의 다른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이제는 지나가는 개도 안다. 

공단지역 전체를 통틀어 성매매는 일상적으로 묵인된다. 가끔 원룸에서 나오는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을 보면 아까 그 명함에 나온 여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든다. 하루가 멀게 늘어만 가는 이곳 원룸단지의 마사지가 본연의 의미를 되찾을 수는 있는 걸까? 오늘도 퇴근하면 어김없이 현관문 앞에 꽂혀 있을 출장안마 명함의 퇴치를 외쳐본다.

600km에 이르는 출퇴근길... 반성의 시간이 되다

 공단지역 근무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거대한 원룸촌.
공단지역 근무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거대한 원룸촌. ⓒ 김학용

이제 나에게 주말의 의미는 남다르다. 말 그대로 이산가족 상봉하는 날이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는 눈에서 멀어진다고 마음조차 멀어지진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언제나 신혼'이라는 얘기도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잃은 게 있었다면 얻은 것도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반면, 아이들이 아빠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나름 무척 편안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또, 객지생활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살림 실력도 많이 늘었다. 햇반과 라면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찌개와 탕까지 영역이 확대됐다. 생전 드라마를 보지 않던 내가 어느새 요일별 편성표까지 꿰고 있으며, 걸레질은 물론 빨래와 설거지 실력도 늘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항상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보다.

현실의 무게는 늘 버겁고 일상은 고독해도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4시간의 출근길도 이젠 가볍다. 왕복 600km에 이르는 대장정일지라도. 금요일 밤 지친 몸을 이끌면서도 그 먼 곳까지 퇴근을 자처하는 이유도 바로 사랑하는 가족들 때문 아니겠는가?

월요일 새벽을 가르는 출근길, 이는 16년 결혼생활 중 처음으로 맞이하는 나만의 반성의 시간이 되었다. 가족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표현에 인색했던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본다.

덧붙이는 글 | 기사 공모 <출퇴근길의 추억> 응모 글입니다.



#출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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