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야속한 알람소리를 원망하며 잠을 털어낸다.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집밖으로 나섰다. 지난 4월, 처음 안산으로 향했던 그때만 해도 5시면 어둑어둑 했었는데 훤한 동네의 풍경은 여름이 왔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모처럼 쉬는 일정을 쪼개어 진도로 향하겠노라 하는 계획을 입 밖으로 내었을 때 돌아오는 답의 대부분은 이랬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니?"백날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바뀔 기미도 없고 미동조차 않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바뀌고 변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백날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시간에 기댈 수는 없다. 4월의 안산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보았고 또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이 백일의 시간이 지났어도 전혀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서울광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보며 다시금 확인했다.
백날 며칠이 지나도 꿈쩍도 않는 세상에서는 표적이 된 유아무개씨를 찾아 백만 경찰이 소동을 피운 끝에 매실 밭에서 시신으로 확인했다는 요상한 이야기들만 들려오는 와중에 지금도 그저 실종된 가족이 시신으로라도 돌아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진도. 그 곳으로 오래하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안산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전히 운행되고 있는 진도행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깊은 한숨을 내었다. 백날 며칠이 흘렀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실종자의 수는 여전한 기다림으로 진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7월 28일. 새벽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 첫차를 타고 안산으로 향하는 길. 익숙해지지 않아야 할 길이 익숙해지고, 매번 그곳으로 향할 때마다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길. 청계산을 넘으며 이번에도 마지막 길이 되기를 기원했다.
첫차 출발 시간 오전 7시에서 10분이 모자란 시간. 안산 올림픽 기념관 앞에 닿았다. 주변의 풍경에서 추모 현수막과 진도행 버스만이 백일여 기간 동안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루 10대의 버스가 줄고 줄어 4대가 남고 다시 3대로 줄어들고 실종자가 사망자의 숫자가 되어 돌아오는 그 숨막히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오매불망 소중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가족 분들이 여전히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서 기거하는 중이다.
내가 내려가 있을 1박 2일의 시간이 그 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을지, 안산에 처음 가던 날처럼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위로가 되어드리고 싶었다.
차가 막혔다. 서해안 고속도로 평택까지의 구간. 차가 막히면 그 구간이 막힌다는 기사님들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구간을 통과하자 정체가 해소되었다. 지금까지의 진도행 길과 마찬가지로 서산과 함평 휴게소를 들러 닿은 진도. 차가 막혔는데도 낮 12시 20분에 닿았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은 셈이다.
진도 실내 체육관 앞을 지키는 것은 이제 뉴스 화면이 나오는 대형 스크린 차량뿐이었다. 백일이라는 시간과 더운 날씨가 천막을 철수하게 만든 것이다. 체육관 안에 들어서자 여전한 모습들도 보였다. 진도군 자원봉사센터의 부스와 안산시 자원봉사센터의 부스 그리고 물품을 배급하는 담당자 선생님들의 모습들. 여전히 그곳을 지켜주고 있는 많은 분들이 보였다.
자원봉사자 등록을 마치고 처음 배정 받은 업무는 식사다. 서로의 식사 여부를 챙기는 일이 중요한 일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체육관 정문 쪽에 위치했었던 식당들은 뒤쪽 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겨 있었다.
그곳으로 가니 많은 어머니들이 정성 가득한 식사를 나눠 담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들이 '조금밖에 소화시키지 못한다'며 양해를 구했으나 어머니들에게 조금은 내게는 꽤나 벅찬 양이 되어 담겼다. 삼계탕이 나왔다. 잊고 있었는데 중복이란다. 이곳에 계시는 분들이 식사는 제대로 챙기나 걱정했던 것들은 어쩌면 기우였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안심이 된다.
첫 업무를 마치고 부스로 가니 진짜 업무가 배정되었다. 화장실과 샤워장을 청소하는 일. 쓰레기 봉투와 고무 장갑을 끼고 체육관과 주차장에 마련된 화장실을 돌아다닌다. 매번 놀라는 일이지만, 많은 분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임에도 깨끗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많은 분들이 노력해주신 결과로 보인다. 정말 다행이었다.
백날 며칠이 지났으니 이제는 그만하자는 세간에 흘러 다니는 말처럼 이곳마저 변했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들은 말 그대로 기우가 되었다. 여전히 이곳을 처음처럼 지키는 분들이 계셨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짬을 내서 내려온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조금씩 비가 흩어 뿌리는 날씨지만 팽목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예전처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30분에 한 번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이어주는 버스가 여전히 운행되고 있었다.
팽목항에 닿자 내가 걸친 우비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바람이 거셌다. 진입로에 들어서자 우측으로 보이는 가족 분들의 거처. 진입로와 항구를 따라 이어졌던 천막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지만, 가족 분들이 기거하는 천막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어서 빨리 천막이 필요 없게 돼야 할 텐데… 좀처럼 줄지 않는 천막을 보니 가슴이 저려온다.
진입로 따라 걸어가니 빨간 등대가 저 멀리서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다가가니 떨어지는 빗소리 위로 목탁 소리가 들린다. 나오지 않는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목탁 소리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따라 걸어가니 노란 깃발들이 비바람을 맞으며 펄럭거리고 있었다. 깃발 하나하나마다 나오지 못한 실종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일반 탑승객 3분, 단원고 학생이 5분, 선생님 2분.
이렇게 나와 주기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좀처럼 돌아오지 못하고 시간만 흐르는 것도, 이렇게 비를 뿌리며 도와주지 않는 날씨도,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더는 진도로 내려오지 않도록 바라는 것이 그렇게 과한 욕심인 건지 따져 묻고만 싶다.
빨간 등대 아래를 보니 하늘나라 우체통이라고 적혀 있는 조형물이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어머니들이 모여 자신의 종교를 초월해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여전히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음을, 이 마음이 전해져 바라는 바 이루어지기를 나의 마음을 더해 기도를 드렸다.
다시 30여 분이 걸려 실내체육관으로 돌아가는 길. 체육관에 거의 닿을 무렵 봉사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다른 일을 배정해 주겠노라고. 어차피 버스가 닿아야 일도 할 텐데 괜히 마음이 급해져 조바심이 났다.
체육관에 도착하니 버스 주차장 쪽에 컨테이너 가건물을 짓기 위해 기존에 있던 천막을 철거하는 일을 부탁해 오셨다. 남자 봉사자들이 모두 모여 집기를 날랐다. 모이고 보니 꽤 많은 인원이었고 덕분에 일은 금방 마칠 수 있었다. 한 번씩 힘쓰는 일을 하고 나면 진짜 도움이 되는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도움이고 위로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저녁은 컵라면으로 때울 요량으로 물을 받아 조계종 천막으로 향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스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걸 보고 있던 불자 할아버지께서 대뜸 말을 걸어오셨다.
"안산에서 버스 안내하시던 선생님이시죠?"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초콜릿을 꺼내 건네주셨다. 진도를 계속 지켜주셨을 그 할아버님은 연신 고맙다고 그러셨다. 그 정도의 일을 해낸 기억이 없어 그저 부끄러웠다. 초콜릿을 매만졌다. '이걸 죄스럽고 아까워서 어떻게 먹을 수 있나.' 나에게 되묻는다. 과연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만큼 도움이 되었나?
마지막이어라, 이번이 마지막이어라
비가 오락가락 하던 통에 어둑하던 날씨. 비는 거의 그쳐 반가웠지만 어둠이 깔린 체육관에는 모기가 극성이었다. 산 근처라 그런지 독한 산모기들이 극성이었다. 바깥에 나가 낮에 보고 지나간 뉴스가 또다시 나오는 것을 잠시 보려했으나 모기의 방해로 좀처럼 앉아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들어와 부스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얼마 안 되는 시간 뭐라도 도움이고 싶은 마음에 그 자리를 지켰다. 물품 찾으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고 싶어 위치를 눈대중으로 살피며 기억하려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통에 우비와 수건을 많이 찾으셨다. 늦은 밤이 되자 세면도구들도 많이 찾으셨다. 계속 상주하는 분들이라 찾아드릴 기회는 많지 않았다.
늦은 밤이 되고 점차 복도에 다니는 사람이 적어질 무렵. 2층으로 올라갔다. 짧은 기간이라 끄떡없이 밤새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밀려드는 피로 앞에서 약해졌다. 3시간만 잘 요량으로 올라간 2층 관중석. 오늘 하루도 고생 많이 하셨을 자원봉사자 분들이 깔개에 의지해 잠을 청하고 계셨다.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이 불편하실 것 같아 1층에는 되도록 시선을 주지 않으려 해도 낮 시간 비어 있던 체육관에 가족 분들이 돌아오셨다는 것이 느껴진다. 대통령 방문 이후 설치되었다는 대형스크린 2개. 한쪽에서는 방송이 소리 없이 흘러나오고 한쪽에서는 수색 작업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백날 며칠이 흐른 그 곳에서 또다시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또 다가올 하루가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쌓이고 있다.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차디찬 천장을 보며 잠을 청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어서 빨리 남은 실종자 분들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마지막이어라, 이번이 마지막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