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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
'라오퉁'이라는 의자매로 만난 니나와 소피아. 도입 부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소피아는 승용차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다. 그날 밤 간호사의 전화를 받은 니나는 비로소 소피아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있음을 알고 소피아에게 찾아가는데 그녀는 의식이 없다. 여기에서 소피아와 니나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시작되며, 설화가 쓴 소설의 배경인 19세기 후난 성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라오퉁' 백합과 설화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의자매인 '라오퉁'간의 우정과 사랑,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차분한 내러티브를 가지며 드라마는 진행된다.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 백합과 설화, 니나와 소피아. 그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엇갈린 운명에 대한 드라마가 차분히 흘러간다.
▲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 백합과 설화, 니나와 소피아. 그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엇갈린 운명에 대한 드라마가 차분히 흘러간다.
ⓒ 폭스서치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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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중매쟁이의 소개로 '전족'을 한 채 '라오퉁(의자매)'이 된 부잣집 딸 설화와 서민계급에서 태어난 백합. 설화는 백합이 부잣집으로 시집 가며 떨어져 살게 되자 그들만의 문자인 '누슈'를 부채에 편지처럼 사용하여 서로의 우정을 쌓아간다. 이어 설화도 시집을 가게 되는데, 아버지의 아편 중독으로 인해 망해버린 집안이 된 운명처럼 그녀는 푸줏간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뒤바뀐 가정의 운명과 이를 대처해 나가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면을 보여주는 두 여인.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리빙빙과 전지현,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휴 잭맨의 연기력으로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이 영화를 보고자 한다면 자극적이고 액션신이 가득한 오락 영화의 개념을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보기를 권장한다.

그러다 문득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중국의 전통 관습인 '전족'이었다. '전족'은 그 역사가 깊고, 여성들의 신체에 행해지는 비인간적 행위이다.

전족이란 '발을 얽어맨다' 혹은 '발을 조여 댄다'라는 뜻인데, 기원은 중국 송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떤 이는 수나라나 당나라 때 혹은 상나라 때까지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상나라 주왕의 왕비가 휘어지고 못생긴 발을 가졌는데, 나라에서는 황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모두 왕비의 발처럼 되어야 아름답고 정숙한 귀족 여성이 될 수 있다고 하여 모두 전족을 하라는 칙령을 반포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하나의 설일 뿐이다.

송나라 때가 기원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당시는 거란과 여진족 등 이민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는 혼란기여서 자국의 여성들이 끌려가지 않게 혹은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방편으로 전족을 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보편적인 전족이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진 것은 960년대 남당의 황제 후주 이욱의 조정에서란 얘기가 있다. 후주는 6척 높이의 온갖 보화로 장식한 금련(金蓮)을 만들어 후궁이었던 요랑에게 비단으로 발을 감아 매고 그 안에서 춤을 추게 했단다. 이때의 풍경이 인상적이어서 당시의 후궁과 무희들이 다투어 이를 모방하여 전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들로 하여금 남자들을 위한 유희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족을 한 여성들은 걷기 위해 허리나 엉덩이, 골반근육 등이 활성화되어야 했다. 이는 기방의 환락을 추구하는 남정네들의 동물적 본능으로서의 역할에 그만이었다고 한다니, 조선의 여인들도 평생 남자들에게 차별을 강요당하고 살아왔지만 중국 여인들 역시 더하면 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전족은 송대 이후 시대가 흐르며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기 위한 조건으로 더욱 만연하게 된다. 전족을 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걷는 것이 힘드니 부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집안 살림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으니 좋은 가문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아름다운 전족의 조건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비', '연', '수'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비는 지방이 있어서 윤기가 흐를 것, 연은 부드러워서 살집이 좋을 것, 수는 모양이 아름다울 것을 뜻하는 것이다.

전족 풍습은 19세기 후반 황실 차원에서 금지했지만 민간에서는 20세기 초까지도 계속되었다. 보통 여아가 5세 정도 되면 천으로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4개의 발가락을 발바닥에 딱 붙도록 칭칭 감는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발가락뼈가 휘어지고 발등 뼈가 위로 튀어 올라와 흡사 말발굽 같은 모양이 되어 버린다. 이로 인해 발의 크기는 작지만 성장하며 뼈와 피부가 기형적으로 굳어져 이 부작용으로 전족을 한 여성 중 1/10 정도는 조기 사망했다고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미인 양귀비도 전족을 하여 발의 길이가 10센티미터 정도였다고 하는데, 실제 전족을 한 여인들의 신발을 보면 마치 6~7세 아이들의 신발처럼 아주 작다. 이 기형적 발에 작은 꽃신을 신고 몸종의 부축을 받으며 뒤뚱 뒤뚱 걷는 모습이 당시 중국 남자들이 여성을 대하는 취향이었다니 지금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미에 대한 개념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항상 상대적으로 변해왔다. 여성의 가슴이나 둔부 혹은 얼굴이나 코, 심지어는 코뚜레까지 그 대상이 되었다. 전족도 그 하나의 관습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까?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런 '미'의 충족감은 우선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발생된 개념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층 혹은 남성중심주의 문화가 피지배계층인 여성에게도 심겨지게 되어 수많은 여성들이 어려서부터 잔인한 '미의 충족'을 위해 희생되었음을 자인해야 한다.

검정 스타킹과 하이힐이 유럽에서 시작된 것도 여성의 섹슈얼리즘을 강조하여 남성들의 시각적 만족을 위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짧은 치마에 종아리와 허벅지가 훤히 보이는 검정색 망사 스타킹과 여성의 가슴과 둔부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하이힐은 시대가 흐르면서 이제 현대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에게 필수품이 되었다.

목걸이나 귀걸이, 팔찌 등도 과거 노예들에게 씌우던 올무였는데 이제는 부의 상징 및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 조건이 되었다. 남성들이 착용하는 넥타이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고 저린 다리와 발목, 발을 주무르고 무겁게 목과 귀를 짓누르던 목걸이와 귀걸이를 화장대에 내려놓을 때,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단추를 풀 때 우리는 해방감을 느끼지 않는가?

이게 과연 사람의 발인가? 아마 이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괴물'이라고 떠들어 댈 것이다. 누가 이 '괴물'을 만들어 냈는지 진정 괴물이 누구인지 참 씁쓸하다. '작은 발이 아름답다'라는 '미의 개념'이 만들어 낸 기형적 관습은 이제 사라졌지만, 이 세상에는 아직도 '명예살인', '여성 할례' 등의 지배층과 권력자 혹은 침묵하는 다수가 만들어낸 비인간적 관습이 버젓이 문화라는 미명하에 시행되고 있음에 통곡할 수 밖에 없다.


#전족#설화와 비밀의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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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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