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3년 6월까지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
충남의 한 초등학교 비정규직 돌봄교사들은 월·수·금 3일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을 일한다. 나머지 2일은 2시간 50분 근무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출근 시간이 평소보다 10분 늦은 오후 2시 10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업을 준비하거나 뒷정리하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매일 3시간 이상을 근무한다. 어찌됐든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이들의 주중 근무시간은 14시간 40분이다.
하루 3시간씩 주 15시간을 일하면 임금을 계산하기도 편하다. 한 달을 4주로 계산하면 한 달에 60시간으로 딱 떨어진다. 하지만 주당 14시간 40분을 근무하게 되면 58시간 40분을 근무하게 돼 급여 계산이 다소 복잡해진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근로계약은 '한 시간 단위'로 이뤄진다. 그럼 이 학교가 돌봄교사의 출근을 10분씩 늦춘 이유는 무엇일까?
근로기준법상 주중 15시간 이상을 근무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고, 2년 동안 근무한 후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러니까 주중 이틀 동안 출근시간을 10분 늦춰 근무시간이 15시간이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무기계약 전환도 하지 않기 위한 '꼼수'인 것이다. 또 주중 근무시간이 15시간이 넘지 못하면 이들의 연가나 병가 등 휴가 역시 보장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난 3월 29일 국회에서는 전국의 돌봄교실 실태와 관련한 증언대회가 열렸다. 돌봄교실은 맞벌이 부부가 귀가하기까지 학교를 마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학교에서 맡아주는 제도다. 여기서 일하는 돌봄교사는 거의 다 비정규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돌봄교실의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됐지만, 그중 가장 이목을 끈 것은 '10분 단위' 근로계약이다.
주중 근무 15시간을 넘기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했다. 앞선 사례처럼 일주일에 이틀 동안 근무시간을 10분 늦추거나 아니면 퇴근시간을 10분 앞당기는 사례도 있었다. 아예 주 5일 동안 출근이나 퇴근 시간을 10분씩 변경하는 방식으로 주 15시간 근무를 피해가기도 했다. 이런 기준은 돌봄교사뿐 아니라 초단시간 근무를 하는 각종 직군에 모두 적용되는 것으로 2013년 통계청에 따르면 약 49만 명이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근거 불명확하다면, 사회적 보호 박탈하는 중대한 차별"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5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근무여건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초단시간노동자보호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은 간단하다. 기존에 법안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각종 항목에 예외 조항으로 들어가 있는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라는 항목들을 삭제하면 된다. 근로기준법상 휴일과 퇴직금 항목, 기간제법 상 정규직화 항목이 여기에 해당한다.
초단시간노동자들에게 퇴직금과 유급휴가 등을 배제한 입법은 지난 1997년 시행된 근로기준법에서 처음 도입됐다. 우 의원실에 따르면 당시 초단시간노동자들을 배제한 취지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이 당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취지는 '통상의 근로자에 비해 짧은 시간을 근로하는 단시간 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근로조건은 동종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 근로자의 근로시간에 비례하여 결정하도록 한다'라고 설명돼 있다.
즉 주 40시간을 근무하는 통상 근로자보다 적게 일하는 근로자의 경우 퇴직금이나 휴가를 계산할 때 근로시간에 비례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안 취지대로 해석할 경우, 주 40시간 근무자가 연가를 16일 쓸 수 있다면, 주 30시간을 근무를 하는 단시간 근로자는 근무시간에 비례해 3/4인 9일의 연가를 쓸 수 있다. 이러한 '비례적 보호'가 15시간 이하 근무를 하는 초단시간노동자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게 우 의원의 주장이다.
우 의원이 추진하는 구체적인 법안은 초단시간 노동자를 유급휴일 부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문구를 삭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퇴직금과 실업급여 지급을 담은 퇴직급여보장법,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이다. 국회 처리 가능성도 매우 높다. 초단시간노동자를 예외조항으로 두는 것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소지가 있고, 딱히 15시간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처우를 나눌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적용제외 근거가 불명확하다면 단시간근로자의 사회적 보호를 박탈하는 중대한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라며 "특히 최근 전문직 분야와 생업 목적의 단시간근로자가 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현행법상 주당 근로시간의 범위를 기준으로 노동 관계법이나 사회보험법령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법안 통과시, 하루 3시간 알바도 퇴직금·유급휴일 보장 가능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하루 평균 3시간 안팎의 짧은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퇴직금과 유급휴일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 정책'에도 부합한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목표로 제시한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우 의원은 이러한 입법 활동과 관련해 "근로자들에게 휴식과 휴가는 근로와 생활을 병행하게 해주는 중요한 권리인데 남들보다 적게 일한다고 그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도 없는 일"이라며 "초단시간근로자 권리보장 3법을 통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초단시간근로를 선택하는 이들에게도 적정한 휴식을 보장하고 일정 기간 이상 일할 경우 퇴직금과 정규직 전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우 의원은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단지 적게 일한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돌볼 수 있겠는가"라며 "많은 청년들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초단시간근로자로서 생계를 꾸려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에게도 적정한 휴식과 퇴직금, 고용보험 등을 보장한다면 고용불안 없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