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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윤종신의 '환생'이라는 노래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생산되는 신랑과 신부, 그런 결혼식 말고, 뭐 좀 기억에 남을 만한 결혼식 없을까? 그렇게 준비한 한 시간 반짜리 주례 없는 결혼식은 신랑의 자축 노래인 '환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예언처럼 그 신랑은 다시 태어나게 된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노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결혼 전 나의 경제개념이란 확고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있으면 쓰고, 없으면 못 쓴다'였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놈이 얼마나 호사와 사치를 누렸겠느냐마는, 전문직 총각의 통장은 쌓이기는 커녕 줄줄 새나가기만 했다. 엄청난 빚을 가지고도 저축이나 적금보다 술값이 우선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총각이 돈을 모은다는 건, 처녀가 애 가진 것보다 더 놀랄 일이다.

가진 건 빚밖에 없던 나, 어떻게 결혼을 했냐 하면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던 시절, 가진 거라곤 솔직함밖에 없던 나는 그녀에게 어렵게 고백했다. "사실은, 내가 빚이 좀 많아." 맨손으로 시작해서, 한 차례 개원에 실패했고, 그러다보니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입이 떡 벌어질 빚을 진 상태였다. 차마 그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구체적인 액수까지 말했지만, 이미 나에게 눈이 멀어 있던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아니, 그래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는 농담하는 줄 알았단다.

아내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현실에 눈을 뜬 건 결혼식 준비가 한창일 때였다. 앞으로 모든 경제권을 당신에게 일임하겠소, 라며 주저 없이 모든 통장을 건넸고, 인수인계 직후 그녀는 경악했다. 일반 통장 개수보다 대출 통장 개수가 훨씬 많았으며, 통장 개수의 문제가 아닌 액수의 문제를 확인하고는 뒷덜미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내 앞으로 대출 금액이 한도가 꽉 차서, 당신 이름으로 대출 받아서 전셋집을 구해야겠다, 라는 '타짜'에나 나올 법한 멘트를 연거푸 그 자리에서 날리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참 모진 놈이다. 의도한 바는 절대 아니었으나, 그땐 이미 웨딩 촬영을 마치고, 청첩장을 뿌린 후였다. 혹자는 '사기 결혼' 운운하겠지만, 10년을 친하게 지낸 학교 후배한테 사기 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사실, 양쪽 집안 형편이 뻔 한터라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결혼하자는 대전제에 동의한 후였다. 같이 집 마련하고, 같이 혼수 장만하고, 그렇게 평등하고 아기자기하게 출발하자, 라는 사탕발림에 아내가 넘어온 것은 일부 인정한다. 하지만, 그 현상의 본질은 위대한 사랑의 힘이라고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물론, 아내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다. 잘 나간다는 전문직 둘이 만나 전월세로 시작한 신혼집에 혼수라고는 TV, 세탁기, 냉장고, 침대가 끝이었다. 소파는 누가 버린다기에 얼른 주워왔고, 나머지 생활용품은 각자 자취 생활 때에 쓰던 것들로 채워넣었다. 물론 그런 것들은 서막에 불과했다.

결혼 후 바뀐 나의 소비 패턴. 우선 카드 값이 1/5쯤 줄어들었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긁게 되는 카드는 혹독한 사후 검열을 받는다. 1주일 용돈으로 5만 원이 책정되었다. 아내의 철저한 계산 하에 용돈은 토요일에 지급되는데, 주말에 가족들에게 쓰고 나면 주중에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 웬만한 식사는 주로 집에서 해결한다. 집에서 먹는 밥만큼 건강과 경제를 살찌우는 것도 없다. 도시락은 필수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전셋집을 세 번 옮겼고, 결국 올 봄에 융자를 끼긴 했지만 집을 구입했다(층간 소음 때문에 반 억지로 사긴 했지만). 빚도 어느 정도는 갚아나가고 있을 거라 믿는다. 내 손을 떠난 대출통장은 이미 관심 밖의 일이다. 나는 인터넷 뱅킹도 할 줄 모른다. 결혼 후 내 손으로 현금을 인출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 둘을 낳고, 키우고, 조금씩 살림을 키우며, 빚까지 갚아가는 철인 같은 아내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처갓집 말뚝보고 절한다더니, 옛말 중에 틀린 말 없다. 절약과 인색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며, 검소와 구두쇠의 차이는 딱 한 끗이다. 아내는 그 경계를 줄타기할 줄 아는 숨은 고수였던 것이다.

아내의 비책을 공개합니다

인터넷 쇼핑의 마법 판매가의 4분의 1도 안되는 가격으로 등산화를 구입해주는 아내의 탁월한 능력
인터넷 쇼핑의 마법판매가의 4분의 1도 안되는 가격으로 등산화를 구입해주는 아내의 탁월한 능력 ⓒ 이정혁

그럼, 지금부터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아내의 비책 몇 가지를 공개한다. 그 첫 번째, 아내는 인터넷 쇼핑의 달인이다. 쇼핑 사이트를 종횡무진 누비며 최저가와 할인 쿠폰을 집중 공략한다. 결혼 후 이때껏 내손으로 옷가지 등을 사본 적이 없다. 지나가는 말로, 뭐가 좀 낡았네 하면 며칠 후에 귀신같이 경비실에서 연락이 온다. 택배를 찾아와 보면 그 속에는 내가 말한 물품들이 들어있다. 물론 판매가의 반의 반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얼마 전, 겨울 산에 다녀와서 등산화가 하나 있으면 산에 더 자주 갈 텐데, 라고 했더니 며칠 만에 등산화가 도착했다. 가격표에는 22만 원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5만 원 이하로 구입했다고 한다. 아내의 옷들도 마찬가지다. 적당해 보이면 만 원, 좀 좋아 보이면 영락없이 2만 원짜리다. 퇴근하고 아내가 괜히 기분 좋아 보이는 날은 소위 '득템', 즉, 인터넷에서 싸고 좋은 물건을 구매한 날이다. 아내에게는 그런 날이 생일보다 더 기쁜 것이다.

아빠 옷을 입은 듯한 큰 아들 우리 어렸을적에 바지를 세번쯤 접어 입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아내는 아이들 옷은 두 치수쯤 큰 옷을 산다.
아빠 옷을 입은 듯한 큰 아들우리 어렸을적에 바지를 세번쯤 접어 입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아내는 아이들 옷은 두 치수쯤 큰 옷을 산다. ⓒ 이정혁

두 번째, 어지간하면 버리지 않는다. 며칠 전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고, 내복을 꺼내 입는다길래 얼핏 봤다가 눈을 의심했다. 큰 아이 임신했을 때 입었던 다 늘어난 내복을 주섬주섬 입고 있는 거 아닌가? 그것 좀 버리라고 했다가, 떨어진 데도 없는데 왜 버리냐고 한 소리 들었다. 그런 식이다. 아내의 옷들 중 상당수는 연애할 때도 아닌 대학교 때 입던 옷들이다. 10년은 기본인 그녀에게 내수 활성화는 먼 나라 얘기다.

세 번째, 내가 다 쓴 걸 그녀는 또 쓴다. 치약을 칫솔 끝으로 박박 문대 쓰는 건 기본이요, 다 쓴 샴푸나 바디용품통에 물을 부어서 한 스무 번쯤 펌프질해야, 한 번 쓸 수 있게 만들어 놓는다. 머리에 물 묻혀 놓고 빈 샴푸통에 대고 펌프질을 하다 보면 가끔씩 성질이 날 때도 있다. 그럴 땐 조용히 대출 통장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데...

네번째, 음식량을 귀신같이 조절한다. 집에서 해먹든지 가끔 나가서 사먹든지 정확히 먹을 만큼만 만들고 시킨다. 어릴적 젖배를 곯아 늘 식탐을 하는 나와 가치관이 달라 부딪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초지일관이다. 엄마(시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쟤는 무슨 음식을 자로 재고 저울 달아서 하는 애 같어."

아내가 가지고 있는 그녀만의 검약 스타일이 더 존재하지만, 지면 관계상 그리고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이만 줄이기로 한다. 그녀 덕분에 두 아들과 여유롭게 살고 있는 내가 그녀의 눈 밖에 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쥐어짜기만 하는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지난 대선 후에 열악한 지역 언론을 개탄하며 인터넷 신문사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사무실 임대 등 초기경비가 필요해 끙끙대고 있자, 아내가 천만 원을 쥐어주며 한마디했다. "이게 마지막이다. 망하지만 말아."

물론, 망했다. 그 돈은 불과 몇 달 만에 고스란히 까먹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내의 시선을 피해야 했고, 집안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그녀에게 말할 수 있다. 앞으로 애먼 짓 안하겠다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한다.

"여보, 당신은 짠순이가 아니야, 다만 조금 찰 진 여자일 뿐이야,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사랑해!"

덧붙이는 글 | '짠돌이라 부르지 마' 응모글입니다



#사기결혼#윤종신 환생#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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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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