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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20년, 경계인의 삶 ①]

※본 기사는 외국인 노동자 P(39·필리핀) 씨의 하루를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一日)> 형식을 빌려 재구성한 글입니다.... 기자 주

행복을 찾아서

지하철이 들어선다. 사람들은 내리고 또 탄다. '미스터 봉(필리핀 이주노동자 P씨의 별명)'은 잠깐 멍하니 그곳에 서 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이들이 모두 열차에 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혼자 그곳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외로움과 애달픔을 느낀다. 봉은 스크린도어가 닫히기 전에 열차로 뛰어오른다.

열차 안에서 봉은 자리에 찾지 못한다. 앉을 좌석은 여럿 있지만, 사람들의 눈초리에 이내 포기한다. 살이 닿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봉은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봉은 애당초 성당에 갈 계획으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그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길역에서 출발한 1호선 열차는 용산을 지나 종로 5가에서 정차한다. 봉은 평소처럼 종로 08번 버스에 몸을 싣는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교통카드를 찾아보지만 잡히지 않는다. 버스 기사와 승객들의 차가운 시선에 쫓겨 지갑 속 따뜻한 지폐를 꺼내 넣는다. 거스름돈 100원을 챙긴다. 손바닥 위의 동전을 본다. 100이라는 숫자 위 1995가 보인다. 내년이면 한국 생활 20년째다. 언제쯤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에 잠긴 사이, 버스는 혜화로터리에 도착한다.

여기는 리틀마닐라 일요일 헤화로터리는 리틀마닐라로 변한다.
여기는 리틀마닐라일요일 헤화로터리는 리틀마닐라로 변한다. ⓒ 노유리

리틀마닐라는 지금 '리틀'마닐라

버스에서 내려 성당으로 가는 길, 활기찬 타갈로그어 소리가 들린다. 필리핀에 온 건 아닌지 봉은 잠시 착각을 느낀다. 일요일 대학로 일대는 필리핀 시장으로 변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는 '리틀마닐라'다. 상인들이 파는 물건은 정육, 생선, 전화카드까지 다양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리는 필리핀 사람들로 붐빈다. 특유의 고향 냄새가 봉의 시선을 잡아끈다. 봉은 상인에게 바나나 큐(구운 바나나) 가격을 묻는다. 2000원, 고국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고향 음식에 가격은 중요치 않다. 2000원의 행복을 가슴에 품고서 봉은 다시 성당을 향해 걷는다.

성당 입구에 도착한 봉이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는 이내 뒤돌아 점포 수를 세어보기 시작한다. 1개, 2개, 3개…, 15개. 또 하나가 줄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혜화역까지 이어졌던 장터는 위기를 맞고 있었다. 1주일에 단 한 번, 모국어로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는 곳에 '불법'이란 딱지가 붙었다.

'도로교통법', '식품위생법', 한때는 법대생이었던 봉이 리틀마닐라가 위반하고 있는 법을 되뇐다. 그렇다. 법은 정확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리틀마닐라, 그것은 필리핀 사람들의 유일한 안식처임이 확실하다, 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봉은 두통을 느낀다. 리틀마닐라는 그 이름처럼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다른 사연, 같은 마음

마침내 봉은 성당에 들어선다. 문을 열자 수많은 뒷모습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기가 여간 쉽지 않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 그곳엔 2000명이 넘는 동포들이 경건한 자세로 앉아있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으리라 봉은 생각했다. 성당 안, 타갈로그어 미사가 울려 퍼진다. 이윽고 타지에서의 낯선 삶들이 기도를 통해 서로에게 전달된다.

예배당 입구 예배당 문밖까지 늘어선 기도 행렬
예배당 입구예배당 문밖까지 늘어선 기도 행렬 ⓒ 노유리

봉은 한구석에 서서, 앞에 앉아있는 20대 필리핀 청년을 본다. 몽롱한 청년의 눈빛에서 잔업에 시달렸던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다. 대전 자동차 공장에서 일할 당시 봉은 거절을 모르는 청년이었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했고,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었다. 봉은 청년의 사연이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그의 예배시간을 깨고 싶진 않다.

예배가 끝난 후 봉은 계단을 오른다. 계단 끝에 앉아 필리핀 과자를 먹고 있는 남매가 보인다. 한국어로 인사를 나눈 후, 2층 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혜화동 성당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째다.

'불법 사람'에게 봉은 아버지나 다름없다. 병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그들을 위해 봉은 모금활동을 벌였다. 그들이 사장과의 마찰로 괴로워할 때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다른 한편 봉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어머니다. 봉은 고국으로 돌아간 두 딸을 그리며, 아이들에게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봉은 대가 없는 사랑을 주었고,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따랐다.

로터리 사람들

성당을 나온 봉은 다시 발길을 옮긴다. 어느 틈엔가 우리은행 앞까지 왔다. 한 달치 임금을 송금하려는 필리핀 사람들이 은행 앞에 줄지어 있다. 송금은 곧 연결이다. 봉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자 현금지급기 버튼을 누르는 수많은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은행 현금지급기 일요일 현급지급기 앞은 필리핀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은행 현금지급기일요일 현급지급기 앞은 필리핀 사람들로 가득하다. ⓒ 노유리

송금을 마친 봉은 여전히 은행 앞을 기웃거린다. 벗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온다. 행여 지나가는 벗을 놓칠까 봐 주변을 둘러본다. 일요일 로터리는 사람을 찾는 이들로 넘쳐난다.

마침내 벗이 왔다. 길 건너편 오랜 벗이 봉을 발견하곤 신호등을 건넌다. 반가운 마음에 봉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누구든 좋았다. 벗과, 벗과 같이 있을 때, 봉은 얼마쯤 명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주 해고 통지를 받았다는 벗은 표정이 밝지 않다.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봉은 구부러진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린다.

해가 지고 있다. 로터리에 서서 길게 이야기하기엔 날이 추웠다. 언젠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돌아가야 하리라. 벗은 같은 말을 되뇌며 자리를 뜬다. 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월요일 아침이 밝으면 필리핀 사람들은 일터로 돌아간다. 혜화로터리는 다시 한국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정다운 이웃과 그리운 사람들,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며 오늘도 빙그르르 손잡고 돌아간다.'

은행 앞 비석에 적힌 시를 읽으며 봉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혜화동 로터리 혜화동 로터리는 사시사철 꿈을 싣고 돌아가는 회전 목마
혜화동 로터리혜화동 로터리는 사시사철 꿈을 싣고 돌아가는 회전 목마 ⓒ 노유리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리틀마닐라#혜화동 성당#혜화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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