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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0년이 훨씬 지났다. 지난 2004년 진보적 학자들과 스웨덴에 간 적이 있다. 복지국가에 대해 밤샘토론도 있었다. 세금도 중요한 이슈였다. 어느 날 현지에 있던 한 기업의 유럽법인장을 만났다. 스웨덴의 높은 세금(법인세도 마찬가지)에도 기업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세금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의 말이다.

"어느 날 스웨덴 국세청에서 (제게)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세금 안 낸 게 있나' 하고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제가 여기서 일하면서 유럽 각 나라를 다니는데, 비행기를 타잖아요. 그러면 마일리지가 쌓이는데, 그것을 제대로 신고 안 했다는 거예요. 마일리지도 소득의 한 부분으로 보는 거죠. 마일리지 쌓은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의 허탈한 웃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듯했다. 스웨덴의 한 대학생은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면서 꾸준히 소득세를 내고 있다고 했다. 세금을 내는지 물어보는 우리 일행이 오히려 겸연쩍었던 기억이다. 높은 세금에도 국민들은 별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는다. 교육과 의료·연금 등으로 그들의 세금이 투명하게 쓰이고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쟁이 불편한 이유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사진은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에서 출력한 자료들.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사진은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에서 출력한 자료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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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쟁은 불편하다. 오히려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세법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역풍이 만만치 않다. 직장인들의 조세 저항이 생각보다 크다. '저항'에는 불신이 깔려있다. 아예 어느 시민단체는 이런 '저항'을 부추긴다.

잠깐 따져보자. 이번 연말정산의 핵심은 계산 방법자체가 바뀐 것이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었다고들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소득공제 천국이었다. 웬만하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모든 비용을 소득에서 빼준다. 그것도 절대치 금액으로 삭감해줬다. 기본 근로소득공제에 부양가족, 의료비, 교육비 등 각종 비용을 몇백만 원씩 소득에서 빼줬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이 때문에 전체 근로소득의 약 60%가 과세가 되는 소득에서 빠지고, 40%에 대해서만 소득세율이 적용돼왔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연봉 3000만 원의 근로소득에 대해 40%인 1200만 원에 대해서만 소득세를 매겨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럴 경우 고소득자들은 그만큼 자신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세금도 덜 내게 된다. 반면 저소득층이나 중간층도 과세 소득이 줄어들긴 마찬가지지만, 소득세율 자체가 낮다 보니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그동안 '13월의 월급'이라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자들에게만 적용돼왔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세액공제였다. 세액공제는 소득에서 절대치 금액을 빼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비율의 세금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세액공제 10만 원이라면, 직장인 소득이 10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세금 절감액수는 10만 원이다. 이럴 경우 고소득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과세 소득이 높게 유지된다. 때문에 예전보다 세금 부담이 커지게 된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무소신... 화를 키웠다

연말정산 관련 '13월의 세금폭탄'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브리핑실을 떠나고 있다.
▲ 최경환 부총리 '연말정산' 긴급 회견 연말정산 관련 '13월의 세금폭탄'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브리핑실을 떠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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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이번 연말정산은 '고소득층 증세'라는 표현이 맞다. 또 이를 통해 그동안 조세 전문가나 관련 학자들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해온 '소득 재분배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는 진보나 보수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쟁이 커졌다. 이들은 고소득층보다 중산층, 일부 다자녀 가구와 독신 가구 등의 예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실제로 자녀 출산과 양육, 다자녀 가구에 대한 소득공제가 폐지되면서 이들 직장인들의 세금부담이 커졌다. 게다가 기본적인 공제 혜택이 별로 없었던 독신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정부가 사실상 독신세(Single tax)를 매긴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세 가지 가구 유형에서 논쟁이 특히 심하다"라면서 "4000만 원 초과 소득자 중 자녀출생 가구와 다자녀 가구, 3000만 원 안팎의 독신가구 등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연말정산 변화 내용을 국민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라면서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가 뒤늦게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모습이 국민들의 불신만 키웠다"라고 지적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0일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일부 보완책을 찾겠다고 했다. 바로 전날(19일) 세종시에서 국세청 전국관서장회의에 앞서 이번 연말정산의 의미를 역설하던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직장인의 조세 저항이 자칫 정권의 부담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위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답답하긴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여당을 공격하고 있다. 복지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부자증세'를 말할 정도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세법 개정안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일부 보완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젠 증세를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일부 대기업에 사실상 특혜가 돼버린 법인세도 고쳐야 한다. 그리고 복지를 말해야 한다. 차라리 지금이 기회다.


태그:#연말정산, #증세, #최경환, #세금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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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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