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 함양군 개표 과정에서, 한 검열 위원이 자리를 비운 다른 위원의 도장을 대신 찍는 장면이 함양선거관리위원회(아래 함양선관위)가 최근 공개한 영상으로 확인됐다.
기자는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심판을 거쳐 전국 20여 곳 선관위 대선 개표 영상을 지난주 확보해 이완규 시민기자와 공유했다. 그는 함양의 개표영상을 살펴보다가 자리를 비운 검열위원의 도장을 다른 위원들이 계속 번갈아 대리 날인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영상에는 한 위원이 남의 것까지 모두 세 개의 도장을 찍는 모습도 담겨 있다. 위원 한 사람은 개회 선언 이후 줄곧 자리를 비운 채 나타나지 않는다.
중앙선관위 "선관위 공정성 의심 받아 마음 아프다"
그럼에도 함양의 모든 대선 개표상황표에는 8명 위원의 도장이 모두 날인돼 있다.
공직선거 개표의 진행 절차에 의하면 검열위원들은 투표지 바구니와 개표상황표를 심사집계부에서 넘겨받는다. 후보자별 득표수와 무효표, 혼표 등을 검열(검사하여 열람)한 뒤 이상이 없으면 개표상황표에 '서명 또는 날인'한다. 곧이어 선관위 위원장이 투표지와 개표상황표 등을 마지막으로 검열하고 후보자별 득표수 결과를 최종 공표하면 개표 결과가 확정된다.
검열위원은 위원장까지 모두 8명으로 구성되며, 그 중 2명은 각 정당 추천위원이다. 나머지는 해당 선관위가 위촉한 민간위원들이다. 위원들이 개표결과의 이상 유무를 검열한 뒤 개표상황표에 서명 및 날인하면 위원장의 최종 공표만 남는다. 그만큼 이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개표 결과가 확정돼 법률적 효력이 발생하기 바로 전단계인데다, 개표의 공정성을 위한 민간위원들의 검열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양의 대선 개표과정에서 한 위원이 대리 날인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함양선관위의 개표관리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말았다. 중앙선관위 선거과 관계자는 이 사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리 날인을 해선 안 되지만, 일부 대리 날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투표구의 개표결과가 무효가 되진 않을 것"이라며 "관련 판례가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관계자는 이어 "선관위 위원이 대리 날인을 하거나 맡은 검열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선관위의 공정성이 의심받게 돼 마음 아프다"면서 "위원들이 보다 실효성 있는 역할을 하도록 현재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고 밝혔다.
한편 현행 형법 제21장 인장에 관한 죄 239조(사인 등의 위조, 부정사용)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행사할 목적으로 타인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