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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sns 프로필 사진.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sns 프로필 사진. ⓒ 화면캡처

지난 1일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홍보차 내한한 세계적인 '마초가이'의 대명사 아놀드 슈왈제네거. 앞서 그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에 맞춰 터미네이터 캐릭터인 자신의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을 무지개 색으로 바꿨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상징하는 '레인보우'색으로 SNS 프로필 사진을 변경하는 움직임은 지금 전세계적으로 유행 중이며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뜻한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어느 팬이 "무슨 일인가요, 아놀드. 나는 싫어요"를 누르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고, 이에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쿨'하게도 "잘 가라"란 뜻의 "Hasta la vista"란 답글을 달았다. 성소수자 혐오에 한 방을 먹인 것이다. 

이 '아스타라 비스타'(Hasta la vista)는 스페인식 작별인사로, 그가 <터미네이터2>에서 전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명대사이다.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이기도 했던 그는 최근 미 LA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서 동성결혼 합헌 결정에 대해 "옳은 결정이 내려져 기쁘다"며 "캘리포니아는 이미 오래 전 동성결혼을 허가한 바 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오늘은 평등을 향한 우리의 큰 발걸음입니다.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게이와 레즈비언이 이제 결혼할 권리를 갖게 됐습니다."(Today is a big step in our march toward equality. Gay and lesbian couples now have the right to marry, just like anyone else)

같은 사안에 대해 오바마 미 대통령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오바마 대통령은 원고에게 직접 축하 전화를 걸고, 백악관의 조명을 무지개 색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가 올린 위 트위터 글은 현재까지 46만 여명이 리트윗했다.

"오늘은 평등과 인내, 사랑의 승리의 날"이라던 동성애자 팀 쿡 애플 CEO의 말도 회자됐다. 동의하든 아니든, 미국은 물론 전세계인들이 최근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게이바 마담과 스트리퍼 빠진 한국판 <심야식당>

 SBS <심야식당> 출연진과 제작진
SBS <심야식당> 출연진과 제작진 ⓒ sbs

그 관심이 한국에서만큼은 여전히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무시 못할 영향력을 지니는 브라운관에서 성소수자는 여전히 금기의 대상일 뿐이다. 특히 TV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를 표방하는 캐릭터는 예나 지금이나 제재를 받거나 배제당한다. 그도 아니면 희화화되거나 왜곡되거나. 

SBS에서 4일 방영을 시작하는 드라마 <심야식당>이 방영 전 SNS를 통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바로 이 성소수자 캐릭터 때문인데, <심야식당>이 유명 일본 만화와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마니아들을 보유하고 있기에 문제가 더 불거지고 있다. 심지어 <심야식당>은 현재 영화판이 인기리에 극장 개봉 중이기까지 하다.

발단은 2일 열린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나온 제작진의 일부 발언이었다. 주요 캐릭터인 '게이바 마담' 코스즈 캐릭터를 뺀 것에 대해 제작진은 입을 모아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한국적 상황을 고려했다"고 밝히고 있다.

황인뢰 PD는 "한국적 색깔에 맞게 각색"하기 위해 "일본 원작 중 게이바 마담이 있는데 우리 드라마에선 과감히 빼버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웅 작가 역시 "얼마 전에 성소수자 관련 축제도 열리긴 했지만, 아직까진 성소수자를 이야기하는 일은 드물다는 한국적인 상황을 고려해 변화를 뒀다"고 말했다. '게이바 마담'과 함께 TV시리즈와 극장판에도 등장하는 '스트리퍼' 마릴린 캐릭터 역시 한국판에서는 볼 수 없다.

'원작을 어떻게 변형하는가'는 제작진과 시청자 더 나아가 한국사회가, 해외 원작이 보여준 예술성과 가치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와 연결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판 <심야식당>의 제작진은 이미 원작의 정수를 놓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우울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원작 속 소수자들의 연대, 왜 중요할까 

 영화 <심야식당>의 한 장면. 가운데 보이는 두 사람이 스트리퍼와 게이 캐릭터다.
영화 <심야식당>의 한 장면. 가운데 보이는 두 사람이 스트리퍼와 게이 캐릭터다. ⓒ 영화사 진진

아베 야로 원작의 만화 <심야식당>은 2007년 일본 만화잡지 '빅코믹 오리지널'을 시작으로 9년여 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240만 부, 국내에서만 43만 부가 팔리며 대중의 인기를 받았고, TV로, 뮤지컬로, 영화로 장르를 옮기는 동안 국내에서도 동명의 작품들이 줄지어 선보이기도 했다.

"과거를 알 수 없는 주인 '마스터'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작은 술집을 배경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심야식당>의 일본판에 등장하는 스트리퍼, 깡패, 게이 손님들은 단순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아니다.

이를 두고 아베 야로 작가는 "<심야식당>에 나오는 사람들은 보통 만화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히려 주인공이 아닌 삶을 살아가기에 더욱 특별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삶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이 아니기에 더욱 특별하게 조명하고픈 사람들. 이에 대해 최근 내한했던 '마스터' 역의 일본 중견배우 코바야시 카오루 역시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인생 이야기들이 일어나고 있는 영화이고, 이것이 진정한 드라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다채롭고 불가해한 인생사의 면면들이 소외되거나 중심에서 밀려난 소수자나 타자, 소외자의 입을 통해 서술되는 것이 <심야식당>의 기본 정서이자 세계관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적인 정서"나 "상황"을 들어 게이나 스트리퍼 캐릭터를 배제한 한국판 제작진의 선택은 판단 착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게이바 마담'을 '먹방신'인 뚱녀 캐릭터로 치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왜 <심야식당>이 유독 일본의 지방음식이나 지방민들의 사투리를 주요 소재로 삼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만큼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소외된 하층민, 소수자들,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 인생사를 20~30분의 짧은 드라마에 기막히게 담은 것이 바로 드라마 <심야식당>의 정수이다. 마스터가 귀를 기울이고 정성스레 음식을 해 주는 인물들의 면면이야말로 작품의 철학은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그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단순히 서민으로 번안하는 것은 작품 해석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게이와 스트리퍼 캐릭터를 배제한 것에 대해 원작 팬들의 원성이 자자한 이유다.

대중문화에서도, 시청광장에서도 배제되는 소수문화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의 키스신.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의 키스신. ⓒ jtbc

"여고생 간의 키스 장면을 방송해 논란이 되었던 <선암여고 탐정단>은 현시대의 청소년들이 고민하고 있는 성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자 했던 기획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면서 여고생 간의 키스 장면을 장시간 클로즈업해 방송한 것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제5호,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제1항을 위반했다."

지난 4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는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 대해 위와 같은 근거를 들어 경고 조치를 내렸다. 15세 관람가인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이 입맞춤하는 장면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법정제재를 의결한 것이다. 사실 이 제재가 더 문제적인 것은 방통심의위에 지속적으로 제기된 민원에 있다.

드라마든 다큐든, 동성애나 성소수자를 등장시키거나 언급한 방송 프로그램은 논란에 휩싸이기 일쑤다.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은 한동안 일부 시청자들의 항의로 도배되며 몸살을 앓는다. 마치, 누구의 힘이 더 센가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것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거센 항의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시선을 돌려 보자. 일주일 전인 6월 28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벌어진 일부 개신교인들의 반대 집회를 우리는 생생히 목도했고 또 기억하고 있다. 본 축제 행사보다 더 큰 음향으로 "동성애-에이즈"를 외치고 "주님"을 목 놓아 부르는 광기의 현장을 말이다. 축제 참가자들의 평화롭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달리 경직되고 험상궂기까지 했던 그들의 얼굴이 드러내는 두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유력 개신교가 세 확장의 어려움을 겪자 성소수자들을 볼모로 삼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중이다. 그를 위해 교단의 세 과시를 위해 퀴어문화축제를 필두로 하는 성소수자 문화나 이를 긍정하는 대중문화나 예술 작품, 단체에 공격을 퍼붓고 재제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이나 논란을 피해야 하는 방송사는 이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주류 문화에서의 배제가 도식화되고, 금기에 대한 도전은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원작 <심야식당>의 게이와 같은 캐릭터는 방송에서, 드라마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한국판 <심야식당> 논란은 그래서 단순한 캐릭터의 배제나 한국식 정서의 고려에서 그칠 수 없다. 불과 몇 해 만에, 퀴어문화축제가 사회적인 찬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심지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선택이 찬반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게이 캐릭터를 볼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에 무심해지고 주류 문화가 그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 시대의 공기와 맞닿아 있는 셈이다.

찬반에도 불구하고 분명 미국을 무지개 빛으로 물들게 했던 미 연방법원의 동성결혼 합헌결정이 부러운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 열리자 이를 반대하는 집회참가자들이 북을 치며 공연을 하고 있다.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 열리자 이를 반대하는 집회참가자들이 북을 치며 공연을 하고 있다. ⓒ 이희훈


○ 편집ㅣ홍현진 기자



#심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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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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