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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내 동성커플 최초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영화감독(왼쪽)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서대문구를 상대로 낸 '가족관계등록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 첫 심문기일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내 동성커플 최초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영화감독(왼쪽)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서대문구를 상대로 낸 '가족관계등록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 첫 심문기일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지난 6일 오후, 한 영화감독이 눈물을 흘렸다. 수많은 카메라와 지지자 그리고 청중 앞에서다. 그 뒤로 법원이, 그 앞에는 세상의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그는 "죽기 전에 우리 관계를 인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국내 동성커플 최초로 지난 2013년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감독이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출석했다. 두 사람은 서대문구를 상대로 '가족관계등록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을 했고, 이날은 첫 심문기일이었다. 앞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고, 2013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서대문구청은 민법상 '혼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국내 첫 동성결혼 소송은 두 사람이 이에 불복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의 동성결혼 소송은 시기상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지난 6월 28일엔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가 열려 찬반 논란이 팽팽했고, 그 이틀 전인 26일(미국 시각)에는 미국으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평들을 지지하는 전 세계인들은 무지개색으로 화답했다. 미 연방대법원의 결정문이야말로 동성애자와 비동성애자 모두 경청할 만하다.

"동성 커플의 희망은 비난 속에서 외롭게 살거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의 하나로부터 배제되는 게 아니라 법 앞에서의 평등한 존엄을 요구하는 것이다. 헌법은 그 권리를 이들에게 보장해야 한다."

동성 커플의 '법 앞에서의 평등한 존엄'

 영화 <마이 페어 웨딩>의 한 장면.
영화 <마이 페어 웨딩>의 한 장면. ⓒ 영화사진진

"어머니들, 숨어 계시지 마시고 앞으로 나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힘을 모아 우리 자녀들을 도와줍시다."

초로의 할머니가 청계천의 무대 위에 올랐다. 아니, 그냥 무대가 아닌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다. 2013년 9월 7일,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당연한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마이 페어 웨딩>. 두 사람은 뮤지컬도 하고, 합창도 하는 아주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때로는 싸우고 입장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둘만의 사랑을 단단하게 확인해 간다.

결혼 발표와 함께 종종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동성애자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한 이 결혼식의 과정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눈시울을 글썽이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장면은 바로 김조광수 감독의 어머니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때다. 더없이 큰 용기가 필요했을 성소수자 아들의 결혼식 무대에 선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도 그럴 것이, 그 바로 직전까지 일군의 기독교인들이 결혼식을 방해하기 위해 오물을 투척하고 난동을 부리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그 어머니의 심정 말이다. 그때, 김조광수 감독은 "괜찮아요, 우리 행복해요"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 결혼식으로부터 2년여가 흘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법정에 섰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수치화할 수는 없겠으나, 인식이 바뀌고 있음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가족으로 둔 이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변의 태도를 고수하는 이들이 있다. 아니, 그들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도 모자라 다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탄압'을 일삼는 중이다. 이미 재차 삼차 거론한 바 있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 말이다.

인류 보편의 인권마저 부정하는 일부 개신교와 사회의 차별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에 참가한 최정해(69)씨가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 도중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에 참가한 최정해(69)씨가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 도중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하상윤

"인권은 우리 스스로가 아닌 창조주가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이다. 그러나 창조주가 부여한 권리 내에서만 그것을 누릴 수 있기에 또한 제한적이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으셨다. 동성애가 인권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6월 22일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가 주최한 '동성애 조장과 확산 대응, 한국교회 동성애 대책 긴급 대담'에 참석한 이태희 변호사의 발언이다. 근대 들어 확립된 '천부인권설'마저 부정하는 용감함으로 무장한 저들이 과연 21세기에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사실 이런 비논리 아니 무논리의 수사는 오늘도 계속되는 중이다. "메르스보다 에이즈(가 더 무섭다)"라며 16회 퀴어문화축제의 서울 시청광장 개최를 비난했던 신동욱 공화당 총재의 발언 역시 가히 '괴담' 수준이다. '동성애 = 에이즈'라는 철 지난 공식은 기독교와 보수의 결합체가 내미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다.  

저 동성애 대책 긴급 대담에 참석해 "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면 성경은 불법서적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여기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 호소한 가천대 이용희 교수의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런 '차별'의 수사들은 기독교인들이 거리로 나와 성소수자들을 탄압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 당일, 경찰들의 경호 혹은 비호를 등에 업고 시청광장을 둘러싼 채 대규모 반대 집회를 하던 기독교인들, 그들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함이 서려 있었다.

'차별'이라는 반석 위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왔던 자들이 인류 보편의 '인권'마저 폐기처분하려는 꼴은 가히 목불인견 수준이다. 평소 그리도 따르는 '미국'의 트렌드를 왜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만은 무시하는 걸까.

그렇게 다수가 소수를 근거 없이 탄압하는 광경이 2015년을 사는 우리의 일상이다. 그들에게 "자녀들을 도와주자"라는 성소수자 가족들,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릴 리 없다.

38년이라도 싸우겠다는 게이 감독의 진정어린 호소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싸움은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세상의 편견과 일부 기독교인들의 탄압 그리고 보수적인 법원과의 이중삼중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차별의 언어와 세상의 편견과 맞서며 법에 호소하는 것 자체로도 이미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우리 민법은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결혼으로 인정한다고 적시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성적 지향이 표출되고 있는 지금, 동성애 자체를 고려하지 않은 민법이 동성결혼을 새롭게 정의내릴 필요가 있다. 미 연방 대법원의 결정이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이유다. 두 사람과 성적 소수자들은 차별에 앞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평등과 법적 권리를 이 사회에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법 앞에서의 평등한 존엄' 말이다.

이날 두 사람은 2시간 반여에 걸쳐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법적 투쟁은 기나긴 시간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김조광수 감독은 이날 눈물로 호소하며 "끝까지 용기 내서 싸울 것"을 다짐했다. 너와 나, 우리의 평등과 인권을 위한 눈물이 부디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바다. 끝으로, 7일 오전 김조광수 감독이 자신의 SNS에 담담한 심정으로 적은 소회 글을 본인의 동의 하에 싣는다. 

어제 결국 눈물을 흘린 이유. 저는 재판을 앞두고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울지 않으려고 했어요. 나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큰 걸음에 눈물로 애걸복걸하고 싶지는 않았죠. 누구보다 당당하게 "나는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달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판에서 당사자 진술을 하면서 저는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어졌습니다. 아니 솔직해졌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판에서 당사자 진술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알기에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고 생각을 하면서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한가람 변호사의 "신청인은 언제 동성애자인 걸 알게 되었고 어떤 삶을 살았느냐"는 첫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부터 저는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으로부터 들어 왔던, 정말 골백번은 더 말했던 이야기인데 법정에서 하려니 마음이 크게 흔들렸어요.

"왜 나는 법정의 증인석에 앉아 내 인생을 복기하면서 제발 나를 한 사람의 국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동성애자인 걸 깨닫고 힘들어 했던 소년 시절, 동성애를 고쳐 보려고 여자 친구를 사귀었던 청년 시절,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나를 벌주던 그때를 다시 떠올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어요. 공개적인 결혼식을 하려고 마음먹고 준비하던 때, 특히 가족들을 설득하면서 "나 좋자고 가족들을 괴롭히는 건 아닌가?" 고민하고 고민했던 2013년을 이야기 할 때는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다시 감정을 다잡고 마무리를 하면서 작년 가을에 대만의 영화제에서 보았던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리미티드 파트너쉽>을 떠올렸습니다. 그 영화는 미국의 게이 부부가 결혼 소송을 하는 내용이었어요. 우리 부부와 비슷하죠. 그 부부는 소송을 시작하고 무려 38년을 법정 안팎에서 싸웠습니다.

무려 38년입니다. 38년. 2013년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그 부부가 속한 주에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만 할 수 있다는 조항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하면서 해피엔딩을 맞을 것만 같았죠. 하지만 너무 안타깝게도 그 중 한사람이 38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2012년에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결국 그 분은 합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턱 막힙니다.

조금만 더 빨리 판결해 주었다면, 그가 죽기 전에 해주었다면... 나에겐 어떨까요? 미국의 부부에게는 38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한 걸까요? 만약 내가 그 전에 죽게 된다면, 홀로 남은 우리 화니는 마음이 어떨까요? 이런 생각을 하니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내가 죽고 나서라도 그런 세상이 온다면 너무 다행이고 큰 의미가 있는 거지만, 솔직히 저는 제가 죽기 전에 그런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그런 세상에서 살다가 죽고 싶어요. 그래서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제발 부탁드린다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 1항.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주었는데, 울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약해진 건 아니니까요. 만에 하나 38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용기 내서 싸울 거니까요. 건강관리 잘 해서 앞으로 39년을 더 살테니까요.

○ 편집ㅣ김지현 기자



#김조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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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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