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라는 행위에 정의를 내려보자.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리켜 살인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견해 차이는 있겠지만, 전쟁이 터졌을 때 군인끼리 서로 죽이는 경우 또는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는 경우를 가리켜 살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살인은 이보다 더 개인적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개인적이고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모든 형태의 행위'를 약칭해 살인이라고 표현한다. 살인은 개인적인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이런 살인에도 역사가 있고 종류가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역사학자 피테르 스피렌부르그는 <살인의 역사>에서 이런 살인들을 분석하고 있다.
살인이 보여주는 유럽의 역사
작가가 보여주는 살인의 모습은 중세에서 현대까지 유럽에서 일어났던 여러 형태의 살인이다. 약 7세기 전 유럽에서 살인은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예를 들어 가문과 가문 사이에 싸움이 있을 경우, 흔히 말하는 '피의 복수'를 위해 살인을 할 경우 가해자는 처벌 받지 않을 때가 많았다.
가해자가 사회의 상류층, 즉 귀족일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귀족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한 행동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중세 유럽에서 있었던 '결투'다. 입회인이 참가한 일 대 일의 결투에서 한 쪽이 사망한 경우, 역시 가해자는 처벌 받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 당시 사람들은 살인을 명예로운 방어나 복수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살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 중세 시대가 끝나면서다. 작가는 살인에 대한 공공연한 용인이 중세 문화의 일부이며, 중세 사회를 이후의 사회와 구별짓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화해에 대해서도 말한다. 중세 시대에 폭력을 줄이는 방법은 한 번의 살인이 그 다음의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때문에 당국에서는 당사자들 사이에 화해를 권했다. 그 화해의 대표적인 방법은 서로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피의 복수에서 연쇄 살인까지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카인은 아벨을 죽인다. 성서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가 살인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어찌보면 최초의 범죄도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살인의 역사는 오래된 셈이다.
작가는 이외에도 다양한 살인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매춘부들을 혐오한다'며 여자들을 죽여서 런던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잭 더 리퍼'를 포함한 연쇄살인범. 사지를 절단하고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람을 불 속에 던져넣었던 1차 대전 당시의 비극, 유럽에서 있었던 영아살해 사건 등.
살인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 여기에 답은 없다. 대부분의 살인은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벌어진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작가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러 통계 자료와 사례를 통해서 제목 그대로 '살인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저서에서 묘사하는 사건들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인간사회가 지속되는 동안 살인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미래의 폭력과 살인이 어떤 형태일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살인의 역사> 피테르 스피렌부르그 지음 / 홍선영 옮김 개마고원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