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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자 자치행정국장 ①에서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광명동굴 홍보는 쉽지 않았다. 폐광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광명동굴 흠집 내기를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광명시의원들과 시민단체에서 동굴이 위험하다, 문제가 있다면서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했다. 시의회가 열리면 가장 곤욕을 치르는 사람은 전인자 국장이었다. 그는 그럴 때마다 무척이나 답답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광명시가 갖고 있는 자원을 광명시 사람들이 나쁘게 이야기하면서 깎아내리고 흠집 내기를 하면 누가 찾아오겠어요. 문제가 있다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정말 미웠어요. 광명시가 나쁜 도시라는 주장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죠."

전인자 자치행정국장과 이용식 광명시 홍보대사
 전인자 자치행정국장과 이용식 광명시 홍보대사
ⓒ 윤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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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의 입장에서 폐광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저 설득하고 또 설득하면서 폐광 개발의 의미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공무원의 한계이기도 했단다.

그렇다면 전 국장은 언제 광명동굴 개발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까?

광명동굴은 2011년 8월 22일, 내부 정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를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동굴을 찾아오는 이들은 가학산 등산을 하러 왔다가 들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방문객이 5만 명을 넘었을 때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때는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거든요. 멀리서 온 관광객이 있으면 광명동굴을 방문하게 된 이유 등을 들어서 <광명소식>지에 기사화를 했어요. 이렇게 멀리서 우리 광명동굴을 찾아오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본 거죠. 그렇게 찾아오신 분들이 고맙기도 했어요."

2012년 9월, 광명동굴 개발을 전담하는 테마개발과가 신설되면서 폐광 개발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동굴을 찾는 관광객들은 점점 늘어났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동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광명동굴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한 때 광명동굴에서 일했던 광부들이 동굴해설사로 일하게 됐다. 그들에게 광명동굴은 남다른 존재이니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2013년 6월 29일, 동굴 예술의 전당이 개관하면서 광명동굴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동굴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전 국장의 말에 따르면 '폭발적인 인기'였다나.

광명동굴
 광명동굴
ⓒ 윤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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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동굴은 최고의 피서지가 됐다. 하루에 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동굴을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전 국장은 폐광 개발이 성공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단다. 이제 광명동굴은 광명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된 것이다. 그 사실은 전 국장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2011년이었을 겁니다. 광명시 관내에서 사업을 하는 CEO 모임이 있어서 참석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CEO들이 한결같이 광명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거였어요. 광명시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유명한 것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기를 꺼려한다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광명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것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해왔어요."

전 국장은 고민스러웠다. 수도권 위성도시에 베드타운에 불과한 광명시에는 변변한 관광자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표할만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광명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만들어 홍보해 도시의 이름을 알려달라니 말이다. 기껏 떠올릴 수 있는 게 'KTX 광명역'이었다.

실제로 KTX 광명역은 한동안 광명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엄밀히 따지면 광명시를 상징할 수 없는 철도역이지만 그나마 광명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전 국장은 KTX 광명역을 내세워 광명시 존재를 홍보하면서도 속내가 무척이나 복잡했단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명동굴 개발 성공은 전 국장의 오랜 고민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했다. 이제 광명동굴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광명시의 상징이 되었고, 랜드마크가 된 것이다. 지금 광명시 홍보 전략의 중심에는 광명동굴이 있다.

광명동굴
 광명동굴
ⓒ 윤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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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동굴에 아주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전 국장은 광명동굴 유료 전환 성공이 가장 기쁘다. 광명시가 2011년 1월, 폐광을 사들인 이후 폐광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홍보에 온 힘을 기울인 전 국장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유료 전환을 추진할 때만 해도 30만 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80만 명이 우리 광명동굴을 찾았으니, 이만하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죠. 동굴 개발을 반대하면서 흠집 내기를 했던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자랑할 수 있게 된 거잖아요. 유료 전환을 앞두고 입장료를 얼마로 할 것인지 논의를 거듭하던 기억이 납니다. 돈을 내면 돈이 아깝지 않아야 하잖아요. 재개장을 하기 전에 들어가 보니 이 정도라면 욕은 먹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 됐죠."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광명동굴 성공 요인 가운에 하나로 광명시의 홍보 전략을 꼽고 있다. 양기대 시장이 기자 출신이기 때문에 다른 자치단체보다 탁월한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까. 시장이, 자치단체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일을 실행하는 공무원이 의지나 능력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 시장이 하는 일을 사사건건 반대하고 방해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치단체장이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양 시장은 좋은 인재를 발굴해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전 국장은 처음에는 홍보 문외한이었지만, 이제는 홍보 전문가로 거듭나게 됐다.

"제가 광명시나 광명동굴을 홍보하면 일부에서는 양기대 시장을 홍보한다는 비난을 많이 했어요. 제가 영혼 없이 무조건 시장님을 홍보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시장은 양기대가 됐건, 누가 됐건 시민들이 선출해서, 선택해서 시에 가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라고 보낸 사람이다, 그런 시장을 공무원들은 최선을 다해 도와서 일을 해야 한다, 이게 민선시대다, 그게 시민이 원하는 거다. 만일 당신이 시장이 되면 당신이 하고자 하는 정책을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함께 추진하고 홍보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전인자 자치행정국장과 홍보실 직원들
 전인자 자치행정국장과 홍보실 직원들
ⓒ 윤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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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7월, 경기도 청평군 외서면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전 국장은 81년에 광명시청이 개청하면서 광명시와 인연을 맺었다. 그가 공직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성공무원은 존재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소위 '요직'이라 불리는 곳은 여성공무원의 몫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 국장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남성 전용'이던 요직을 두루두루 거치게 된다. 광명시청에서 '여성 최초'의 수식이 붙는 자리는 죄다 전 국장이 거쳤다. 용도계장, 기획계장, 비서실장, 홍보실장, 자치행정과장 그리고 자치행정국장까지.

"소신 있게, 자신 있게, 끈기 있게 일하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온다고 여성 공무원들에게 조언하고 싶어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변화하는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게 늘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왔습니다. 홍보 업무도 마찬가지였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건 필요하죠."


태그:#전인자, #양기대, #광명동굴, #광명시,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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