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살생(不殺生). 산 것을 죽이지 않는다는 게 불교의 계율이다. 나는 지난 12일 동안 '불살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죽음의 현장을 조계종 스님들과 함께 걷고 또 걸었다. 금강 하굿둑부터 대청댐까지 146km. 겨우내 혼자였던 나는 스님들과 함께해서 행복했다. 하지만 죽어가는 금강의 맨얼굴을 함께 보면서 고통도 커졌다. 금강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동안 금강에 대한 기사만 수 백여 편 쏟아내면서 자주 들었던 말은 이것이다.
"미친 놈, 지가 금강의 주인이야?"이런 나에게 지난달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불교환경연대 중현 스님이었다.
"4대강 현장을 100일 동안 걸어서 돌아볼 생각입니다. 도와줄 수 있겠지요?"금강 길 동행 요청을 받고 기뻤다. '아직도 금강을 기억하고 있구나!' 취재 약속도, 강의 요청도 팽개치고 미친 듯이 사전답사부터 시작했다. 4대강에 삽질을 할 때부터 금강을 걷는 게 직업이 됐지만, 금강의 맨얼굴을 보여드리려면 준비가 필요했다. 이들은 금강이 제일 아파하는 '환부'를 보고 싶어 했다.
또 다른 걱정거리도 생겼다. 스님들과의 11박 12일. 금강 이야기는 술술 풀어낼 수 있지만, 그동안 먼발치에서 보아왔던 분들과 함께 먹고 자는 것, 부담스러웠다. 순례단에는 비구니 스님의 명단까지 있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스님들은 때로는 동네 형님이었고, 어머니처럼 포근하기도 했다. 그 분들과 함께한 기록을 이제부터 풀어보자.
썩은 고기만 둥둥... 금강의 아주 익숙한 풍경
썩은 내 풍기는 금강 하구는 삭막했다. 둥둥 떠다니는 죽은 물고기는 이곳의 아주 익숙한 풍경이 됐다. 4대강 사업으로 내려온 예산을 억지로라도 써야하는 자치단체는 강변에 데크를 깔고 콘크리트 포장을 했다. 이 때문에 농지가 사라졌고, 배를 타고 하중도에 들락거리면서 1억 이상의 소득을 올리던 농민들도 몇 푼의 보상금을 받고 강변에서 쫓겨났다.
농민들이 빼앗긴 농토에는 '생태공원'이 들어섰다. 축구장도 만들고 꽃도 심었다. 운동기구도 들여왔다. 갖가지 조경수도 잔뜩 심었다. 9000개의 바람개비도 돌아갔다. 하지만 잡초가 꽃을 덮었다. 비바람에 조경수가 넘어지고 습기 때문에 죽어갔다. 주민들도 뙤약볕 생태공원을 외면했다. 가끔씩 그곳엔 술판이 벌어지고 드럼소리에 맞춰 춤판이 벌어진단다. 가난한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그곳엔 빈 소주병만 나뒹구는 모습. 스님들은 처음부터 혀를 찼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거대 억새밭으로 변한 땅이 있다. 정부 시책에 따라서 에탄올, 연료 펠릿 등 친환경 바이오에너지 생산을 위해 55만 평에 54억 원을 투자했다. "무단 출입은 관련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막대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표지판에 붉은색의 두 줄을 그었다. 기름이라도 펑펑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에 주민들의 기대는 켰다. 그러나 아무 짝에도 쓸 모 없는 쓰레기 더미로 전락했다.
"수심 5~6미터라고 했는데 당시 물고기 수거를 위해 부여군 사산리에서 작은 고무배를 타고 가다가 스크루가 바닥에 걸려서 가지 못했다. 준설이 끝난 지 1년 정도 됐을 때로, 재퇴적 보다는 준설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당시 강바닥의 높이는 1미터도 안 되었다." 2012년 물고기 떼죽음으로 물고기 수거에 나섰던 전 환경부 지킴이의 말이다. 금강의 준설이 4294만1000㎥정도 이루어졌다는 말,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공연한 짓을 해대면서 건설사만 배불렸다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내가 쓴 기사 자랑도 했다. 스님들에게 금강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다. 4대강 사업이 끝난 뒤 피어오르기 시작한 녹조를 가리려고 황토와 유화제를 뿌리는 동영상 기사를 보고 그들은 어이없다고 했다. 물고기 떼죽음과 큰빗이끼벌레, 실지렁이, 깔따구, 얼음녹조에 이르기까지 내가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를 보고 "이럴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길 잃은 강물... 상류-하류가 실종됐다
"어디가 상류일까요?"금강을 찾는 사람들에게 꼭 내가 묻는 질문이다. 하굿둑에 막히고 백제보, 공주보, 세종보에 막힌 강물은 바람결에 춤을 춘다. 길을 잃은 강물은 바람 따라 하류로, 상류로 때론 좌우로 흐르기도 한다. 지조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치밀어 오른다.
"설마 저 물을 먹는다고요?"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노 스님의 눈이 커졌다. 지난해 가뭄을 겪은 충남 서북부 도민들의 식수공급을 위해 백제보 하류 6.6km 지점에는 취수장이 있다. 먹는 물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주변은 각종 쓰레기와 부유물로 뒤범벅이다. 치부를 드러내듯 알려야하는 입장에선 얼굴이 붉어지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공주시는 구석기 축제를 한다고 썩은 강물에 부교를 띄웠다. 축제를 통해 치적을 쌓으려는 시장은 물고기 사체가 부교에 걸려도 강행했다. 죽은 물고기가 떠다니고 악취 가득한 강물에서 뱃놀이를 멈추지 않았다.
MB와 맞짱이라도 뜰 것 같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던 충남도는 지난해 가뭄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금강 공주보의 물을 예당저수지로 공급하는 도수로 공사를 추진했다. 농림축산식품부를 등에 업은 농어촌공사는 100%로 만수위인 예당저수지에 재난상황이라는 붉은 딱지를 붙여서 예비타당성 조사와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면제했다. 실시설계도 끝나지 않는 상태에서 일부 구간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4대강 반대를 외치던 안희정 지사의 약속도 굳게 다문 입 앞에서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4대강 사업 반대한다던 안희정 도지사가 정치적 판단을 잘못하고 있다, 도수로 사업은 4대강의 망령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으로 지금이라도 안 지사가 금강 용수공급이 아닌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예당저수지 앞에서 죽비를 내려치듯 스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불살생. 금강을 순례한 스님들은 이 계율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지금도 '가만히 있으라'라고 되뇌고 있지만 상처뿐인 금강에서 오늘도 생명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지만 금강의 강바람은 여전히 세차다. 바람처럼 흘러야 하는 게 강인데, 흐르지 않는 금강은 소 오줌 색으로 변했다. 산 것을 죽이는 죽음의 강이다. 스님들이 '불살생'의 계율을 떠올리며 기도하던 그 강을 오늘은 혼자 걷는다. 긴 장화를 신고 터벅터벅 강물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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