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만의 가뭄'작년 신문 지면을 도배한 제목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 세금 22조 원을 들이면 '가뭄 끝'이라고 말했지만 4대강 사업은 쓸모가 없었다. 거짓말이었다. 수심 4m 금강에는 썩은 물이 가득했고, 그곳에서 31km 떨어진 예당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시작된 게 공주보~예당저수지 금강도수로 공사다. 1천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대형 공사다. 그런데 이 공사도 4대강 사업을 너무 빼닮았다.
지난 10일 찾아간 예당저수지는 만수위였다. 수문 제방 쪽에 세운 차량 바퀴가 물속에 잠길 정도였다. 1964년에 준공한 예당저수지는 유역면적만 3만 7360㏊이다. 저수지 둘레는 40㎞이고 만수 면적이 약 1100㏊, 총저수량은 약 4700만 톤으로 국내 최대 인공저수지다. 이 저수지의 저수율이 작년에 14%로까지 떨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공주보의 '똥물'을 퍼붓는다고?
제보 전화 한 통 "공사가 시작됐다"
금강에 푹 빠져 살다가 이날 예당저수지를 찾은 것은 제보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기자님, 도수로 공사를 시작했다고 하던데요."충남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주보~예당저수지 금강도수로대책위원회 신은미 간사의 전화였다. 최근까지 저수율이 80%라고 했는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 게다가 예비타당성 조사와 환경영향평가를 받으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려야 하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고 자동차 가속기를 밟았다.
지난 4월 20일부터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의 커브 길을 돌아서자 빨간 봉을 위아래로 흔들며 신호수가 차량을 막아 세웠다. 두 개의 입간판이 세워진 입구부터 한쪽 차선을 막고 중장비가 공사를 하고 있다. 거대한 파이프 관이 도로변에 널브러진 걸 보고서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작년, 가뭄을 틈탄 정부의 황당한 여론 뒤집기가 생각났다.
100년 만의 가뭄으로 4대강 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정부는 '재난 상황'을 들먹이며 뒤집기를 시도했다. 정당한 법적 절차도 밟지 않았다. 식수 공급이라는 목적으로 보령댐 도수로 공사를 6개월만에 속전속결로 밀어붙었다. 이게 다 '4대강 사업 효과'라고 떠들었으나, 거짓이었다. 보령댐에 끌어올리는 부여 지역의 물은 4대강 사업으로 채워진 게 아니라 금강 하굿둑으로 막혔던 물이었다.
'재난 관련'이라는 말은 만사형통?
정부는 내친김에 공주보~예당저수지 용수공급을 위한 도수로 공사까지 '재난 상황' 꼬리표를 달고 추진했다.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거나 300억 원 이상의 국비가 투입될 때 실시하는 예비타당성조사와 환경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문화재 지표조사, 도로 굴착허가, 하천사용허가 등 17가지 행정 절차의 대부분은 '재난' 꼬리표를 다는 순간 무용지물이었다.
"재난 관련 긴급공사로 예비타당성 조사와 환경영향평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절차를 밟았다."도수로 공사를 맡은 농어촌공사 담당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00년 만에 가뭄이 들어 저수율이 14%로까지 떨어졌다. 낚시 좌대도 바닥에 가라앉으면서 영업도 못한다는 민원과 귀이빨대칭이 같은 천연기념물 보존에 문제가 있다는 언론보도가 수없이 터졌다"고 공사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이나 예산군에 문의한 결과, 지난해 가뭄 피해로 불편은 겪었지만 지출된 보상금은 없었다. 실질적인 피해는 다른 곳에 비해 적었던 셈이다. 가톨릭관동대학교 박창근 교수는 이렇게 반박했다.
"재난사업이라고 하는데 당초 농어촌공사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가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고부터는 못 받겠다고 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재난이 발생하면 면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100년 만의 가뭄이라고 하면서, (직접적으로 드러난) 가뭄 피해가 없었다. 그렇다면 100년 빈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시스템은 구축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불법사업이다."박 교수는 "공사를 할 때 제일 중요한 예비타당성조사와 환경영향평가, 두 가지를 빼고 무슨 절차를 밟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나라 농업용 저수지는 예산 문제로 10년에 한번 정도 가뭄 피해가 나타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착공식도 없는 '도둑 공사'
이뿐만이 아니다. 4대강 사업 당시 전체 170개 공구 중 60% 정도를 턴키 방식으로 발주했다. 건설사들은 이를 악용해 담합했다.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는 4대강 사업 2차 턴키공사(설계·시공 일괄계약방식)에서 입찰을 합의한 7개 건설사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152억1100만 원을 부과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처럼 농어촌공사는 1127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을 대우건설에 일괄 맡겼다. 이에 대해 농어촌공사 담당자는 "16개 회사에게 기술제안을 요청해서 제안서 평가를 거친 후에 계약이 이루어진 것이다"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높게 나타났고 평가에 따른 것이라는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박창근 교수는 "이번 사업은 도수로 관을 묻는 작업으로 토목에서도 가장 단순한 사업이다. 보령댐 도수로 공사도 6개월 만에 끝낼 정도였다. 도로를 파서 관을 묻고 중간에 펌핑장 만드는 단순한 공사다. 고급 기술이 아닌 토목에서도 중하 수준의 기술력이다. 기술제안을 요청해서 심사할 이유가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다.그러면서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의원들이 몰아붙이면서 4대강 사업의 용수 활용처가 없다는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활용론을 만든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되면 계속해서 엉터리의 단추가 채워진다. 4대강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 세금만 낭비된다"고 지적했다.
농어촌공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가뭄이 심해지자 국민안전처와 기획재정처에서 재난 관련 기본법에 따라 긴급조치가 필요하다고 공문이 내려오면서 도수로 공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시 설계도 끝나지 않는 상태에서 착공식도 없이 공사부터 서두르는 이유'를 묻자 "재난에 긴급하게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4월 20일부터 일부 구간에서 공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당저수지에 끌어올리는 물의 정체
4대강 사업에 따른 공사들이 끝나면서 공주보에 심각한 수준의 오염원이 발생하고 있다. 농어촌공사 측은 도수로 공사 과정에서 환경관련 시설 6단계 정도의 절차를 진행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농어촌공사는 치수능력 증대 및 시설물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물넘이 확장, 제체보강, 방수로 확장, 인입수로정비, 유지관리도로, 관리소 및 취수탑, 물관리자동화 및 홍수예·경보, 하류교량보강, 하천유지공 조경 등의 공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공주보는 4급수 오염 지표종인 실지렁이와 깔따구,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까지 발생하고 있다. 현재 등급을 매기기도 어려울 정도의 수질 상태다. 또 예당저수지는 단순히 농업용수로만 이용한다고 볼 수가 없다. 보 하류 무한천에서는 예산읍민 4만 명의 식수 공급처인 상수원보호구역이 있다. 예산 상수도 담당자는 용수가 부족하면 농어촌공사에 비용을 주고 저수지 물을 공급받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주보 물을 검증조차 하지 않고 마구 끌어올려야 할까? 예당저수지를 떠나면서 든 의문이다.
자동차는 다시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로 향했다. 최상류 논까지 물이 가득하다. 물고기 잡이에 나선 낚시꾼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북적이고 있다. 낚시꾼들은 물속 버드나무가 하얀 솜털을 날리는 상류 수몰 나무 사이로 낚시 좌대를 설치해 놓았다.
하지만 정부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상황과는 달리, 100년만의 가뭄은 또 언제 닥칠지 모른다. 정부의 '백년지대계'를 칭찬해야 할까?
100년 동안 가둬둔 금강의 물을 상상해보라. 끔찍하다. 깔따구와 실지렁이, 큰빗이끼벌레가 그득한 물. 녹조에서 내뿜는 독성물질로 짓는 농사... 농민들이 나서서 자기 세금으로 만든 도수관을 파내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이라도 당장 도수로 공사를 멈추고, 환경영향평가 등 기본적인 조사부터 벌여야 한다. 4대강 사업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난, 다시 금강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