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참여정부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에서 선정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1006명의 후손 1177명의 재산과 학력, 직업 등을 추적한 4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아래 뉴스타파). 지난 8월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출간했다.
책에는 다큐멘터리 내용은 물론 취재 뒷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출간 뒷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8월 29일 서울 정동에 있는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공동저자 중 한 명인 박중석 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 <뉴스타파>의 첫 책인 '친일과 망각'이 출간된 지 보름 정도 지났는데 반응은 어떤가요?"<뉴스타파>가 처음 출간한 책이잖아요. 저도 기자생활을 17년 하면서 처음 책을 펴낸 것이어서 약간 두렵기도 한데요. 인터넷을 살펴보니 정치사회분야에서 10위권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정도면 괜찮은 성적이라고 봐요. 친일 청산의 현재성에 대한 이야기를 책이라는 형태로 내놓은 건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에 공감했으면 해요. 출판사에 알아보니, 곧 2쇄가 들어간다고 하네요. 많이 읽어 주시면 고맙죠."
- 10위권이면 나쁘지 않은 성적인 것 같은데요.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가 무엇일까요?"친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동안은 그냥 친일파가 나쁘다고만 했잖아요. 사실 한국 사회 70년 동안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아 누적된 문제들이 많아요. 민감한, 연좌제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친일파 후손들의 현재적 삶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1177명을 통해 보여준 거죠. 사회인구학적인 통계를 이용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이 책을 궁금해하고, 읽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최근 SNS에서 박성제 MBC 해직 기자가 <친일과 망각>에 대한 간단한 서평을 올렸어요. '대한민국 모순의 근원, 친일파 문제를 가장 쉽게 설명하고 가장 확실하게 조명하는 책'이라고 과분한 평가를 해주셨어요. 많이 부족한 책인데도 이런 평을 해주시니 민망할 따름이에요. 친일 문제는 이제 끝난 것이라거나 너무 고루한 것이라고 넘기잖아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죠. 2016년에 대한민국에서 친일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 처음부터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취재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취재하며 기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외국의 경우는 주요한 탐사보도가 끝날 때마다 집필휴가까지 주거든요. 취재를 마치고 곧바로 집필을 시작하지 않으면 대부분 그 감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또 취재할 때 정확한 자료를 노트에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했고요."
-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저희는 방송이 주목적이잖아요. 방송은 영상이에요. 영상 문법에 맞게 제작하는 노력이 먼저이다 보니, 이걸 다시 텍스트로 옮기는 작업에 대해서는 조금 미흡하거나 부족한 게 보였어요. 다음에는 보완하려고 노력해야죠."
"친일파, 현재적 문제"
-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잖아요. 가정만큼 부질없는 일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들어가며에 '만약'이란 표현을 쓰셨잖아요.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해 생겨난 나비효과는 7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 같아요. "어쩌면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먹고사는 게 먼저고 경제 성장이 먼저라고 말하며 무던히 앞만 보고 달린 것 같아요. 가치가 전도되고 정의가 사라져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 거죠. 그 원인 중 하나가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봐요. 신상필벌처럼 죄가 있는 곳엔 벌을 주고 상 받을 만한 곳엔 상을 줘야 하는데 혼돈이 온 거죠."
- 그럼 이제 와서 무얼 할 수 있을까요?"중요한 것은 여전히 친일의 문제가 우리 공동체의 문제고 여전히 현재의 문제로서 절대 끝나지 않았다는 거죠.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외세를 대하는 한반도의 태도 문제는 매우 중요해요. 이에 대해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는 '식민지 시기 외세의 통치에 종속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이 형태만 달리한 채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는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임 교수의 말씀처럼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외세의 문제는 '상수'입니다. 동족을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해 우리 공동체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지금도 '외세'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 따라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 달라지죠. 그런데 우리 공동체가 외세 협력의 대표적인 사례인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해 규범적, 윤리적 평가를 하고 합의를 했나요? 그렇지 않다고 봐요."
- 하지만 친일 청산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요?"어려운 점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이 문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현재적 문제라는 것만 공감한다면 저는 충분히 풀어낼 수 있다고 봐요. 이분들을 단죄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어요. 다만, 친일 문제가 현재적이라는 것을 우리 공동체가 인식한다면 이야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문제가 죽은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문제라는 걸 인식한다면, 어렵지만 한 발짝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하지만 현 정부는 국정교과서를 통해 친일 문제를 지워버리려고 노력하잖아요."국정교과서와 친일 문제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국정교과서에 친일 독재 미화 문제가 일부 존재하기는 하죠. 하지만 그것보다 역사교과서로 하나의 해석만 강요하는 일종의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더 큰 문제라고 봐요. 역사 해석을 한 집단이나 국가가 독점하면 안 돼요. 그런데 이를 독점하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핵심 문제예요. 친일 독재 미화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봐요. 설령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저는 국정교과서 자체를 반대합니다. 역사적 해석을 하나로만 몰아가려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태도고, 21세기 한국 사회가 나가야 할 교육 의제와도 충돌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 친일파 후손들에게 편지를 보내셨잖아요.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실제로 답장을 받으셨을 땐 착잡하셨을 것 같아요."이를테면 '당신의 할아버지가 과거 일제 때 친일 행적이 뚜렷해 친일파로 규정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또 선대를 대신해 공개적으로 사과하실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친일파는 조선의 엘리트였어요. 그들의 후손 상당수는 흔히 말하는 오피리언 리더예요. 그런 점에서 이분들의 생각이 어떠한지가 중요한 거예요. 이분들의 생각이 어떠한지에 따라 대한민국이 방향이 어느 정도는 결정된다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서 선대의 친일 행적에 대해 후손들이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죠."
- 안타깝지는 않았어요?"그렇지는 않았어요. 다만, 친일파 후손들이 잘살고 있다는 건 하나의 속설이었잖아요. 그런 부분을 통계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은 안타까웠죠. '친일과 망각'의 3부 프로그램이었고 그들이 사는 곳을 알아봤어요. 우리나라에서 어디 사느냐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도 하니까요. (친일파 후손이) 강남에 많이 산다는 것, 평범한 사람이 살기 힘든 10~20억 원대의 고급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씁쓸했죠. 물론 그들이 잘사는 것에 대해서 시기하거나 기분 나쁜 것과는 다른 감정이에요."
- 이번에 <뉴스타파>의 광복 71주년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도 취재하셨잖아요. 친일파들의 훈장을 취재하신 것 같은데 '친일과 망각'과도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친일과 망각'은 친일파 후손의 문제를 끄집어내 그분들과 역사적 화해를 하자는 거예요. 망각하는 게 친일 청산은 아니잖아요. 진실을 알았을 때 화해할 수 있는 기본이 되지요.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친일파 후손을 취재했어요. '훈장과 권력'을 통해선 수많은 친일파가 훈장을 받은 기록을 확인했어요. 친일 인사 222명이 모두 440건의 훈장을 받았습니다. 훈장의 역사는 또 다른 친일파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여전히 청산되지 않는 친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서글픔이 느껴졌어요."
- 두 작품을 만들며 독립운동가 후손도 만나셨잖아요."작년에 김상덕 선생의 장남 김정육 선생을 만났어요. 김상덕 선생은 반민특위 위원장을 했고 임시정부에서 부장했어요. 김정육 선생에게 친일 후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더니 '진솔하게 반성만 한다면 함께 손잡고 우리 사회를 건설해나가자고 위로해 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게 어쩌면 '친일과 망각'을 했던 프로그램의 근본 취지가 아닐까 싶어요.
친일파 후손들을 맹비난하려고 하거나 낙인찍고 손가락질하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부분을 지금이라도 한 번쯤 털고 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해요. 다만 '사회적으로 다시는 친일과 같은 문제가 나타나선 안 된다, 그리고 혹시 몇 사람이라도 반성한다면 친일 문제를 청산해 나가는 계기로 삼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작년 프로그램과 이 책의 근본 취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