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한국사 책은 오직 우리 역사만을 얘기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한 개인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처럼 한 나라도 다른 나라 역사와 맞물려 발전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역사를 같이 공부하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동아시아사까지 반영한 역사책이 나왔다.
지난해 <역사전쟁>이란 책을 출간했던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이 동아시아사를 곁들인 <단박에 한국사-근대편>을 지난 8월 말에 출간했다. 한 달도 채 안 됐지만 4쇄를 찍을 정도로 독자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 19일 서울 한티역 근처 커피숍에서 심 소장을 만나 책 출간 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심 소장과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근대사를 주목한 이유
- 지난 8월 31일 <단박에 한국사>란 제목의 역사서적을 출간하셨어요. 한 달이 되어 가는데 현재 반응은 어떤가요?"반응은 좋아요. 생각보다 책을 기다린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나온 지 아직 한 달이 안 되었는데 4쇄 찍으려고 하거든요. 계속 반응이 좋아야 하는데 그게 문제죠(웃음)."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일단 제가 낸 두 번째 책이기 때문에 저에 대한 기대도 있어요. 또 하나는 팟캐스트를 했기 때문에 제게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겠죠. 가장 큰 이유는 시의적으로 적절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결합 되어서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 <단박에 한국사>는 팟캐스트 방송 <정봉주의 전국구-진짜역사 가짜역사(이하 진가역)>를 기초로 한 책이에요. 방송으로 할 때와 책으로 서술할 때 다를 것 같아요."정확하게 말하자면 방송 전에 집필을 시작했지만 대중에겐 방송을 하고 책이 출간되어 방송을 먼저 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책 출간이 방송보다 늦은 거지 방송 내용이 책으로 옮겨진 건 아니죠. 책을 쓰는 중간에 제안이 와서 하게 된 거죠.
방송할 때는 원고가 있지만, 진행자들의 캐릭터들과 부딪히잖아요. 개인 팟캐스트라서 원고를 미리 읽어오는 것 외에는 대본이 없어요. 제가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제가 예상하지 못하는 거죠.
정봉주 전 의원이 역사에 대해 깊이는 약하시지만, 진지해요. 또 현장의 삶을 바탕으로 역사를 잘 이해하며 그분 특유의 화법으로 표현해요. 그리고 최강욱 변호사는 수준 높은 지식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저에게도 많이 도움이 되죠. 최 변호사가 치고 들어오셔서 쉽게 정리도 해주시고, 추가로 재밌는 얘기도 해주시기 때문에 세 명의 케미가 의외로 잘 어우러져서 안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책은 별도의 작업이에요. 학술을 바탕으로 학계 연구결과를 수용해서 만드는 작업이에요. 사실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처음 책을 기획할 단계에서 잡은 가제가 '생각하는 역사'였어요. 왜냐면 역사라는 건 외우는 게 아니라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나 우리 사회 공교육은 역사를 외우게 하고 드라마는 과격한 감수성만 전달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역사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우리 문제로 접목시키는 과정이 없거든요. 그런 걸 해낼 수 있는 책을 쓰려고 했어요. 충분히 학술된 역사적 상과를 잘 수용하되 최대한 사람들이 그것을 사고할 수 있는 방법으로 풀어내자는 게 목표였죠. 근데 출판사에서 제목을 그걸로 하면 안 팔린다고 출판사에서 정해준 '단박에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나왔어요."
- 방송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녹음하면서 두 분이 문자를 보내세요. 한 명이 문자를 하면 다른 분하고 이야기를 하면 되는 데 둘이 동시에 문자를 할 때가 있어요. 그럼 전 멘붕이 오죠(웃음). 근데 둘 다 연배가 있는 분들이잖아요. 방송 녹음 중에 핸드폰 하는 걸 제재 못 해서 가끔 녹음 중 위기가 생기죠."
- 책은 29강으로 1800년대 중반부터 광복을 맞은 1945년까지의 근대사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시점을 주목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지금 뉴라이트 교과서나 건국절, 위안부까지 논란이 지속되잖아요. 짧게는 역사 교과서부터 1년이고, 길게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부터 따지면 3~4년이라서 대개 피곤하죠. 그분들이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많이 올려놓아 사람들이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는 토양을 줬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지난해부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암살>, <동주> 그리고 역사 왜곡의 심각한 논란이 있지만 <인천상륙작전>이나 <덕혜옹주>, <밀정> 식으로 근대사 영화가 히트도 많이 해요. 물론 인과관계를 설명하긴 어렵죠. 그러나 영화가 히트를 치면서 사람들이 근대사에 관심을 많이 갖거든요. 그런 상황이 제가 이 책을 내는 것을 수월하게 만들어 줬어요."
- 주위에서는 책을 읽고 뭐라고 해요?"만화도 썼고 쉬운 문체기 때문에 재밌게 봤다고 해요. 그리고 역사에 대한 고민이나 관심이 있었는데 그걸 해결해 줬다고 하시고요."
- 경어체로 쓰셔서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었어요."이게 이번 책의 기획이었어요. 최대한 쉽게 직관적으로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싶었죠. 보통 역사책은 두 종류예요. 하나는 내용의 수준이 높아요. 그에 따라서 글도 어려워지고 딱딱해져요. 그럼 읽는 사람만 읽고 일반인은 접근을 못 하죠.
반대로 쉬운 책은 내용도 가볍고 쉬워요. 그러나 그걸 읽고 역사적 사실에 도달하지도 못할뿐더러 그걸 읽는다고 해서 역사의식을 갖지도 못하는 게 딜레마였던 거죠. 이건 '역사의 대중화'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식의 대중화'가 안 되는 도서시장의 현실이죠. 제가 쉬운 문체를 사용한 이유는 '역사의식의 대중화'를 위해서예요. 역사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장치로 일러스트와 쉬운 말투를 생각한 거죠."
- 장이 시작할 때마다 만화로 그 장의 핵심을 표현하신 것 같던데."맞아요. 하지만 원래 기획에는 없던 거예요. 책을 다 쓴 다음에 편집회의를 했는데, 제 책만의 임팩트를 주자는 거예요. 이건 철저히 마케팅 전략이죠. 그러다 보니 처음에 인물별로 하자는 제안이 나왔어요. 근데 전 재미없다고 했어요. 보통 책은 사진이 들어가잖아요. 근데 사진도 다 똑같아서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전 A4용지에 못 그리는 그림이지만 그림을 그렸어요. 편집자가 그걸 보고 재밌다고 해서 제가 스케치북에 하나하나 그렸죠.
커피숍에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 지나가는 사람이 두 번 놀라요. 처음엔 화가인가 해서 놀라는데, 그림을 못 그려서 또 놀라죠. 결국은 제가 콘티는 짰고 좋은 작가가 섭외되어 만화로 나왔어요. 결과적으로 쉬운 문체와 만화가 어우러져서 어필이 되는 거 같아요."
구한말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력과 군사력... 그런데 왜 비슷해 보일까?
- 제목이 <단박에 한국사>잖아요. 보통 한국사라면 한국 역사만 서술되어 있는데 이 책은 동시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역사도 같이 있어요."이게 가장 큰 혁신이죠. 제가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이유고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사를 많이 배워요. 근데 문제가 있어요. 첫째 암기 문제의 폐해, 둘째는 우리 역사밖에 안 배우는 거예요. 수와 당을 물리치고 고구려가 승리했다는 것으로 끝나요.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수나 당이 왜 쳐들어 왔는지와 어떤 나라였는지예요. 그러나 그건 안 배우고 우리 입장만 배우는 거죠. 우리 역사를 보면 주변 국가와 관련 속에서 역사가 발전하잖아요. 국제환경 속에 우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서점에 가보면 한국사 책은 우리 얘기만 해요. 요즘 동아시아사라는 책도 있지만, 분량은 1/n이죠.
전 두 가지 관점에서 썼어요. 하나는 한·중·일을 둘러싼 동아시아적 관점 속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 주체성이죠. 한국사를 서술하면서 동아시아 주체성을 갖되 동아시아 역사 전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줬냐를 고려하며 보자는 거죠.
두 번째는 베트남이나 필리핀도 등장하잖아요. 가깝기도 하고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피압박 민족이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왜냐면 우리는 스스로 잘 나가는 나라로 착각하고 있어요. 물론 잘나가는 면이 있죠. 그러나 가쓰라 태프트 밀약 때로 가면 우리도 파나마, 괌, 사이판, 필리핀, 베트남 같은 나라였다는 거예요. 세계 시민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좋겠어요. 그걸 자각시키고 싶었어요."
-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으로 보았어요. 그럼 심 소장님은 근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을 꼽으라면 무엇인가요?"일단 제가 단재 신채호 선생과 비견되는 인물이 아니라서 불편해요(웃음). 다 안타깝지만, 굳이 한 가지를 꼽으라면 충칭 임시정부가 국제공인을 못 받은 거예요. 책 뒷부분을 희망차게 끝내요. 얼마나 힘들었어요. 구한말부터 그렇게 노력했는데 대부분 물거품이 되잖아요. 그래도 하나하나 노력해요.
단순히 백범 김구 혼자 한 게 아니라 중국 관내에 있었던 민족주의 진영 내의 우파, 좌파가 연합해서 드디어 처음으로 1905년 우리를 버렸던 영국과 미국의 관심을 받아 인도 미얀마 전선에도 광복군을 파견하고 미국 OSS와 국내 진공 작전도 해 나가면서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데 결국 일본이 예상보다 빠르게 패망해서 무산됐잖아요. 그래서 현대사를 분단으로 시작하죠.
전 임시정부 주의자도 아니고 임시정부만 독립운동을 대표한다고 보지도 않아요. 독립운동은 방대해요.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통해 힘든 시대에 임시정부로 수용되는데 그게 열매를 못 맺고 끝나는 게 속상하고 아쉽죠. 그래서 이 책에선 오히려 더 희망차게 쓰고 부가설명 안 하고 끝냈어요."
- 2016년 현재와 1900년 구한말 상황의 국제 정세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비교해보면 어떤가요?"사실 비슷하면 안 돼요. 왜냐면 결정적으로 당시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의 많은 학자는 조선을 자연상태에 가까운 나라라고 얘기하거든요. 조선은 스스로 존립할 수 없는 나라라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이나 러시아가 먹으려고 하거나 최소 먹지는 않더라도 남에게 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땐 일본과 러시아가 동아시아를 주도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것도 달라요. 하지만 지정학적 여파 속에서 국제관계 영향을 많이 받는 건 비슷하죠. 하지만 지금과 그때가 다른 건 지금은 부자 나라에 민도도 높고 학력 수준도 넘고 꽤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나라잖아요. 그런데 상황은 똑같아져 가고 있다는 게 걱정이에요. 그건 무슨 얘기냐면 정치가가 정치를 못 한다는 얘기죠.
지금 우리는 그때처럼 못살지도 않고 영향력이 없는 나라도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그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여길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가나 사회적 리더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주제 같아요."
-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요?"생각은 독자에게 맡기고 싶어요. 대통령 한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수많은 것이 쌓여서 나오는 결과이기 때문이죠.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을 쫓아내면 사회가 바로 좋아질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때와 너무 다른 사회가 됐는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동어 반복의 이야기가 나올까요? 단순히 대통령을 비판하는 걸 넘어서야 합니다. 조금 더 진지한 고뇌나 노력이 이 사회에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