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
요즘 들어 대학입시에 찌들어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 고등학생들의 입에서 민주주의라는 '낯선' 단어가 무시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대통령이 촛불의 힘으로 탄핵당하는 전 과정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를 체득한 것이다. 광장이 학교였고, 촛불이 교과서였다. 지난 겨울은 아이들의 인생에서 더없이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매주 광화문과 시청 광장에서 차벽을 사이에 두고 맞닥뜨려야 했던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을 아이들은 일부 보수 언론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혼란'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나아가 몇몇 아이들은 갈등이 없는 사회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선 맹목적인 증오를 부추기는 세력이 발붙일 수 없다면서 '과도기'라는 표현까지 썼다.
생각의 품이 넓어진 아이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상식'이 비로소 통하게 됐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촛불은 우리 국민이 권력 앞에 비굴해지지 않는 '배짱'을 키워주었다면서, 앞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어떤 권력자도 무시할 순 없을 거라 말했다. 이를 두고 나중 역사 교과서는 '혁명'이라 적게 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경솔하게 설레발치진 않았다. 미래를 낙관하면서도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경계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국민은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의원만 잘 뽑아놓으면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집단적 착각 속에 사는 것 같다면서, 탄핵 후 국민적 관심이 오로지 대선으로 쏠리는 걸 지적했다. 아이들은 이를 '맹목적인 권력 의존증'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봄꽃이 흐드러질 무렵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테지만, 그로 인해 세상이 확 달라질 거라고 믿는 아이들은 '다행히도' 없었다. 지금보다야 나빠질 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대선 주자마다 호언장담하는 '새 시대'가 곧 찾아올 거라는 섣부른 기대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광장에서 국민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칠 때라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음을 촛불을 통해 깨달은 셈이다.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질까요?"내친김에 '촛불 세대' 아이들이 꿈꾸고 바라는 세상이 궁금했다. 교내에서 내로라하는 2, 3학년 '시사 박사' 몇 명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따로 불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매일 방과 후 자율적으로 모여 신문이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동아리의 회원들이다. "새로 뽑힐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해보라"며 말문을 열었더니, 단박에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질까요?"라며 반문할 정도로 당찬 아이들이다.
대화가 무르익기 전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아래 학종)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학교생활에 이중 삼중 부담이 되는 학종을 폐지하거나 축소해달라고 통사정하겠단다. 과장된 측면이 없진 않지만, 이미 학종은 지방의 일반계고 학생들에게 불리한 전형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극소수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학종의 확대가 우리 교육을 더욱 양극화시킬 것이라 단언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마다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학종 대상자'가 정해져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그들 앞에서 억측이며 오해라고 항변하기에는 불신의 골이 너무 깊다.
한편으론 학종에 죄를 물을 수 없다며 '필요한 사람만 대학을 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는 요즘 대학 공부를 조선 후기 백성들의 삶과 괴리된 성리학에 빗대며, '상아탑'이 아닌 대학이라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사람 구실 못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내 학종은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됐다. 오로지 대학입시에만 매몰될 때 사고의 틀은 학교 울타리에 갇히게 된다며, 시야를 학교 밖으로 넓혀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사 국정교과서 채택 철회를 요구하며 입학식을 무산시킨 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 학생들의 사례를 들었다. 뉴스를 접한 뒤 같은 또래로서 고민이 대학입시 앞에서 멈춰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학교장 앞에서 피켓을 드는 건 고사하고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텐데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행동 앞에서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성찰해보는 기회였다고도 했다. 한 아이는 대학입시를 두고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도구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불안을 조장하는 경쟁 위주의 교육제도를 일거에 뒤엎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부터, '엘리트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식의 엘리트주의에 경도된 사회 분위기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그런가 하면 그들에게 아직은 생소할 기본소득 문제까지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면서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이들의 열띤 대화는 선거 연령을 당장 낮춰야 한다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다른 날도 아닌 3.1절에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어른들보다 자신들의 판단 능력이 더 나을 거라면서, 선거 연령 낮추는 걸 막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학교생활을 사실상 좌우하는 교육감을 학생이 아닌 부모 세대가 뽑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당장 해소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적정한' 선거 연령은 놀랍게도 만 16세였다. 고등학교 1학년 정도면 정치적인 사리 판단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처음엔 만 18세로 낮추는 게 현실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만 16세 주장에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고등학교 과정만 이수해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걸 인정한다면, 선거라고 해서 다를 건 없지 않겠느냐는 거다.
아울러,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근거로 삼았다. 엄연히 1학년 공통 교과인 사회 과목 내에 꽤 많은 분량으로 정치 단원이 포함되어 있고, 선택 교과엔 아예 법과 정치 과목이 개설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수업시간 정치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토론하도록 해놓고선 어리다고 투표권을 주지 않는 건 모순이라는 것이다. 정치를 가장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10대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반론도 있었다. 서슬 퍼런 대학입시 앞에서 법과 정치는 또 하나의 수험과목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수능 문제풀이 방식으로 정치를 배운 아이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라는 뜻이다. 심지어 투표를 장난으로 여기는 짓궂은 아이들도 적지 않을 텐데, 그렇게 되면 자칫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희화화될지도 모른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가르치는 학교가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 아이는 선거권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는 교실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냐며 내게 묻기도 했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통제와 관리에만 익숙한 교사들의 고루한 인식에 대한 따끔한 질책에 다름 아니다. 솔직히, 학교에 제대로 된 정치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가 과연 있기나 했는지를 묻는 것이기도 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그저 입 벌리고 기다릴 게 아니라면,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진리'를 아이들은 뒤늦게나마 또렷이 깨닫고 있다. 적어도 교육의 변화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입시 제도를 골백번 고치는 것보다 고등학생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 것이 학교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혁명의 광장이 '낡은 잔치판'이 되지 않길
아이들은 당장 요구했다. 수업이든 학교생활이든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그래야 자신의 선택에 대해 온전히 책임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곧, 학생들은 공부만 하는 기계가 아니며, 교사와 학부모의 보호에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십수 년 동안 배운 거라곤 순응하는 삶이었고, 최고의 칭찬이 '모범생'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들과의 대화를 정리하며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지금껏 학교의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역량이 부족할지언정 마땅히 교사여야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아이들의 거침없는 주장을 통해 어느새 교사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되레 거스르는 장애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도도한 흐름이라면 역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야흐로 시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시대다. 그 '혁명'의 과정을 두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본 아이들이 있다. 아직 어리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혁명'의 광장이 기성세대 그들만의 '낡은 잔치판'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분명한 건, 지금 아이들은 과거의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