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광화문 사거리 동화 면세점이 있는 감리회 본부 앞 희망마당에서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바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306개 기억 독서대' 전시회였다. 고 유예은양이 다녔던 안산 화정교회 담임 목사인 박인환 목사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독서대 306개를 제작한 것이다.
행사 취지도 궁금했고, 박 목사가 세월호 인양 과정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묻기 위해 지난 10일 전시회가 열리는 감리회 본부 희망마당을 찾았다. 다음은 박 목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교회가 같이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있어"
- 오늘 감리회 본부 앞 희망마당에서 '306개 기억 독서대' 전시회를 개최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반응들이 있나요? "뭔지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이게 뭐냐고 물어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 몇 명에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설명해주며 416 희생자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전시하는 거라고 하니 다 이해를 하면서 숙연해져요. 알고 찾아오는 사람은 아픔에 공감해서 눈물 흘리기도 하더라고요."
- 세월호 광장이 가까운데 감리회 본부 희망마당에서 전시회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일단 제가 감리교 목사잖아요. 또한, 교회가 지금까지 관심 가지지 못하고 같이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데 감리회 본부 앞마당에서 함으로써 교회도 세월호의 아픔에 더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의미가 있죠. 물론 세월호 광장에서 할 경우 더 많은 사람이 볼 거 같아 아쉬움은 있지만, 거기는 장소 여유가 없다고 해서 여기로 정했어요."
- 이번 전시회 개최 취지는 뭔가요?"지난해 세월호 특조위가 강제 종료 되는 것을 보면서 '세월호를 정부가 빨리 지워버리려고 하는데 그렇게 서둘러 지워서 될 것인가. 지우는 게 아니라 희생자를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생명존중의 마음을 더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게 하려고 제가 시작한 일이에요."
- 목공품이 많은데 독서대를 선택한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단원고에 있던 교실을 철수하기 전에 들어가 보니 책상마다 꽃이 놓여있고 아이들에게 쓴 가까운 사람들의 편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엉뚱하게 책상 위에 책 받침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시간이 지난 작년 6월, 학생들과 관계가 있는 독서대를 희생 학생 책상에 하나씩 올려놓는 심정으로 만든 거죠. 306개가 된 것은 학생 250명에 교사와 일반인 54명을 더하면 304명이잖아요. 거기에 참사 초기 책임을 통감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교감 선생님과 김관홍 잠수사까지 더해진 거죠."
- 독서대를 제작할 때 이야기도 해주세요."제작은 10개월 걸렸는데, 306개 독서대가 어디에 있던 나무로 만들었는지 생각과 느낌이 다 기억납니다. 게다가 306개 중 디자인이 같은 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다 생각나요. 능력이 부족한 저도 10개월 동안 제작한 독서대를 일일이 다 기억하는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희생자 304명을 다 기억하시죠. 그래서 성경 이사야 49장 16절에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다'는 성구가 생각나서 플래카드에 넣었어요."
-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이리저리 모은 나무를 다 쓰니 반밖에 못 만들었어요. 독서대 나무는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제가 다 준비한 것이거든요. 나무를 구할 수 없어서 걱정했죠. 그런데 저희 교회가 시골 교회라 화목을 때는 교우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찾아다니며 장작 더미에서 주워오는 거죠. 그렇게 해서 만든 게 20개 정도예요."
인간이 다 다르듯 나무도 다 달라
- 이전에도 목공품을 만들어 보셨어요? "전 목공에 취미가 있어요. 안산 분향소 416 희망 목공방이라고 있는데 제가 유가족과 같이 배웠어요. 그래서 나무를 다루는 기술이 조금 더 좋아졌죠. "
- 디자인이 다 다른데 이유가 있나요?"나무 생긴 모양대로 했어요. 일부러 다르게 한 건 아니지만 생긴 모양으로 했어요. 우리 인간도 다 다르잖아요."
- 306개나 만드셨는데, 힘들진 않았나요?"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세월호를 기억하고 학생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뭔가 조그마한 일이라도 한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했죠."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잖아요. 특히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화정교회는 고 유예은 양이 다녔잖아요. 3년 어떻게 보내셨어요?"증발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3년이 금방 지나갔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뛰놀던 예은이가 이젠 없는 걸 생각하면 너무 캄캄해요. 부모님과 자매들의 표정을 보면서 하루라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우리 교회에 희생 학생과 가족이 있는데 목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는 생각으로 작은 일이라도 하려 했어요. 광화문 집회장도 가고 청운동에서 농성할 땐 거기도 갔어요. 또 농성하는 가족에게 십자가를 깎아서 전달하고 세월호 배지를 만들어서 이리저리 보급도 하고요. 세월호 특조위를 위한 서명운동도 열심히 했고 가족들을 교회로 초대해 식사도 대접하며 작은 음악회를 열었어요. 또 고구마를 심어 나누기도 하고 목공 바에서 같이 작품을 만들면서 옆에 있어 줬죠."
-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파면되었잖아요. 어떻게 보셨어요?"좀 늦었지만, 지극히 당연하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는 잘된 것으로 생각해요. 박근혜가 내려오니 세월호가 올라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늦게나마 잘됐다고 생각하고 박근혜씨 탄핵과 수감이 세월호 진실을 밝히는 출발점이 되면 좋겠어요."
세월호 대하는 태도 변화 없이 교회 개혁? 어불성설
- 세월호 참사 후 목사들의 막말 등으로 한국교회가 비판을 받았는데. "한국 기독교가 예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세상의 힘 있는 자들, 정치 권력자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만든 잘못된 프레임에 부화뇌동하고 같이 춤춘 것으로 생각해요. 세월호에 대해 좋지 않게 반응한 것이 대형교회잖아요. 그들이 한국에서 큰 힘을 가진 교회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비극이죠. 교회가 달라져야 해요.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말아야죠. 교회가 강도 만난 자 편들고 힘든 자 편들어야지 왜 기득권자나 정치 권력자 편을 드나요? 프란치스코 교황도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했잖아요.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중립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힘든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편들었지 중립 안 지키셨어요. 기독교는 중립을 지키면 안 됩니다. 중립의 이름으로 기득권자 편드는 못된 습성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 중립을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그게 편하니 그렇죠. 중립이라는 미명 아래 그 뒤로 숨으려고 하는 거죠. 한국교회가 예수의 말씀과 진정한 영성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 개혁을 얘기할 수 있는지 의문이죠. 세월호를 대하는 교회가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종교개혁을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달 22일 세월호 시험인양을 시작으로 어제(9일) 목포 신항 육지로 올라왔잖아요. 인양과정 어떻게 보셨어요?"가족의 요구와 국민의 여론에 떠밀려서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것이 드러났잖아요. 이번에도 박근혜씨가 탄핵되지 않았다면 올라오지 않았을 거예요. 탄핵되고 구속되었기 때문에 올라온 거예요. 억지로 하는 시늉만 하다 세월을 버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정권이 바뀌어 세월호를 제대로 밝히려는 차기 대통령의 의지가 없으면 해수부라는 거대조직이 계속 사보타지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봅니다."
- 세월호가 물 밖으로 올라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좀 허무했어요. 저렇게 쉽게 올라오는 것을 왜 그렇게 안 건지며 못 건지는 척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이번 주 기독교는 고난 주간이고 세월호 3주기인 16일은 부활절이잖아요."우연의 일치 같지만 저는 굉장히 큰 의미를 두고 싶어요. 3년 동안 유족들은 암울하게 지내왔는데 3주기는 부활의 소식이 유족들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리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란 기대를 가지고 있죠."
-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세월호와 관련해 잘 못 말한 것,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들의 잘못된 생각을 함부로 말하고 세월호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 판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공식적으로 회개하고 사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서 우는 자들과 같이 울라는 성경 말씀 그리고 고난받고 강도당한 자와 함께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회복해서 지금부터라도 세월호 유족과 아픔을 같이하고 곁에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어려운 발걸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416 기억 독서대를 10개월 동안 혼자 만드느라고 시간과 시각과 비용을 많이 썼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작은 노동이 세월호 유족에게 조그마한 위로라도 되면 좋겠고 지나가는 단 몇 사람이라도 세월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면 전 그것으로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