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3일 SBS와 한국기자협회 공동주최로 열린 '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 안철수(왼쪽) 후보와 문재인 후보.
지난 13일 SBS와 한국기자협회 공동주최로 열린 '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 안철수(왼쪽) 후보와 문재인 후보. ⓒ 공동취재단

나는 가족들에게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우리 집의 역학관계에 꽤 영향을 주었다.

나는 아빠가 구독하는 신문을 보면서 자랐고, 그건 우리 집안의 갈등을 꽤 줄여주는 기능을 해주었다. 가족 간 갈등의 양상은 주로 통금 등 생활의 영역에 국한되었고, 그것도 사실 나보다는 누나의 갈등 영역이었고, 나는 사고만 치지 않으면 그 뿐이었다.

아빠는 원래 말씀이 많지 않으신 분이었고, 그렇게 아빠와 나는 딱히 교류도 충돌도 하지 않으며 몇 년을 지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둘의 열띤 토론이 시작된 것은 비교적 최근, 앞서 말한대로 내가 문재인 지지를 표명하고 난 다음이었다. 토론은 중구난방으로 흘러가곤 했지만, 몇몇 주제에 있어서는 덕분에 아빠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토론 ①] 결국 5060은 안보가 핵심이다

아빠: 그래서 너는 문재인을 뽑을 거니?

나: 뭐 저야 근 몇년 동안 계속 민주당을 지지해오기도 했고요. 문재인이 현재로서는 가장 하자가 적은 후보 같기도 하고요. 아빠는요? 이번에는 안철수 뽑으실 건가요?

아빠: 고민 중이긴 해. 아무래도 안철수를 뽑겠지. 결국 문재인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하지 못하는 후보이고, 그런 사람한테 나라의 안보를 맡길 순 없다고 생각해. 그게 나 같은 50대 이상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27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국민승리유세에서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안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그는 "북한이 저 안철수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며 "북한이 제일 싫어하는 후보가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지난 27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국민승리유세에서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안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그는 "북한이 저 안철수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며 "북한이 제일 싫어하는 후보가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 공동취재사진

나: 북한 문제가 거의 유일한 변수이신 셈인가요? 안철수가 IT나 4차 산업혁명이나 그런 부분들에 강점이 있는 것은 별 감흥이 없으신가요?

아빠: 솔직히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그런 것들은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고, 또 안철수 후보가 그런 부분들 강하게 어필하고 있지도 않고. 우리한테 당장 명백하게 다가오는 문제는 안보관, 북한 문제인 거지. 결국 그 대선토론에서 '북한을 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 거 아냐. 다른 후보들이 그걸로 몰아붙이는데에도. 결국 만일의 사태에 전쟁이 나면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가 될 텐데 말이지.

나: 하지만 문재인이 토론회에서도 말했지만, 결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 때로는 강하게 나가면서도 때로는 대화도 하고 협상도 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안보관이 투철한 것과 북한을 주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 같은데요.

아빠: 그게 바로 안철수가 주장하는 것 같은데. 안철수는 북한이 주적이지만 대화해서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통일은 최고의 시나리오지만, 우리가 준비해야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니까. 그리고 사드 배치도, 결국 사드 배치를 하고 말고는 미국이 결정하는 것 아닐까? 그건 미군의 무기니까.

나: 하지만 사드 배치로 중국이랑 사이가 안 좋아지고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은 우리나라잖아요?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고요.

아빠: 타격은 있었지. 하지만 그건 이미 받은 타격이고, 타격이 앞으로 더 심해지진 않을 걸? 그리고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이제 우리가 미국하고 해봐야 할 이야기지, 사드를 철회한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은 아니야. 이미 타격은 받았고, 무기도 들여왔어. 이제와서 이걸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을까?

아빠의 제1 관심분야는 역시 안보였다. 아빠는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에 얕보이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누군들 아니었겠냐마는, 아빠 역시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으신 분이다. 할아버지는 38선 이남 휴전선 이북에 사셨다. 할아버지는 가진 게 땅 밖에 없는 분이셨는데, 그 땅은 이제 갈 수 없는 땅이 되었고, 할아버지는 피난길 끝에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하셨다.

피난민의 아들로 아빠는 태어났고, 태어나기도 전에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시작해야 했다. 물론 아빠의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 그리고 북한에게 얕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경쟁의식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흔한, 오히려 그런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는 그래도 상식적인 판단력을 갖춘 편에 속한다. 적어도 안보 하나만을 이유로 '극우파'로 여겨지는 후보를 뽑겠다고 하실 분은 아니니깐 말이다.

그러나 이런 레드 콤플렉스를 마주하고 있다 보면, 어쩐지 내 안에 '레드 콤플렉스 콤플렉스'가 생겨나는 기분이다.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보는 것에서는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북한을 적으로만 규정하지 못한다고 해서 언제까지 그것이 다른 모든 이슈를 제치고 따져보아야 할 심각한 결격사유라고 할 것인가?

안보는 하나의 중요한 의제일 뿐이지, 안보로 모든 이슈를 덮으려는 '북풍' 몰이는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선거 때마다 돌아오는 이 '빨갱이' 프레임에 대체 얼마나 많은 잘못된 정치인들이 뽑혔던가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토론 ②] "민주당은 자기만 옳은 줄 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주거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주거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나: 아빤 근데 민주당을 왜 그렇게 싫어하세요?

아빠: 솔직히 아빠도 한나라당이나 그런 보수 쪽을 지지하는 건 아니야. 다만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계열은 사람을 좀 기분 나쁘게 하는 게 있어. 자주 보여주는 모습 중 하나가 자기만 잘나고 자기만 옳은 줄 아는 그런 태도거든.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만들어버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프레임은 너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해.

언제까지 독재 들먹이면서 상대편을 비난할 건데? 지난 대선만 해도 그래.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박근혜를 이기지 못한 것은 명백하게 민주당이 무능해서야.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인 것으로 프레이밍할 것이 아니라, 박근혜가 정무 경험이 없고, 본인이 스스로 이룩해낸 것이 없는 걸 지적했으면 충분히 이겼을 걸? 하지만 그런 얘기들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점만 지적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문재인은 박근혜조차 이기지 못한 사람이 된 거지.

나: 하지만 박정희 시대의 독재로 인해서 피해를 본 사람들도 많고, 박근혜 정권에서도 독재적인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그럼 어느 정도는 문재인과 민주당 쪽이 맞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빠: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서 그 당시 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독재로 피해를 본 사람들보다 덕을 본 사람들이 많아. 어쨌든 경제발전이 그 시대에 이뤄졌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독재가 가당키나 하겠니? 박근혜 정부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었고, 독선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인정해. 하지만 그건 박근혜 개인의 문제인 것이지, 현 보수세력 전체의 문제는 아니야.

나: 그럼 아빠는 문재인 진영에서 '적폐 세력' 얘기하고 그런 것들도 별로 좋게 보시지는 않겠네요?

아빠: 아무래도 그렇지. 결국 지난 정권에 대한 심판론 뿐인데, 지난 정권은 이미 심판을 받았어. 이제는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해야할 때라고. 그리고 민주당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강하다 보니, 유연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를 통합해야 하는데, 통합하려고 하지 않고 몰아내려고 하고 있잖아. 요즘은 그 적폐 청산 얘기 안 하는 것 같던데, 그나마 좋은 변화인 것 같네.

나: 진보세력의 독선적인 모습이 아무래도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근데 안철수는 국민의당 소속이고, 국민의당 역시 진보세력이잖아요?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빠: 안철수는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조금 다른 계열의 사람이지. 말하자면 아웃사이더야. 근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 주장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의 사람이지.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어. 결국 노무현 정부때 대통령이 사람들을 통합을 하지 못하고 임기 내내 서로 싸우기만 했던 것은 그런 태도 때문이라고 봐.

어릴 때부터 아빠는 내게 싸움은 똑같은 것들끼리 하는 것이라 여러번 얘기하신 바 있다. 그건 내가 동네방네에서 싸우고 돌아다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빠가 개인적으로 싸움을 회피하는 분이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싸움에서 누가 옳은가는 중요하지 않고, 싸움 그 자체가 나쁜 것이라는 게 아빠의 지론이었다. 싸우는 사람을 리더로 세울 수 없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인 셈이다. 아빠는 민주당과 진보세력이 계속 들고 오는 선-악 프레임을 지적했다. 선-악, 민주와 반민주, 그리고 심판론 프레임이 결국 진보세력의 확장성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란 얘기였다.

솔직히 아빠의 주장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삶의 철학으로서의 평화주의와 정치의 영역에서 평화주의는 다른 것이다. 정치 영역의 평화주의는 정치 혐오로 넘어갈 여지가 다분하지 않은가. 대통령 역시 필요하다면 싸워야 한다 생각한다. 흔히 정치인들에게 서로 싸우지 말고 국정운영을 잘하라며 당부하는 말을 하곤 한다. 그 말은 우리나라의 미성숙한 의회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기도 하겠지만,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싸우는 것이란 점을 잊은 것이 아닐까?

(조금 더 나아가자면, 나는 매 대선마다 울려퍼지는 '국민 대통합'의 표어는 허구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모두가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의견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게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선후보 당시 '국민대통합'을 외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선후보 당시 '국민대통합'을 외쳤다 ⓒ 남소연

그러나 전략적인 부분에서 아빠의 지적은 확실히 타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탄핵 정국이 탄핵과 같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다. 문제는 그 전자의 사람들이 문재인 후보 지지로 넘어올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의 지지율이 51%나 나왔다는 것은, 결국 상대가 박근혜임을 감안하고도 문재인을 차마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더욱 많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문재인 캠프는 지난 대선에 문재인을 뽑지 않았던 사람을 어떻게 하면 이번에 문재인을 뽑게 할 수 있을지를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토론 ③] 지역·사상보다는 산업이 더 중요하다

나: 아빠 지난 대선 개표할 때 호남 사람들은 바보라고 하셨잖아요.

아빠: 내가 그렇게 말했나? 뭐 대충 비슷하게 생각하긴 했는데 말을 한 줄은 몰랐네

나: 근데 아빠도 호남 사람이잖아요.

아빠: 그렇지. 당연히 내가 막 내가 호남사람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한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호남 사람들의 진보세력 지지율이 너무 높다는 거지.

나: 하지만 TK쪽 역시 보수당 지지율이 높잖아요.

아빠: 물론 그렇지.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역색을 빼고 정치를 논할 수 없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호남에서 진보세력 표심이 높은 건 진보세력에게도 호남에게도 별 도움이 안돼 보여. 왜냐면 호남-진보 영남-보수의 구도로 가면 진보가 절대적으로 불리하거든. 전라도는 경상도에 비해서 인구수도 경제력도 확실히 밀리니까. 소규모 지역 정당의 전략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전국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확장성이 떨어지는 거지. 또 호남사람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야. 언제든지 민주당을 버릴 수 있다는 모습을 취해야 민주당에서도 뭐 더 챙겨주고 신경을 써주지. 민주당이 집권해서 호남이 뭐 더 이득이라도 본 게 있나? 보수세력이 집권했을 때는 영남이 확실히 이득을 봤는데.

나: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신 건가요?

아빠: 그렇지. 결국 지역 산업이 활성화되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있어야 뽑아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단순히 이념만으로, 어느 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 투표를 하게 된다면 일방적으로 호남이 불리해. 매번 지는 쪽에 걸게 된다고.

나: 근데 생각해보면 이번에 국민의당이랑 더불어민주당이랑 둘로 나뉘었고, 지금 주력 후보들도 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당 소속이잖아요. 이 점은 아무래도 호남에 이득이 되지 않겠어요?

아빠: 아무래도 호남에 도움이 되겠지? 전에 충청도가 캐스팅 보트가 되었던 것처럼. 이제서야 드디어 호남 지방의 지지에 최소한의 균열이 간 셈이니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선판의 핵심은 영남으로 쏠리고 있어. 다들 어쩐지 호남을 집토끼인 것처럼 생각한다고. 이래서는 안 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9일 오후 광주 충장로 우체국 사거리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9일 오후 광주 충장로 우체국 사거리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다. ⓒ 남소연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지난 24일 오후 광주 북구 우치로 전남대 후문 앞에서 지역 거점 유세를 펼치며 인사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지난 24일 오후 광주 북구 우치로 전남대 후문 앞에서 지역 거점 유세를 펼치며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나: 아빠는 근데 그러면 아빠한테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 간다면 진보나 보수나 크게 상관 없나요? 출신지역이 아빠한테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요.

아빠: 기본적으로는. 하지만 일단 보수정당의 정책들이 아빠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또 아빠가 보기에 진보 정당은 보수 정당에 비해서 정책적으로 유능한 사람이 더 적다고 생각해.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을 다니면서 자기 전문성을 쌓고 실력을 길러서 필드에 나간 사람들과, 평생을 정치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 중 어느 쪽이 정책의 전문성이 더 높을까? 아빠는 전자라고 생각해.

비록 박근혜 정권은 조금 이례적으로 무능했지만, 그건 조금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겠다. 그리고 문재인보다는 보수 쪽으로 확장성이 있는 안철수 쪽이 좀 더 유능한 실무진들을 많이 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아무래도 안철수를 뽑는 게 전체적인 경제 성장에도, 그리고 아빠 개인에게도 더욱 유리한 선택이겠지.

호남에 대한 아빠의 생각은 조금 이중적이었다. 아빠는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유학을 하셨던 분이다. 지역성을 가지면서도 지역성에 상당 부분 초연해 계신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남인으로의 정체성이 없다고 하기엔 호남 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았다. 호남인으로 태어났지만 사실 할아버지는 호남 사람이 아니었고, 아빠도 호남에서는 유년시절 잠시만을 보내셨을 뿐이겠지만, 어쨌든 호남 사람인 것은 맞으니깐. 이민자적 애증의 태도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빠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문제에 의외로 덜 구애받으신다는 점은 조금 흥미로웠다. 안보가 확고하다는 전제 하에서는, 이념 문제보다는 경제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빠의 지론이다. 세계화 시대에서의 경쟁을 위해서는 산업에서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고, 우리는 다른 나라를 계속해서 '이겨야' 현재 수준 또는 그 이상의 경제력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 민주주의와 이념의 논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서 이미 제도로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의 문제는 경제의 문제이고, 대통령이 신경써야 할 것 역시 경제이고, 유권자 개개인은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정당을 선택하는 것(아빠에게는 그것이 보수당이었고, 이번에는 국민의당)이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결론이다. 이념을 이유로 경제적으로 덕 보는 것도 없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빠의 눈에는 합리적인 모습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정치가 경제적 합리성으로만 따져봐야 하는 것일까? 내게 정치는 가치관의 문제이자 삶의 방식의 문제다. 여성, 성소수자 등의 인권 문제와 언론 통제 등의 자유 문제, 환경 문제 같은 것들이 적어도 내게는 경제보다는 더 중요한 이슈이다. 아빠는 내가 아직 직장을 안 가져봐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내가 직장을 가진다고 해서 저런 문제들이 내게 중요하지 않을수 있을까?

또 경제 정책의 성패가 중요한 부분이라지만, 어느 정당이라고 해서 특별히 경제 정책을 잘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어느 정당이 경제와 일자리 문제에 신경쓰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면 내게 더욱 중요한 것은 비경제적인 것들,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것들, 그리고 이념 간의 차이로 확연히 들어나는 것들인 셈이다.


#대선#세대갈등#문재인#안철수#2017대선
댓글2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