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재외선거 뉴욕총영사관 재외투표소인 플러싱에 도착한 시각은 지난 4월 29일(토) 오후 3시쯤이었다. 투표소 안의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마치고 입구를 바라보니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뉴욕총영사관이 맨해튼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제공하는 셔틀버스가 도착해서인지 투표를 하기 위해 30명 이상이 대기하고 있었다.
발랄하고 상큼한 분위기를 풍기는 김민경·이경륜씨는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손 모양을 표시해도 되는지 물어본다. 선거법이 바뀌어 이번 선거부터는 가능하다고 하니 둘 다 엄지를 척 내민다. 지지하는 후보가 같은 모양이다.
민경씨는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학생이다. 그에게 선거는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 하는 대통령 선거로 특히,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투표를 반드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경륜씨는 뉴저지에 거주하는 학생으로 원래 뉴저지에서 투표하려고 했다. 민경씨를 방문했다가 플러싱 투표소로 함께 왔다. 2012년 선거에는 투표권이 없어서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고, 총선과 지방 선거를 거쳤으나 대통령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이 뽑지 않은 대통령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지난 4년이 너무 힘들어서 어디에 있든지 이번엔 반드시 투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업고, 안고, 걸리고. 강보현·배정아 부부는 말 그대로 아이들 세 명을 업고, 안고, 걸리면서 투표소에 들어왔다. 지인의 돌잔치에 참석했다가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왔다는 부부는 투표를 마쳤다는 뿌듯한 마음이 표정에 나타나 있었다.
'요셉이 아빠라 부르라'는 강씨는 군대에서 투표한 이후로 이번이 처음 투표이다. 그동안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투표를 안 했더니 세상이 더 먹고 살기 힘들게 바뀌었다고. 이번 기회에 국민 하나하나의 마음을 담아 투표하면 뭔가 바뀌지 않을까,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투표했다. 아내에게도 이번에는 어떻게든지 시간을 내서 꼭 투표하자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삶은 걱정근심 없이 주 5일만 일하고 이틀 쉴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것이고, 이를 이루어줄 수 있는 사람을 위정자로 뽑고 싶다.
배씨는 애가 셋이라서 오기 힘들었는데, 같이 가자고 말하는 남편이 기특하기도 하고, 한 표라도 행사하면 좀 더 나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 그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는 나라가 아닌 국민을 위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투표권을 행사해야 그나마 나은 사람이 정치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투표권을 행사했다.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재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지혜씨. 뉴욕·뉴저지 촛불집회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모인 이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이 씨는 문재인·심상정 두 후보 중에 고민하다가 한 후보를 선택했다.
이씨는 확실하게 정권교체를 하고, 반대자들에게 작은 빌미라도 주지 않으려고, 즉 큰 표 차이로 이기게 하고 싶어서 결정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필름 <더 플랜>을 보고 투표의 민심이 과연 제대로 전달이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했다. 그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원한다.
박미영씨는 가족 대표로 6개월 반 된 아기를 안고 와서 투표했다. 박씨는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박씨의 남편 이한백씨는 이번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투표에 참여하는 아내를 응원하고 아기를 돌보기 위해 함께 투표소에 왔다.
그는 "지지하는 후보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돼서 한국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며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당선만 되고 힘없이, 싸우다가 시간만 보내지 말고, 할 일을 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회란씨는 뉴질랜드 영주권자이고 현재는 뉴욕서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투표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고, 뉴질랜드에서도 투표했었다. 거주 지역이 바뀌면 선거인 등록을 다시 해야 해서 이번에 선거인 등록을 하고 투표권을 행사했다. 뉴욕총영사관이 제공하는 버스를 타러 갔으나, 사람이 많아서 탈 수 없었다. 그는 영사관이 제공하는 옐로 캡을 타고 왔다. 자신 말고도 버스에 못 탄 사람들이 있었다고.
그는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내가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초심을 잃지 말고, 말한 대로 국민을 위해서 끝까지 약속한 정책을 다 펼치면서, 5년 안에 변화와 개혁을 이루기 바란다"고 말했다.
재외선거 첫날부터 투표 참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일남씨(민주당)는 시민권 신청 전에 마지막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92세 된 아버지와 6남매가 한국에 거주하는 백씨는 신실하고 국민을 존경하는 지도자가 선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 국적을 획득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도 강해서 투표 참관인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최철권씨(국민의당)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집회를 접하면서 정치에 관심이 생겼고, 선거에 좀 더 깊숙이 참가하고 싶어서 참관인을 하게 됐다. 대학 4학년인 그는 지인의 권유로 국민의당 참관인이 되었다.
기자가 투표소에 있었던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정확히 숫자를 센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 동안 거의 수백 명의 사람이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했고, 투표에 참여한 이들은 주로 젊은 층이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기자가 있었던 그 시간이 투표 참여자가 눈에 띄게 많았으며, 노년층은 주로 주중에 투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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