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도입을) 공공기관에서 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민간 기업까지 확산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민간기업 중 노동이사제 도입 여건이, 혹은 필요성이 가장 강한 곳이 금융기관입니다. 공공성을 띠기 때문이죠."강경한 말투였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회사의 이사를 추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직접 이사가 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에서도 하고 있고 광주광역시, 성남시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 등은 이미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김현정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아래 사무금융노조) 위원장. 그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아래 국민은행 노조)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자추천이사제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김 위원장은 "아무리 국민연금이 찬성한다 해도 과반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노조는 오는 3월 소수주주 지분을 모아 이사를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할 예정인데,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하더라도 나머지 주주들이 반대하면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이어 김 위원장은 이런 주주제안이 통과되더라도 지금으로선 현재 경영진들의 독단적인 경영 횡포를 막아내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는 "(금융지주 회장들이) 사실 (연임이라는) 본인들의 목적은 달성한 것 아닌가"라며 "생색내기용으로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이 금융지주 회장을 추천하는 구조인데, 그 사외이사를 뽑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아래 사추위)에 금융지주 회장이 포함돼 문제가 되자 회장이 빠지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또 그는 "혹시라도 (국민은행 노조가 사외이사로 추천할) 권순원 교수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이사로 선임한다 하더라도 그 순수성이 상실된 것"이라며 "본인(윤종규 회장)은 이미 연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신한금융지주는 여전히 사추위에서 회장이 빠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더불어 그는 "우리가 실제 추구해야 할 방향은 (노동자추천이사제보다) 한 단계 높은 노동이사제"라며 "증권업종에선 이미 지난해 노동이사제를 공동요구안으로 정해 (회사와) 교섭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증권업종뿐 아니라 사무금융노조 전체에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실제로 할 것"이라며 "올해 사업계획에도 직장민주주의라는 항목으로 노동이사제를 추가했다"고 목소리에 힘줘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사무금융노조 사무실에서 김현정 노조위원장을 만나 증권회사, 보험회사 등 제2금융권을 둘러싼 비정규직 문제 등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직원 골프대회로 권익 향상? 전형적인 '직장 갑질'"
-미래에셋대우가 여직원 골프대회를 개최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노조 쪽에서 '대다수가 만족한 대회였다'는 설문조사 결과자료를 낸 것으로 아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미래에셋대우 노조가 사무금융노조 소속은 아니다. 상급단체 없이 활동하는 것으로 안다. 설문조사도 내부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런 얘기들이 있었을 것 같다. 방식 자체가 정말 웃긴다. 직장 내에서 여직원에 대한 처우가 사실 불평등한 것이 맞다. 승진·직급체계 개선 이런 걸 통해 여직원 사기를 올려야지 이런 일회성 골프대회가 무슨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되겠나. 전형적인 '직장 갑질'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2016년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던 KDB대우증권의 주식을 미래에셋증권이 인수하면서 만들어진 증권회사다. 김 위원장은 "사실 옛 미래에셋증권엔 노조가 없었다"며 "노사관리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그 동안에는 옛 대우증권 쪽 노조의 활동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최근 노조가 무리하게 회사 쪽을 옹호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구조조정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 김 위원장 생각이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진 전례가 많았기 때문에 노조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어 그는 "현 미래에셋대우 노조 쪽과 사무금융노조가 서로 교류하고 있다"며 "만약 여직원 골프대회 문제와 관련해 연대를 요청하면 함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국은행 여직원 성희롱 문제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꽤 크게 일었는데, 이후 이에 대해 들은 바 있나. 재발 방지를 위해 노조 쪽에서 추가로 진행하고 있는 부분은 있는지."한국은행의 권위적인 문화 때문에 노조에서 불만이 있다고 들었다. 노사가 동등한데, 단순히 선후배 관계로 본다는 것이다. 직장문화가 그렇기 때문에 (성희롱 문제 등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해당 사건 이후 피해신고 절차가 강화되고, 성폭력 가해자의 징계 수위도 강화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개선책에 대해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KDB생명 대주주인 KDB산업은행 출신 인사들이 KDB생명 경영진으로 오는 '회전문 인사' 논란도 있다. 정작 KDB생명 경영진은 인사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함께 거론되는 SIG파트너스라는 컨설팅업체는 어떤 곳인지. "산업은행에는 계열사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부서가 있다. 그 부서에서 KDB생명을 담당하는 컨설팅업체를 지정하고, 그 업체는 KDB생명에 상주하면서 전반적으로 진단을 내리게 된다. 노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산은이 컨설팅업체를 통해 KDB생명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계열사 구조조정을 쉽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회사들이 구조조정, 점포 통폐합 때 명분을 만들기 위해 컨설팅업체에 진단을 맡기는데, 결과는 항상 그것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나온다."
"노동자추천이사제보다 한 단계 높은 노동이사제 필요"
-MG손해보험의 2대 주주인 새마을금고가 자본 확충을 위한 증자를 부결시킨 문제도 심각하다. 추후 새마을금고가 증자를 진행할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지. 매각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그 손실은 새마을금고도 같이 떠안게 되는 것 아닌가.
"이곳(MG손해보험) 대주주는 자베즈펀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지난 5년 동안 (2대 주주인) 새마을금고가 모든 경영권을 행사했다. 위법한 행위를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증자안 부결은 기가 막힌 일이다. 금융기관은 안정성 항목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규제한다. 보험사는 RBC(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 은행의 경우 BIS(국제결제은행이 권고하는 자기자본비율)다. RBC비율을 150%로 맞추라는 게 금융감독원 권고인데, MG손보의 이 비율은 115% 밖에 안 된다. 경영상 증자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걸 부결시키는 주주가 어디 있나.
그렇기 때문에 매각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것이다. 이미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만약 그런 결정을 한다고 해도 그 과정이나, 매각 대상이나 이런 것들을 사전에 노조와 투명하게 조율하고 고용승계를 분명히 해줘야 한다."
-골든브릿지증권 노조가 지난 주총에 대해 '결의무효소송'을 냈는데, 결국 회사 쪽이 (1심에서) 승소했다. 당시 (자본을 줄이는) 유상감자를 위해 주총이 열렸는데,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골든브릿지증권 대주주가 지속적으로 감자를 해왔는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규정 등이 뚜렷하게 없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유상감자를 할 수 있다. 재무건전성 등 지표상으로만 갖추면 되게 돼있다. 자기자본이 4000억 원 정도였다가 이것이 1000억 원으로 줄었는데 그 상황에서 300여억 원을 감자하겠다고 한 것이다. 7차례나 유상감자를 했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대주주 머릿속에는 오로지 돈 빼갈 궁리 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를 매각한다든지 그런 쪽으로만 발달한 것이다. 이번 재판 결과도, 아직 1심이니 지켜봐야 한다."
-보험사 등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화생명이 보험설계사를 모집하기 위해 여전히 정규직 전환 미끼를 사용한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악질적인 관행이라 보는데, 실질적인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좋은 방법은 보험사가 보험설계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모집하는 것은 사기다. 희망고문을 하는 것 아닌가. 취업준비생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사무금융노조 현대라이프지부에서도 설계사들이 노동자성을 인정 받기 위해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생명보험사의 노조는 모두 사무금융 소속인데, 지부장들의 고민이 깊은 것 같다."
-금감원에서 은행권에 이어 2금융권에 대해서도 채용비리가 있었는지 조사한다고 한다. 관련해서 알고 있거나 들은 바 있는지. "2금융권에도 1금융권 못지않게 채용비리가 있을 것으로 본다. 공공연한 이야기인데, 경력직을 뽑으면 모두 채용비리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경력직은 다 경영진 아는 사람을 통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채용공고를 하더라도 요식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그 동안 적발되지 않았을 뿐이지, 앞으로 화수분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내내 김 위원장은 '연대'를 강조했다. 노동자이사제 등 금융 현안도 중요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적 의제에 대해 노사가 함께 대안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사무금융노조 차원에서 '양극화, 불평등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대의원 대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됐으며, 실행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는 "노조들이 자꾸 기업 안에, 울타리 안에, 공장 안에 갇혀 (말하면) 집단이기주의처럼 비춰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소득주도성장 이런 것을 하자고 오랜 시간 투쟁해왔는데,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권이니 알아서 다 하라고 하면...(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재원으로 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무금융노조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내놓고, 각 회사 쪽에서도 그만큼의 자금을 지원하도록 유도해 기금을 마련하고, 이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의 `풀빵 나눔`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태일 열사`에 대해 분신, 척박한 노동환경 개선, 이런 것에만 주목해왔다"며 "하지만 전태일 열사가 처음 했던 일은 시다(보조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나눠 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이건 사실 나눔, 연대, 사랑"이라며 "전태일 열사 정신이 노조만의 가치는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으로 (노조 운동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1987년 6월항쟁 때 선두에 섰던 `넥타이부대`를 언급했다. 당시 투쟁에 나섰던 금융회사 노동자들이 모여 3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무금융노조로 자리 잡았다는 것. 김 위원장은 "역사에 중요한 변곡점마다 사무금융노조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지금은 양극화, 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해 다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김 위원장은 "사용자(회사)들에게 사회연대기금을 요구하고 진행하려고 한다"며 "노사가 교섭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달라고 정부에도 요구할 생각"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이어 그의 말이다
"노조 얘기를 하면서 스웨덴, 핀란드 등의 좋은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곳에선 노조가 먼저 나서서 세금을 올리자고 합니다. 세금을 올려야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선) 그런 걸 하겠다고 하면 경기 일으킵니다. (일부 노조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세금 올려야 한다,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하면 마치 노조 내에선 '금기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치부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그런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무금융노조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활짝 웃으며 포부를 밝힌 그에게 '정부가 바뀌어 시기도 좋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그렇다. 박근혜 정권 땐 사회연대기금을 모아봤자, 또 본인들 뒷주머니에 넣고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단을 만들게 되면, 노조도 이에 참여하게 된다"며 기금 운용에 대해 안심해도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